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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그믐

 그믐
-김수열(1959~ )
 
한때 너를 아프게 물어뜯고 싶은 적이 있었다
 
 

우리 시에서 초승달의 모양을 눈썹과 손톱의 이미지로 처음 비유한 시인은 서정주다. 그리하여 초승달을 바라보며 그리운 이의 눈썹을 떠올리는 서정은 서정주의 대표적인 상표가 되었다. 초승달은 달이 부풀어가는 형상이지만 그믐달은 사위어가는 형상이다. 생의 기력이 거의 다 소진된 그믐달을 보며 시인은 청춘의 한때를 회상한다. 상대방을 할퀴고 물어뜯은 주체가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즉 자신이 어둠이었기 때문에 둥근 달을 물어뜯어 사그라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체의 반성은 폭력적인 야성에 대한 꾸짖음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 현존 시인 중에 키가 제일 큰 시인이 김수열이다. 그는 기린 같은 목과 다리로 겅중겅중 걷는다. 그는 목을 길게 빼고 캄캄한 밤하늘의 그믐달을 물어뜯어 본 사람인지도 모른다. 다음에 만나면 그에게 별이나 하나 따 달라고 슬쩍 부탁해볼까? 
 
<안도현·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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