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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는 사실만 기록 … 수업은 주입식 대신 토론으로

진영에 갇힌 건국 논쟁 ③ 화쟁의 교과서 만들자
1948년 건국론자와 1919년 건국론자가 건국 시점 등에 대해 합의할 수 있을까. 정치권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학계에서는 가능할까.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까지 건국 연속성을 연구한 이민원 동아역사연구소 소장은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갈등이 10여 년이 될 만큼 길고, 상대방의 공격으로 인한 상처가 깊다는 이유에서다. 정진영(정치외교학) 경희대 부총장은 “학문적 토론이나 건전하고 합리적 대화가 안 되는 건 상대방을 배제하고 힘을 쥐겠다는 숨은 논리가 있어서다”고 말했다.
 
20여 년 동안 교과서 편찬·검정 업무를 맡아 본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관계자는 “교과서가 외부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상태에서 쓰여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치권이나 교육 관료가 압력을 가하지 말라고 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발행체제로 교과서를 낼 수 없다면 교과서 내에서 사실과 의견·해석을 구분하고, 의견과 해석은 다양하게 담은 교과서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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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은 ‘역지사지(易地思之)’할 수 있는 ‘화쟁(和諍)’의 교과서다. 2006년 독일과 프랑스가 펴낸 공동의 역사교과서가 가능성을 보여준다. 두 나라는 1806년 나폴레옹의 베를린 입성부터 1940년 히틀러의 프랑스 점령까지 네 차례의 큰 전쟁을 치렀다. 공동교과서를 연구한 한해정 박사는 “논란이 끝나지 않은 주제에 대해 교과서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균형 잡힌 다양한 사료를 주고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교과서 개발만으론 부족하다. 수업 방식도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학교와 교사가 진영 간 갈등이 첨예한 사안을 회피하지 말고 이를 수업에 끌어들이는 방식의 수업이 가능하다. 이는 1976년 독일에서 시작한 ‘보이텔스바흐 합의’ 원칙을 따른다. 이 원칙은 ▶바람직한 의견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특정 생각을 주입하지 않는다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적인 것은 수업도 논쟁적으로 한다 ▶학생들이 정치적인 상황과 자신의 관심 상황을 분석할 능력 등을 갖추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 원칙을 활용해 학교 수업을 바꾸는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단법인 징검다리교육공동체 강민정 상임이사는 “건국 논란 등도 이 원칙에 따라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건국은 1919년인가, 1948년인가’를 주제로 해 고교 한국사 수업을 한다고 하자. 현재 학교 수업은 교과서에 기술된 내용을 강의식으로 가르치는 데 그친다. 보이텔스바흐 원칙이 수업에 적용된다면 교사는 학생들에게 1919년 건국론, 1948년 건국론을 주장하는 신문 기사와 논문 등 자료를 학생에게 제시한다. 그런 다음 학생 스스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건국론의 입장을 택하게 한다. 교사는 같은 생각을 가진 그룹으로 학생을 묶은 뒤 같은 그룹 내에서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런 다음 상반된 입장을 가진 양측이 각자의 입장을 세우고, 상대방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반론 절차를 밟는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 주장의 허점을 찾아내고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면서 해당 주제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 강 이사는 “교과서는 학생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도와주는 참고자료 역할을, 교사는 원활한 토론을 진행하는 중재자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보이텔스바흐(Beutelsbach) 합의
독일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州)의 각 정치세력이 전후 좌우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보이텔스바흐라는 도시에 모여 합의한 교육의 원칙. 역사와 철학, 사회 등을 통합해 가르치는 시민교육 과목의 수업은 이 합의에 입각해 진행된다.
  
특별취재팀=강홍준·고정애·문병주·윤석만·안효성·최규진 기자 kang.h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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