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북으로 간 화가 근원 김용준의 ‘매화’ 피었네

정재숙의 ‘新 名品流轉’ 
왼쪽부터 근원 김용준의 범부 김정설 초상(종이에 수묵, 1942). 매화(종이에 수묵, 1948) [사진 열화당]

왼쪽부터 근원 김용준의 범부 김정설 초상(종이에 수묵, 1942). 매화(종이에 수묵, 1948) [사진 열화당]

인연은 인연을 낳고, 사람은 사람을 부른다. 서울 성북동 문화공간 17717에서 다음 달 15일까지 열리는 ‘매화와 붓꽃’전은 동서양 두 예술가의 조우로 인간의 길을 그린다. 경북 선산 출신 화가이자 미술평론가인 근원(近園) 김용준(1904~67)의 매화 그림, 영국 런던 출생 작가이자 미술비평가인 존 버거(1926~2017)의 붓꽃 드로잉은 전쟁과 이념갈등의 혼돈기에 자유를 갈구했던 두 영혼의 상징이 돼 오늘의 한반도를 비춘다.
 
전시를 기획한 열화당은 근원의 50주기를  맞은 올해, 아무런 행사가 없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2인전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근원 김용준 전집’을 펴내며 잊힌 한국 근대화단의 대표 인물을 되살려 냈고, 존 버거의 대표작 대부분을 번역해 평화 연대(連帶)의 정신을 전한 열화당의 마음이 따듯하다.
 
근원은 1948년에 낸 『근원수필(近園隨筆)』로 널리 알려졌다. 이 수필집 첫머리에 실린 글 ‘매화’는 “댁에 매화가 구름같이 피었더군요. 가난한 살림도 때로는 운치가 있는 것입디다”로 시작한다.  
 
이번에 출품된 ‘매화’는 원로 한국화가인 송영방(81) 동국대 명예교수가 학생 때인 1950년대에 서울 인사동 통인가게에서 발견해 간직해 온 소장품이다. “길을 걸어가는데 뭔가 시커먼 것이 지나가 뒷걸음쳐서 다시 보니 보통 솜씨가 아니야. 고학생 주제에 선금만 걸고 품에 안았지.” 화제(畵題)는 겸손하기 그지없다. ‘매화와 더불어 벗이 되고 싶어 매화가지 몇 개를 그려 (…) 속된 화사(畵師)의 화법을 면치 못했구나.’
 
‘매화’와 함께 나온 ‘범부 김정설 초상’은 담백하면서 해학 넘치는 근원의 필치를 잘 보여 주는 초상화다. 서지학자인 김영복(62)씨가 인사동 문우서림 시절에 발굴한 족자인데 소설가 김동리의 친형인 범부(凡夫) 김정설(1897~1966)의 특장을 잘 묘사했다. 범부는 동서양 사상에 능통했던 전설적 기인으로 스스로 붓을 들어 그림 상단에 이렇게 썼다. ‘자조(自嘲), 반세기 동안 무엇을 하였는가’.
 
근원은 1946년 서울대 미대 창설에 산파 구실을 했지만 한국전쟁 때 북으로 가 오랫동안 그 이름이 사라졌다. “예나 이제나 우리 같은 부류의 인간들은 무엇보다도 자유스러운 심경을 잃고는 살아갈 수 없다”던 그의 목소리가 ‘매화’ 그림에 실려 우리 귀를 울린다. 턱없이 분주한 세상, 근원의 매화는 평화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관련기사

구독신청

AD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