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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뭐냐고? 그걸 규정하는 순간 시는 사라져”

유연한 시 감식안을 갖춘 이시영 시인은 “시 쓰기를 의식하지 않아야 좋은시를 쓸 수 있다”고 했다. [김상선 기자]

유연한 시 감식안을 갖춘 이시영 시인은 “시 쓰기를 의식하지 않아야 좋은시를 쓸 수 있다”고 했다. [김상선 기자]

시는 무엇이고, 왜 쓰는 건가. 한 발 더 나가 왜 우리는 시를 읽나. 이런 궁금증 혹은 답답함(진짜 그런 게 궁금하거나 답답하다면)을 함께 고민하고 싶은 이시영(68) 시인이 자신의 열네 번째 시집 『하동』(창비·사진)을 펴냈다. 반드시 그가 빼어난 시를 쓰는 시인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씨의 시편들은 그런 궁금증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짧은 산문인 듯 회고록의 한 대목인 듯, 리듬감 없는 구절들을 일찍이 시로서, 시 지면에 발표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최원식씨도 착상이 비슷했던 것 같다. 수록시 ‘산동 애가’를 두고 “마치 신문기사인 양 육하원칙에 입각해 건조하게 기술한 이 줄글은 희한하게도 시다”라고 썼다. 그러니 시는 무언가.
 
그런가 하면 이씨는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당대의 감수성과 긴밀하게 호흡해왔다. 맞지 않으면 부딪쳐 깨졌고,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사회적, 미학적 판단을 피력했다. 1980년대에는 그런 노력이 사법당국의 제재를 불렀다. 황석영 방북기를 계간지 ‘창작과비평’에 실었다가 구속됐다. 목소리의 자유로운 분출이 만개한 21세기에는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문학·사회·정치 등 거의 모든 분야와 현상에 대해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그중 문학 분야에 있어서 그는 동년배 누구보다 유연하다. 최선의 시 공부는 남의 시를 열심히 읽는 거라며 임솔아·심보선·김현 등 젊은 시인들의 시를 읽고 평가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소통 불능의 꼰대가 아니다.
 
어떤 작품은 시가 아니라 짧은 산문 같다.
“짧은 행간 안에 이야기가 들어 있지.”
 
시 아닌 것처럼 쓰는 형식 실험인가.
“통념의 시를 거부하기 위해 쓴 시들이다, 말하자면.”
 
시는 무언가.
“시를 규정하는 순간 시는 사라진다.”
 
과녁을 적중하지 못하고 맴돌던 순환 문답은 시를 정의할 수 없다면 어떤 순간 시가 탄생하는지는 말할 수 있나, 라는 질문에 이르러 정처를 찾았다.
 
“김수영 시인의 시론으로 시 공부를 많이 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농부는 삽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대목이었다.”
 
프랑스 상징주의의 거장 말라르메의 시론(詩論)처럼, 기량이 정점에 도달한 발레리나가 춤을 출 때 자신이 춤춘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듯 시인이 시 쓴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고 쓸 때 비로소 뛰어난 작품을 얻게 된다는 얘기였다. 과거 김종삼, 요즘 논란이 인 서정주, 살아 있는 시인으로는 고은의 몇몇 작품들이 그런 수준에 올랐다. 무심함의 강조는 이씨 표현으로는, 일부 요즘 시인들의 ‘시의식 과잉’인 작품들에 대한 경계와 반성이라는 의미도 있다.
 
다음은 시집을 감상할 차례. 시집에 실린 90편 가까운 시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선시나 일본의 하이쿠 같은 느낌의 여백 많은 짧은 시와 과거 인생 체험에서 포착한 신문기사 같은 산문시.
 
‘오늘 하늘이 저처럼 깊은 것은/ 내 영혼도 한때는 저렇듯 푸르고 깊었다는 것’. 짧은 시 ‘하늘을 보다’는 좀 심심하다. 같은 짧은 시 가운데 ‘그네’ 같은 시에 눈길이 좀 더 머문다.
 
‘아파트의 낡은 계단과 계단 사이에 쳐진 거미줄 하나/ 외진 곳에서도 이어지는 누군가의 필생’.
 
이씨 세계의 진면목은 산문시인 것 같다.
 
‘1972년 겨울’ ‘학재 당숙모’ ‘전차’ ‘여수행’ 같은 시들이 그렇다. 기막힌 과거 우리 현대사, 인생의 서늘한 골목길을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마음이 움직인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다시는 관습적으로 ‘비슷한’ 시집을 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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