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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적폐의 가려진 진실, 반성 없는 무지

김기찬 논설위원고용노동선임기자

김기찬 논설위원고용노동선임기자

근로시간 단축 논쟁이 가관이다. 법리와 생산현장의 현실이 뒤섞여 길을 잃은 모양새다.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것을 두고서다. 그런데 이게 근로시간 단축일까. 아니다. 그동안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은 법정 근로시간(주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 토·일요일 16시간을 더해 68시간으로 봤다. 이 논리가 지난 정부에서 깨졌다. 52시간이 맞다는 거다. 휴일은 휴일일 뿐 근로시간에 포함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거다. 따라서 잘못된 걸 바로잡는 것에 불과하다.
 
한데 이제 와서 이런 논쟁을 벌이는 건 우스운 일이다. 14년 전에 했어야 했다. 주5일 근무제를 법제화한 건 2003년 8월이다. 노무현 정부 때다. 당시 토요일 오전에 일하던 관행을 정리하지 않았다. 여기서 법과 괴리가 생겼다. 주5일 취지에 맞게 바로잡았어야 했지만 노무현 정부가 실책을 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그냥 흘렸다.
 
왜 그랬을까. 몰랐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근로시간 단축을 둘러싼 논란은 무지(無知)가 잉태한 적폐에서 비롯된 셈이다. 그로 인한 부작용을 생산현장의 노사가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잘못을 바로잡는 걸 두고도 이런 판이니 정작 제대로 된 장시간 근로관행 개혁은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
 
더 심각한 건 정권에 따라 ‘앎’과 ‘모름’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정권교체와 함께 지난 정부의 정책을 갈아엎기 일쑤여서다. 그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맞는지 안 맞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런 작업이 반성과 공부에서 출발하면 그나마 계승과 수정·폐기로 구분해 정책을 다룰 수 있을 텐데, 그렇지도 않다. 세계경제포럼(WEF)이 한국 경제의 최대 장애물로 정책 안정도(Policy Stability)를 꼽는 이유다.
 
외국에선 정권에 따라 고용정책이 확 바뀌는 일은 거의 없다. 스웨덴 스테판 뢰벤은 2014년 보수당의 프레드리크 레인펠트 전 총리를 누르고 좌파연합정부 총리에 올랐다. 그는 금속노조(IF Metall) 위원장 출신이다. 뢰벤은 전임 총리의 노동개혁을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직업훈련을 거부하면 실업급여를 중단하고, 육아휴직 지원금을 폐지하는 등 강도를 높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전임자의 노동개혁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후임자가 이럴 수 있는 건 국가 경쟁력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책을 정치적 이념으로 예단하지 않는다. 대신 전문가와 공부하며 최적의 정책을 찾는다. 최소한 무식해서 생기는 적폐는 없다.
 
요즘 고용부 공무원들은 김영주 장관에게 A4용지 한 장으로 정리해 보고한다고 한다. 실태와 대응책 등을 조곤조곤 보고하면 꾸중을 듣는단다. 어떻게 A4 한 장으로 청년·장년·여성·장애인 고용정책은 물론 글로벌 시장의 흐름과 고용보험·국제협력 같은 방대한 정책을 모두 알 수 있을까. 미스터리다. 정치인으로서 한마디하는 이벤트용이라면 한 장짜리로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정책을 다루는 장관 신분을 고려하면 어딘가 이상하다.
 
지난주 월요일엔 김 장관이 발끈했다고 한다. 법에 정한 채용절차도 거치지 않고, 자신의 국회의원실에서 근무하는 비서관에게 임의로 정책보좌관직(3급)을 수행케 한 사실이 보도된 데 대해서다. 고용부 관계자에 따르면 김 장관은 “누가 이런 얘기를 하는지 안다. 식구를 건드리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취지의 경고를 했다고 한다. 앞서 해당 비서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고리 권력 등극, 가문의 영광’이라고 했다. 이 정부가 그토록 중시하는 절차적 정당성은 찾을 수 없다. 더욱이 장관이 정치인 신분일 때 수행하던 비서관을 ‘식구’라고 칭한다면 해당 부처의 공무원은 장관과 어떤 관계일까. 때마침 지난 정부에서 노동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을 주도했던 고위 공무원 2명이 18일자로 공직을 떠난다. 정치적 식구 개념이 인사와 정책의, ‘앎’과 ‘모름’의 기준선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김기찬 논설위원·고용노동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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