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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기억 문화로 발굴하다

문화비축기지 야외공연장으로 재탄생한 2번 석유 탱크. 옛 탱크를 해체해 6번 탱크를 새로 만들었다.

문화비축기지 야외공연장으로 재탄생한 2번 석유 탱크. 옛 탱크를 해체해 6번 탱크를 새로 만들었다.

1977년에 찍은 석유비축기지 위성사진

1977년에 찍은 석유비축기지 위성사진

2014년 굴착기로 옛 진입로를 찾던 모습

2014년 굴착기로 옛 진입로를 찾던 모습

위에서 본 문화비축기지 2번 탱크. [사진 조승현 작가]

위에서 본 문화비축기지 2번 탱크. [사진 조승현 작가]

문화비축기지 6번 탱크. [사진 조승현 작가]

문화비축기지 6번 탱크. [사진 조승현 작가]

2014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굴착기 한 대가 서울 상암동 매봉산 자락에 섰다. 그리고 언 땅을 조심스레 파내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동작이 거칠어진다 싶으면 곁에 선 사람들이 아우성쳤다. “그만 하세요! 살살 긁어주세요!” 굴착기 기사를 어리둥절케 하던 수일간의 더딘 작업 끝에 마침내 흙이 걷히고 발파 흔적이 거칠게 남은 암벽이 나왔다. 41년 전 새겨진 흔적이었다. 마포 석유비축기지 국제현상설계경기의 당선팀인 건축사사무소 ROA 건축가들과 허서구 원도시건축 대표는 비로소 안도했다. 옛 공사 통행로를 출입구로 만든다는 아이디어를 그대로 추진할 수 있는 현장 증거를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그렇게 ‘메리 크리스마스’가 됐다.

 
지난 1일 문 연 마포 문화비축기지는 문화재 발굴 현장 같은 공사 과정을 거쳤다. 비상시를 대비해 6907만L의 석유를 비축하던 기름탱크는 본래 모습을 잘 간직한 문화시설로 새로 탄생했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서울 새문안 동네도 돈의문박물관 마을로 재단장을 마쳤다. 철거하고 새로 짓기보다 있던 것을 매만져 되살리는 재생 건축이 요즘 대세다. 그 두 현장을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다녀왔다. 왜 우리가 도시를 재생해야 하는지, 어떻게 이어갈지도 살폈다.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한 석유 탱크들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한 석유 탱크들

 
“과도한 설계를 자제하면서 고유 지형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냈다.”
 
2014년 당시 마포 석유비축기지 국제현상설계경기 당선작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이랬다. 공모전에는 16개국 227명의 건축사가 참여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ROA의 계획안은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던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석유비축기지를 만들던 과정을 유추해 재생시키는 일련의 스토리텔링을 놓고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건축가 조성룡은 “발굴하듯 공사했다”고 평가했다. ‘땅으로부터 읽어낸 시간’이라는 제목의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만들 당시의 공사과정을, 땅에 새겨진 흔적을 되짚어보자”는 것이었다.
 
41년 전 공사현장을 발굴해 재생한 문화비축기지로 재생
왼쪽부터 ROA의 김봉수·김경도·이중엽·백상진·이일성 소장, 허서구 원도시건축 대표

왼쪽부터 ROA의 김봉수·김경도·이중엽·백상진·이일성 소장, 허서구 원도시건축 대표

석유비축기지가 돌산인 매봉산에 들어선 이유는 분명했다. 휘발유ㆍ디젤ㆍ벙커씨유가 담긴 탱크 5개를 암반 속에서 잘 보호하기 위해서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국제 유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서울시는 기름을 저장하기 위해 석유비축기지를 만들었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 시대를 위해 2000년께 이전ㆍ폐쇄하기까지 기지는 1급 보호시설로 각별히 관리됐다.
 
“폐쇄된 뒤 흙으로 덮힌 채 방치됐다 하더라도 이전 발파 흔적이 암반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거라는 아이디어로 출발했습니다. 돌산에 작은 진입로를 내고서 공사를 시작했을 겁니다. 그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 발파한 뒤 큰 구덩이를 내고 탱크를 만들어 넣고, 콘크리트 옹벽을 탱크 주변에 세우고 흙으로 덮으면서 다시 진입로를 따라 빠져나왔을 거라고 공사 과정을 유추했습니다. 당시에는 진입로를 따라 탱크를 묻고 나왔다면 재생할 때는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 탱크를 열어보자고 생각했죠.”(ROA 김경도 소장)
 
과거의 진입로를 현재의 출입구로 만들려면, 일단 옛 길부터 찾아야했다. 길이 남아 있겠느냐며 설계안을 바꾸라는 지적도 많았다. 서두에서 말했듯 본격적인 공사를 하기 전 건축가들이 직접 굴착기 기사를 고용해 땅을 팠던 까닭이다. 다행히 땅은 과거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그렇게 열린 다섯 탱크는 약간의 변형을 거쳐 6개의 탱크가 됐다. 1번과 2번 탱크를 걷어내 6번째 탱크를 새로 만들었다. 걷어낸 자리에는 유리 탱크를 만들어 전시장으로 쓸 수 있게 하거나(1번), 야외 공연장으로 만들기도 했다(2번). 3번 탱크는 원형 그대로 보존돼 석유비축기지의 마지막 모습을 살필 수 있다. 4번과 5번 탱크는 탱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15m 높이의 탱크 안은 쇠가 녹슬어,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검붉은 빛깔을 품었다. 허서구 대표는 “다섯 탱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왜 그렇게 소중하게 보관됐는지 6개의 탱크로 재생된 이후에도 이야기가 계속 회자됐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1 번 탱크

1 번 탱크

4번 탱크

4번 탱크

6번 탱크

6번 탱크

 
시간은 쇠탱크조차 자연으로 동화시킨다
가장 놀라운 광경은 4번 탱크에서 볼 수 있었다. 탱크를 보호하기 위해 둘러친 콘크리트 옹벽 틈에 커다란 오동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었던 것. 얇은 틈을 벌려가며 무럭무럭 자랐다. 콘크리트 옹벽 사이로 40여 년간 뻗어내린 그 뿌리가 놀라웠다.
 
1번 탱크에 가면 새로 만든 유리벽 너머 돌구덩이를 360도로 볼 수 있다. 세월이 흘러 탱크를 묻었던 구덩이는 숲이 됐다. 칡넝쿨, 아카시 나무 등이 자라나 푸르다. 게다가 흙에 묻혀 있다 드러난 콘크리트는 잿빛이 아니라 황토빛을 띈다. 콘크리트 옹벽마저 자연에 가깝게 바뀌고 있었다. 시간은 그 어떤 인공 구조물도 자연으로 동화시키고 있었다. 새로 지은 건축물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이 시간성을 6개의 탱크를 돌며 경험할 수 있다.
 
“지나온 모든 것들이 보석 같은 존재에요. 우리가 벌려 놓은 일에 대해 너무 냉소적이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때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죠. 어설프게 만든 도시라지만 안목과 혜안을 갖고 상상력을 보태면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새로운 도시로 바꿀 수 있어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허 대표)
 
유럽에서는 더 이상 쓰지 않는 1차 산업혁명의 유산을 어떻게 재활용할지를 놓고 오랜 논의를 거쳤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전세계 재생 건축의 롤모델이다.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바꿨는데 연간 방문객이 500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옛 산업기지가 꼭 문화시설로만 재생돼야 하는 걸까.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기능을 분석해 건물을 재생시킬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 시설에 지나치게 집중해선 안 된다(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는 지적도 있다.
 
오스트리아 빈의 가소메터 시티는 가스 탱크를 주상복합 건물로 바꾼 사례다. 1896년 완공된 가스 탱크 네 동은 90년이 지나 가동이 중단됐다. 그리고 2000세대가 사는 아파트를 포함해 쇼핑몰·콘서트홀·영화관 등 주거복합시설로 재생됐다. 가스 탱크가 있는 지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슬럼화였다. 도심 외곽 산업지구인 이 지역을 살리기 위해 빈 시는 재생 계획을 면밀히 짰다. 지역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시설로 재생시켰다는 점에서 가소메터 시티는 높이 평가받고 있다. 건축물 또는 도시를 재생시킬 때 지속가능하게 다시 쓰려면 어떤 기능을 넣어야할 지부터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돈의문 박물관마을로 재탄생한 새문안 동네
옛 새문안 동네 모습. 인근 직장인을 위한 음식점과 술집이 즐비했다.

옛 새문안 동네 모습. 인근 직장인을 위한 음식점과 술집이 즐비했다.

돈의문 박물관마을 재생 프로젝트를 맡은 건축가 민현식(기오헌 대표)은 학창시절 돈의문 네거리 인근에 살며 봐왔던 동네를 추억했다. 이름 따라 문이 새로 생기면서 만들어진 첫 마을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전차길을 만들면서 돈의문과 성곽을 없앴죠. 당시 광화문에서 마포로 가는 전차가 지나는 길목이었습니다. 불빛 가득한 광화문을 지나 좀 으슥했어요. 비석 만드는 석공 작업장, 접골원, 의족가게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동네는 60년대 말,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이 들어서고 문화방송국(현 경향신문)을 필두로 고층건물이 들어서면서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민 대표는 “허름한 주거지가 직장인을 위한 식당과 술집, 통금시간에 걸리면 찾는 여관으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근 100년 간 도심지 곁에서 조용히 자리잡고 있던 동네가 최근 떠들썩해진 것은 돈의문 뉴타운 개발 때문이다. 공원화 계획 탓에 사라질 뻔했다가 기사회생했다. 서울시가 마을을 보존하고 재생시키기로 한 것이다. 좁은 골목길 사이 30년대 일식주택, 도시형 한옥, 70~80년대 불란서식 집 등 근ㆍ현대의 집장사 집을 모두 볼 수 있는 동네라는 데 의의를 뒀기 때문이다. 민 대표는 “서울 시민이 살아왔던 100년 간의 역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기억 저장고이자 박물관 같은 마을”이라며 “동네 풍경과 기능을 유지하는 데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돈의문 박물관마을’로 재단장한 모습.

‘돈의문 박물관마을’로 재단장한 모습.

동네의 옛 모습들.

동네의 옛 모습들.

70~80년대 동네마다 있던 일명 ‘불란서식 집’의 모습.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70~80년대 동네마다 있던 일명 ‘불란서식 집’의 모습.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옛 동네의 기억을 우리는 왜 이어가야 하는 걸까. 이 질문에 민 대표는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 를 한 번 읽어보라고 답했다. “기억이 쌓인 도시는 다른 도시와 다르다. 정체성이 있는 도시”라는 설명도 더했다. 책의 ‘도시와 기억’ 관련 챕터의 한 구절이다.
 
“도시는 기억으로 넘쳐 흐르는 이러한 파도에 스펀지처럼 흠뻑 젖었다가 팽창합니다. 자이라(소설 속 가상 도시)의 현재를 묘사할 때는 그 속에 과거를 모두 포함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도시는 자신의 과거를 말하지 않습니다. 도시의 과거는 마치 손에 그어진 손금들처럼 거리 모퉁이에, 창살에, 계단 난간에, 피뢰침 안테나에, 깃대에 쓰여 있으며 그 자체로 긁히고 잘리고 조각나고 소용돌이치는 모든 단편들에 담겨있습니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에서는 현재 ‘공유도시’를 주제로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마을 안 60여 채 건물이 전시장과 식당ㆍ카페로 운영되고 있지만 비엔날레가 끝난 뒤의 용도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골목마다 새겨진 도시의 기억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 마을 재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건축사사무소 ROAㆍ기오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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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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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