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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흔드는 공론화위…'46억원짜리 여론조사'로 끝나나

“신고리 5, 6호기 건설 문제는 공론화를 통해서 논의하겠지만 원전이 싸고, 안전하다는 건 (옛말이고) 이제는 그렇지 않다. 정부가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은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이다.”

 
'원전의 진실, 거꾸로 가는 한국' 토론회가 바른정당 김무성-강길부 의원과 자유한국당 정갑윤-정진석 의원 공동주최로 8월 3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김무성 의원이 토론회 사회를 맡았다. 박종근 기자

'원전의 진실, 거꾸로 가는 한국' 토론회가 바른정당 김무성-강길부 의원과 자유한국당 정갑윤-정진석 의원 공동주최로 8월 3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김무성 의원이 토론회 사회를 맡았다. 박종근 기자

 
13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 원전 안전규제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에 참석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말이다.  우 원내대표와 탈핵에너지전환 국회의원모임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였다. 우 원내대표는 지난 8월에도 탈원전 정책 연속 토론회를 주관해 ‘원전은 더는 경제적이지 않다’는 입장을 수차례 강조했다. 
 
앞선 8월 30일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과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뜻을 모아 출범시킨 정책모임 ‘열린 토론, 미래’는 국회에서 첫 세미나를 가졌다. 주제는 ‘원전의 진실, 거꾸로 가는 한국’이었고, 원전 찬성 측 전문가가 대거 발제자로 나왔다. 
 
이 자리에서 김 의원은 “아무런 법적 근거와 권한이 없는 공론화위원회에 원전 문제를 맡기는 것은 헌법과 국회를 무시한 비상식적 발상”이라는 말했다. 공론화위 활동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이다. 
 
‘국민의 뜻을 듣겠다’며 시작한 공론조사가 정치권의 물 흐르기에 혼탁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찬반 논리를 알리기 바쁘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 여부를 공론조사를 통해 결정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나온 6월 말 이후 여야는 수차례 토론회와 공청회를 열어 장외 여론전을 계속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한 교수는 “공론화 기간 중 열리는 국회 토론회는 탈원전 찬반을 지지하는 정치인이 개입해 사실상 세(勢)를 규합하는 용도”라며 “여야가 지역주민까지 동원해 찬반 여론몰이를 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탈원전 정책 당정협의가 7월 31일 국회에서 열렸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과 백운규 산자부 장관이 얘기하고 있다.강정현 기자

탈원전 정책 당정협의가 7월 31일 국회에서 열렸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과 백운규 산자부 장관이 얘기하고 있다.강정현 기자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사실상 중심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지난 12일 안전 점검을 명목으로 경북 경주 월성 원전을 방문한 자리에선 “신규 원전을 짓고 노후화된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는 건 10만년의 숙제를 후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는 ‘에너지전환정보센터’ 홈페이지도 열었다. 홈페이지엔 ‘세계의 원전 발전 비중은 감소 추세’, ‘원전, 안전성을 말하다’ 등의 콘텐트가 올라와 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사이트다. 
 
사이트 개설 전 공론화위가 자제를 요청했고, ‘산업부의 홍보 활동이 공론화 이후로 연기된 상태(이윤석 공론화위 대변인)’라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지만 산업부는 강행을 택했다. 아무런 실권이 없는 공론화위로서는 제어할 방법이 없다.  
 
산업부는 ‘장관의 발언은 정부의 에너지 전환 원칙을 언급한 것이고, 정보센터는 탈원전을 포함한 에너지전환 정책 정보를 제공하려는 목적일 뿐 공론화 과정에 영향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신고리 5, 6호기 공사 중단의 최대 명분인 ‘탈원전’을 언급하면서 공론화와는 별개라는 이상한 논리다. 
 
링(공론화위)을 만들어 놓고 링 밖에서 싸우는 꼴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론화에 참여하는 찬반 양측도 서로 ‘운동장이 기울었다’고 주장한다. 
 
최근 찬반 양측은 조만간 공개될 자료집 문구와 목차 구성 등을 놓고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자료집은 시민참여단의 학습용으로 쓰이는 만큼 최종 조사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갈등이 심해지면서 건설 중단 측인 ‘안전한 세상을 위한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시민행동’은 이미 한 차례 참여 중단을 시사하기도 했다.  
 
.신고리 5,6호기 백지화시민행동 회원들이 9월 1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긴급 회의를 갖고 있다.김춘식 기자

.신고리 5,6호기 백지화시민행동 회원들이 9월 1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긴급 회의를 갖고 있다.김춘식 기자

 
15일 기자회견에서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공론화위가 우리 측 자료집 일부 내용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등 사실상 검열을 하고 있다”며 “설명자료 내용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초 시민행동 측은 참여 중단을 선언할 계획이었으나 이날 오전 대표자 회의를 거쳐 일단 참여는 하기로 결정했다. 이 갈등으로 자료집 완성이 지연되면서 16일 열린 시민참여단 첫 오리엔테이션에선 자료집을 나눠주지 못했다.
 
만약 찬반 양측 어느 쪽이라도 공론화위의 활동에 불만을 갖고, 참여 중단을 선언하면 이번 공론화는 의미가 없어진다. 사례가 있다. 지난 2001년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2단계 사패산구간 공사가 불교계와 환경단체의 반발로 중단됐다. 
 
이듬해 대안노선 검토를 공약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고, 2003년 9월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에서 공론조사 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추진한다는 방침이 확정됐다. 그러나 불교계는 세 차례에 걸쳐 공론조사를 거부했고, 아무런 합의도 끌어내지 못한 채 시간만 계속 흘렀다. 결국 사업은 중단한 지 2년이 지나서 1조5746억원이라는 손실을 남기고서야 재개됐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공정성과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쪽은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 공론화가 자칫 ‘46억원짜리 여론조사’로 전락할 수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46억원은 이번 공론화를 위해 책정한 예산이다. 공사 지연에 따른 손실을 감안하면 액수는 더욱 늘어난다.  
 
2003년 환경단체·불교계의 반발로 중단된 사패산 터널 공사 현장. 공사를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 있다. 사패산터널 반대 시위건물. <중앙포토>

2003년 환경단체·불교계의 반발로 중단된 사패산 터널 공사 현장. 공사를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 있다. 사패산터널 반대 시위건물. <중앙포토>

 
신고리 5, 6호기 공론조사는 주로 지역 이해관계자 간의 대립인 다른 국책사업과 성격이 다르다. 국가 미래 에너지 정책의 큰 틀을 짜는 조사이기 때문이다. 이해 관계자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절차를 거쳐 합리적인 결과를 내지 못하면 큰 사회적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판이 커졌는데 불씨는 여전하다. 현재까지 공개된 일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찬반 비율이 엇비슷하다. 만약 최종 여론조사 결과가 0.1%포인트 차이일 정도로 박빙일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1차 조사와 최종 결과 사이의 의견 변화율은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도 결정되지 않았다.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보의 대칭적 전달을 방해하는 그 어떤 행위도 차단해야 한다”며 “정부와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손을 떼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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