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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는 핵을 만능으로 여기던 시대의 자화상

기자
남도현 사진 남도현
1949년 8월 29일, 소련이 원폭 실험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전략적 우세는 4년 만에 막을 내렸다. 이후 핵무기를 앞세운 첨예한 대립은 역설적으로 냉전 시기에 강대국 간의 전면전을 억제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내가 상대를 핵폭탄으로 공격한다면 그와 맞먹는 엄청난 보복이 충분히 예견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지고 있다고 쉽게 사용하기 어려울 만큼 핵의 파괴력은 엄청나다.

핵폭탄은 폭발 때의 살상력도 무시무시하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나타나는 방사능에 의한 오염도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그래서 아주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아군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가까운 곳을 타격하는데 사용하기 어렵다. 상식적으로 아군에게도 피해를 준다면 그것은 더 이상 무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개념이 처음부터 정립된 것은 아니었다.
 
1957년 7월 19일에 있었던 AIR-2 기폭실험에서 발생한 버섯구름. 소련의 전략폭격기를 막기 위해 이처럼 자신의 머리 위에 핵폭탄을 터뜨리는 방법까지도 등장했다. [사진 wikipedia]

1957년 7월 19일에 있었던 AIR-2 기폭실험에서 발생한 버섯구름. 소련의 전략폭격기를 막기 위해 이처럼 자신의 머리 위에 핵폭탄을 터뜨리는 방법까지도 등장했다. [사진 wikipedia]


파괴력은 개발 전부터 알던 사항이었지만 방사능에 관한 이해는 상당히 부족했고 이 때문에 지금은 상상도 못할 어처구니없는 일이 초창기에 많이 벌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면 공대공 로켓인 AIR-2를 들 수 있다. 오늘날처럼 정밀한 요격이 불가능해 핵으로 침투한 적 폭격기를 확실하게 제거하려던 무기였다. 한마디로 핵 공격을 막기 위해 자기 머리 위에다 먼저 핵을 사용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또 다른 무서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마구 만들었을 만큼 1950년대는 핵 만능주의가 판치던 시대였다. 미 육군이 제식화한 M65 원자포도 바로 그런 시대상을 배경으로 탄생한 무기다. M65가 발사한 W9 탄두는 전술용이지만 위력이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보이와 동일한 15kt이었다. 하나의 도시를 날려 보낸 위력이 불과 8년 만에 전술용으로 취급될 만큼 핵무기의 진화 속도는 경이적이었다.
 
그런데 방사능의 위험을 생각한다면 M65의 사거리인 30km는 안전을 장담할 수 있는 거리로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당시에는 핵폭탄을 터뜨린 후 솟구쳐 올라가는 버섯구름을 보면서 돌격하는 훈련을 당연시 했을 만큼 모르는 것이 많았다. 만일 오늘날 그런 훈련을 하겠다면 군 관계자들이 먼저 거부하였을 것이다. M65의 등장에 놀라 2A3 Kondensator 2P 원자포의 배치를 서둘렀던 소련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1950년대 네바다 실험장에서 벌어진 핵 공격 후 적진 점령 훈련을 벌이는 미 해병대. 지금이라면 이러한 명령을 내릴 지휘관은 물론 명령을 따를 병사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해 알지 못했다. [사진 youtube 캡처]

1950년대 네바다 실험장에서 벌어진 핵 공격 후 적진 점령 훈련을 벌이는 미 해병대. 지금이라면 이러한 명령을 내릴 지휘관은 물론 명령을 따를 병사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해 알지 못했다. [사진 youtube 캡처]


각종 실험에 만족한 미 육군은 대규모 기갑부대를 막기 위한 용도로 1957년부터 총 20문의 M65를 제작하여 16문을 서독에, 나머지 4문을 우리나라에 배치했다. 오랫동안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한 사실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던 미군이 M65의 배치만은 대대적으로 선전했을 만큼 기대가 컸다. 당시 몇 개의 W9가 함께 반입되었는지는 모르지만 M65는 오래 활약하지 못하고 1963년부터 퇴역 처리되었다.
 
미사일처럼 보다 편리한 투발체계가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결격사유는 결국 핵을 사용하기에는 사거리가 짧다는 점이었다. 방사능이나 낙진에 의한 아군의 피해도 염려스럽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자 운용자체가 버거울 수밖에 없게 된 것이었다. 대신 장거리 로켓이나 전폭기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대체되었고 한창 때 한반도에는 최대 900발의 각종 전술 핵탄두가 운영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1953년 5월 25일에 있었던 M65의 실제 발사 실험 장면. 이때 폭발한 W9 전술핵폭탄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보이와 같은 15kt의 위력을 갖고 있었다. 한반도에 최초로 배치된 핵무기이기도 하다. [사진 wikipedia]

1953년 5월 25일에 있었던 M65의 실제 발사 실험 장면. 이때 폭발한 W9 전술핵폭탄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보이와 같은 15kt의 위력을 갖고 있었다. 한반도에 최초로 배치된 핵무기이기도 하다. [사진 wikipedia]

이처럼 국내에 배치되었던 전술 핵무기는 국군의 전력이 앞서기 전까지 열세를 조용히 메워준 방패였다. 그러다 미국의 핵무기 감축이 있고 이에 1991년 우리 정부가 비핵화 선언을 하면서 현재는 모두 철수된 상태다. 그렇게 사라졌던 전술 핵무기의 재배치 문제가 최근 북핵 사태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오래 전 끝난 것으로 알았던 냉전이 한반도에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하나의 증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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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은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