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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소년법 폐지는 법치주의에 어긋난다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으로 촉발된 소년법 폐지 청원자가 25만 명을 넘어섰다. 국민의 공분을 마주하니 지난 8년간 학교폭력 등 청소년 비행을 막기 위해 노력해온 필자로서는 그 참담한 심정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소년법 폐지나 개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의 범죄 내용보다 처벌의 수위가 터무니없이 낮다며 소년법을 아예 폐지하거나 형벌 부과 연령을 내리는 동시에 사형이나 무기징역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여러 면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측면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에 의해 작동되므로 대다수의 국민이 동의하게 된다면 소년법의 폐지나 개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법의 폐지나 개정이 그에 찬성한 다수를 넘어 전체 국민의 동의나 승인을 얻기 위해서는 입법 과정에 전체 국민의 의견을 반영할 길을 반드시 열어 놓아야 한다. 특히 법의 폐지·개정으로 인해 직접적 불이익을 입을 이해 당사자에게는 더욱 많은 의견 제시의 기회를 보장해 줘야 한다. 그래야만 그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법의 폐지·개정 과정에서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국민의 동의나 승인에 따른 법에 의한 지배를 이념으로 하는 법치주의의 대원칙이다.
 
소년법을 폐지·개정하여 미성년자 범죄에 대해 사형이나 무기징역형까지 선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범죄를 저지른 미성년자뿐 아니라 잠재적으로 범죄자가 될 수 있는 미성년자에게 이전과 비교해 불이익을 주거나 주게 될 가능성을 초래하는 것이다. 결국 소년법의 폐지·개정의 핵심 이해 당사자는 미성년자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원칙상 소년법의 폐지·개정 과정에는 미성년자에게 충분한 의견 진술권을 보장해주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정치에 참여할 권리도 주어야 한다. 특히 소년법 폐지·개정을 통해 형벌에 있어서 성인과 동등한 취급을 하고자 한다면 우선 민주주의에서 핵심 권리인 참정권부터 성인과 동등하게 주어야 한다. 그런데 현행 공직선거법은 미성년자에 대해 선거권을 비롯한 참정권을 제약하기 때문에 미성년자는 법적으로 선거권을 행사하여 소년법의 폐지나 의사 형성에 참여할 수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년법의 폐지·개정을 강행하는 것은 민주주의나 법치주의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
 
나아가 사형과 무기징역형은 범죄자에 대해 영구히 또는 무기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박탈하는 것이다. 사형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자들은 살아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죽은 자들이다. 법적 책임은 자유와 권리를 전제로 하며 무거운 책임을 부과하려면 그에 상응한 자유와 권리가 부여돼야 한다. 그러한 자유와 권리에는 선거권을 비롯해 형벌을 부과할 근거가 되는 법률의 제정이나 폐지·개정에 참여할 정치적 권리도 당연히 포함된다. ‘유엔 아동 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이 형사책임무능력 연령을 상향하라고 권고했고, ‘유럽 아동 옴부즈퍼슨 네트워크(European Network of Ombudspersons for Children)’가 형사책임무능력 연령을 18세까지 올려야 한다고 선언한 것도 미성년자에게 정치적 권리를 주지 않은 채 과도한 책임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이념을 표방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형법에 따르면 미성년자에 대해서도 사형이나 무기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으나 공직선거법은 미성년자에 대해 참정권을 제한하고 있다. 형법과 공직선거법만 놓고 본다면 우리 법 체계는 평등 원칙이나 법치주의 원칙을 위반하는 셈이다. 하지만 소년법에서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에게는 사형이나 무기징역형을 선고할 수 없도록 막고 있으므로 법 체계 전체를 고려하면 큰 문제점이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직선거법 규정은 그대로 둔 채 미성년자를 성인과 동등하게 취급하여 일정한 범죄에 대해 사형이나 무기징역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법 체계를 만드는 것은 위헌 소지가 매우 높다.
 
만약 소년법을 폐지하고자 한다면 동시에 미성년자에게도 성인과 동등하게 선거권을 주어야 하고, 민법상의 미성년자 연령 규정도 형사책임능력 연령 규정과 일치시킴이 마땅하다. 더 나아가 미성년자 관련 규정도 모두 개정해야 한다. 소년법을 개정하여 형벌의 상한을 올리는 등과 같은 것은 몰라도 소년법의 폐지나 형벌 부과 연령의 하향 조정은 헌법 이념을 비롯한 다른 법률 규정의 개정 내지 폐지와 맞물린 문제이기 때문에 아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초래될지도 모른다.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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