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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중앙일보 팀장 sam@joongang.co.kr

[윤석만의 인간혁명]학교의 종말, 다시 ‘전인교육’의 시대가 온다

대학입시만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인생의 목적을 찾기 위한 공부를 가르쳤던 존 키팅. 학생들은 그를 내쫓은 학교에 항의 표시를 하기 위해 책상에 올라가 키팅이 가르쳤던 시를 읊는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90)의 한 장면. [중앙포토]

대학입시만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인생의 목적을 찾기 위한 공부를 가르쳤던 존 키팅. 학생들은 그를 내쫓은 학교에 항의 표시를 하기 위해 책상에 올라가 키팅이 가르쳤던 시를 읊는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90)의 한 장면. [중앙포토]

“선생님 시(詩)를 왜 배워야 하죠? 대학 진학엔 아무 도움도 안 되는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이죠. 졸업생 3분의 2가 아이비리그에 진학하는 명문고 월튼 아카데미에 새로 부임한 교사 존 키팅에게 한 학생이 묻습니다. 입시 공부도 바쁜데 왜 자꾸 시를 읊게 하냐는 거였죠. 잠시 생각에 잠겼던 키팅이 말합니다.
 
 “여러분이 목표로 삼는 의사·법관·정치인, 다시 말해 의술과 법·정치 등은 모두 고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삶에 필요한 수단과 방법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에요. 대신 시와 사랑, 예술과 낭만은 인생의 목푭니다. 삶의 목적이 되는 것들을 단지 방법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만 생각해선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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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키팅은 학교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윌리엄 예이츠(1865~1939), 로버트 헤릭(1591-1674)처럼 굳이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시인들을 학생들에게 가르칩니다. 그 유명한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에 충실하라)’이란 말도 헤릭의 시 ‘처녀들에게’를 읊으며 나온 말입니다. 하지만 키팅은 입시를 중시하는 월트의 교육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지요.

사진을 클릭하시면 '윤석만의 인간혁명'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영화가 개봉된 지 27년이 지났지만 교육 현실은 그때와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교실은 여전히 입시를 위해 존재하고, 수업은 암기와 지식습득이 주입니다. 키팅의 말처럼 교육을 통해 삶의 목표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얻기 위해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잊고 사는 듯합니다.
 
 물론 이런 교육 방식이 필요했던 이유도 있습니다. 다수가 선호하는 직업을 얻기 위해선 먼저 좋은 대학에 가야 했고, 입시 성적을 높이려면 시와 예술보다 수학과 영어를 더욱 잘해야 했습니다. 아이들의 꿈이 뭐가 됐든 교사는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말하면 됐습니다. 평생 살면서 한번 꺼내볼까 말까 한 지식들을 십수년 간 달달 외우게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미래에도 이런 방식이 통할까요? 당장 초중고 교육의 최종 목적지인 대학부터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2030년 세계 대학의 절반이 사라진다”고 예측합니다. 지식의 반감기가 매우 짧아져 대학이 산업의 수요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지금까진 대학 졸업장이 좋은 일자리를 보장할 거란 믿음이 있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깨지고 있습니다.
미네르바 스쿨은 모든 수업을 화상으로 진행한다. 단, 기존의 화상수업과 달리 모든 강의는 일방적 수업이 아니라 토론식으로 이뤄진다. [중앙포토]

미네르바 스쿨은 모든 수업을 화상으로 진행한다. 단, 기존의 화상수업과 달리 모든 강의는 일방적 수업이 아니라 토론식으로 이뤄진다. [중앙포토]

 
 전통적인 대학은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개교한 미네르바 스쿨의 인기를 보면 알 수 있죠. 올봄에 신입생 210명을 뽑았는데 2만 명이 넘게 지원하면서 하버드보다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으로 꼽힙니다. 모든 교육은 온라인 강의와 토론으로 이뤄집니다. 교수의 일방적 수업이 아니라 스스로 지식을 탐구하고 협업을 통해 문제해결능력을 키웁니다. 학생들은 4년간 6개국에 위치한 캠퍼스를 돌며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세계시민으로서의 감수성을 키웁니다.  
 
 초중고교의 교육 방식도 새롭게 변화될 겁니다. 앨빈 토플러(1928~2016)는 ‘부의 미래’란 책에서 현대의 학교 체제를 산업화 시대의 노동력을 양성하는 곳으로 묘사했습니다. 단일화·표준화·대량화라는 산업 사회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학교 체제가 최적화 돼 있다는 거였죠. 쉽게 말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훈련된 노동력을 공급하는 게 학교의 최대 목표 중 하나였다는 겁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1928~2016)는 현대의 학교 체제를 산업사회에 필요한 노동력을 만들어내는데 최적화 돼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포토]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1928~2016)는 현대의 학교 체제를 산업사회에 필요한 노동력을 만들어내는데 최적화 돼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포토]

 이는 현대의 학교 체제가 처음 생겨난 19세기의 상황을 알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근대 국가가 형성되고 산업화가 빨라진 19세기 이후에 선진국들은 앞 다퉈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무교육을 시작합니다. 토플러의 말처럼 산업혁명이 불러온 새로운 사회 구조에 필요한 노동력을 양성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국가라는 공동체의 이념을 전파하고 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공교육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린 여전히 19세기에 만들어 놓은 학교 체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우리의 모든 교육방식은 1차 산업혁명이 있었던 19세기의 방식과 똑같다”고 말합니다. 그는 미래에 대해 “노동자가 거의 없는 세계로 향하고 있고 인간은 더욱 창의적인 일을 위해 진보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같은 미래를 앞두고 우린 어떤 교육을 준비해야 할까요.
 
 당장 정답을 알 순 없지만 18세기 이전에 우리가 원래부터 해왔던 방식, 즉 산업화 이전의 교육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8세기 이전의 교육은 지금과 매우 달랐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교육의 대상이 한정돼 있었다는 거였죠. 과거엔 생산에서 자유로운 소수의 지배계층만 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을 할 필요가 없었기에 인문과 교양, 올바른 매너와 품성 등을 기르는 전인교육이 중심이었습니다. 미래교육 전문가인 찰스 파델의 저서 ‘21세기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에 따르면 르네상스 이후 근세까지 주요 교과목은 독해·작문, 수사학, 역사, 철학, 수학, 음악, 미술, 라틴어 등이었습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굳이 배우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고대 그리스부터 근세까지 서양 문명사 2000년 동안 주요 교과목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비록 곧바로 투입 가능한 노동력을 생산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만 시민의 교양을 갖춘 공동체의 구성원을 양성하고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창의적인 과학자와 예술가, 철학자 등을 만들어낼 수 있었죠. 이는 곧 인간 문명이 발전할 수 있던 기틀이 됐습니다.  
 
 아마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알고 있던 지식의 총량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보다 훨씬 적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상상력과 창의성은 오늘날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보다도 훨씬 뛰어날 겁니다. 다빈치가 만약 현대에서 초중고교를 다니고 대학을 졸업했더라면, 아마도 그가 이룩한 것과 같은 큰 업적을 남기진 못 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미래 사회는 어떻게 될까요. 4차 혁명시대에는 18세기 이전과 같은 전인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19~20세기 산업화 시대에 인간이 해야 했던 노동의 대부분을 인공지능(AI)가 대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죠. 리프킨이 ‘노동자가 거의 없는 세계’, 노동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지난 회에서 살펴봤든 이러한 ‘신(新) 20대 80의 사회’에선 그 동안 우리가 습득하기 위해 노력했던 도구적 기술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결국 현재와 같은 학교 체제는 사라질 거란 이야기죠.
아테네 학당(1509~1510). 라파엘로는 이 그림에서 인류 역사상 큰 발자취를 남긴 위인들을 한데 모아 놨다. 어두웠던 중세가 끝나고 교육과 문화, 예술, 과학이 꽃피웠던 르네상스 시대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림 정중아엔 손을 위로 들고 이데아를 이야기하는 플라톤과 손바닥을 아래로 가리키며 현실의 인간을 강조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중앙포토]

아테네 학당(1509~1510). 라파엘로는 이 그림에서 인류 역사상 큰 발자취를 남긴 위인들을 한데 모아 놨다. 어두웠던 중세가 끝나고 교육과 문화, 예술, 과학이 꽃피웠던 르네상스 시대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림 정중아엔 손을 위로 들고 이데아를 이야기하는 플라톤과 손바닥을 아래로 가리키며 현실의 인간을 강조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중앙포토]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논의되는 교육 이슈들을 보면 이런 이야기들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요즘 가장 뜨거운 논란은 교사를 늘릴 것이냐, 아니면 줄일 것이냐 하는 겁니다. ‘OECD 수준에 맞춰 교사를 증원해야 한다’, 혹은 ‘인구 감소로 오히려 줄여야 한다’ 등의 논쟁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논의는 빠져 있죠. 향후 교사의 역할과 학교의 체제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신경 쓰고 있지 않습니다. 머지않아 주입식 수업과 지식 전달에 익숙한 지금의 교사와 학교 체제는 쓸모없어질 것인데 말이죠.
 
 그럼 다시 키팅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키팅은 단지 직업을 갖기 위한 교육,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교육을 부정했습니다. 삶의 목적이 아닌, 방식과 도구에만 얽매이는 교육 현실을 ‘죽은 시인의 사회’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렇다면 미래 교육의 방향은, 학교의 모습은 어때야 할까요.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시인들이 죽어 있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죠. AI와 대비되는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을 찾는 교육,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이익을 조화시킬 수 있도록 가르치는 학교가 필요할 겁니다. 미래 교육의 모습이 어떻게 펼쳐질 것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공식을 달달 외고, 각종 지식을 머릿속에 쌓아두는 형태의 교육은 아닐 겁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co.kr 
윤석만 기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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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교육팀 소속인 윤 기자는 2010년부터 교육 분야를 취재했다. 특히 인성·시민 교육에 관심을 갖고 관련 보도에 집중했다. 미래 사회엔 성적과 스펙보다 협동과 배려, 공감 같은 인성역량이 핵심능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를 주제로 ‘휴마트(humanity+smart) 씽킹’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중앙인성연구소 사무국장을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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