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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기생 작명법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자! 김옥엽 명창에게 큰 박수를 부탁합니다.” 지난 토요일 오후 서울시민청 바스락홀에 유성기 가락이 흘렀다. 1920~30년대를 주름잡은 권번(券番) 출신 김옥엽 명창의 ‘사발가’다. ‘석탄 백탄 타는 건 연기나 펄썩 나건만 요내 가슴 타는 건 연기도 김도 안 난다.’ 김 명창은 소설가 김동인과 요란한 사랑을 나눴다. 당대 최고 인기 스타라 하룻밤을 함께하려면 쌀 300가마가 필요했다는 속설도 전한다.
 
당시 명창들은 권번 소속이 대다수였다. 속된 말로 기생(妓生)이요, 고상한 말로 해어화(解語花)다. 이날 흥미로웠던 대목은 기생 작명법. 고음반 연구가 김문성씨가 15년 전 타계한 한정자 명창을 생전에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했다. 예컨대 노래를 잘하면 구슬 옥(玉), 구슬 주(珠)를 썼다. 옥엽·옥심·은주 등이 대표적이다.
 
키가 크면 새 이름을 붙였다. 학선·비붕이 그랬다. 또 얼굴이 예쁘면 홍매·난초·죽엽·모란·영산홍 등 사군자와 꽃 이름을 달았다. 성정이 드센 경우에는 그 기운을 누르라고 춘하추동을 넣었고, 동기생 중 가장 빼어난 이에겐 참 진(眞)을 붙였다. 요즘 미인대회 순위도 진선미다. 그런데 왜 한정자 명창? 일본 연예인처럼 성공하라는 뜻에서였단다. 이름으로 풀어본 일제강점기 풍속사다.
 
이날 무대의 제목은 ‘반(盤)세기’. 지난 100년 세상을 흔든 해어화 넷의 기구한 삶을 옛 음반과 함께 돌아봤다. 소설가 김유정이 요즘의 스토킹 뺨칠 만큼 쫓아다닌 박녹주 명창, 평생 의친왕을 그리워하며 외롭게 살아간 장학선 명창, 자기 앞에서 할복 자살한 명망가 자제에 대한 죄책감에서 일생을 홀로 지낸 이진홍 명창 등 4인4색 사랑가가 마음을 적셨다. “우리를 상품시하지 말아 달라”는 장학선 명창의 간곡한 희망이 되레 애달프다.
 
‘반세기’ 공연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열렸다. 소위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었다. 평소 낡아 보였던 국악이 새롭게 다가왔다. 자칭 ‘국악과 결혼한 남자’ 김문성씨의 발상이 돋보였다. 현재 왕성히 활동하는 명창도 초대해 어제에 멈춘 소리가 아닌 오늘도 살아 있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랄까, 국악도 알고 들으니 재미가 넘쳤다. 우리 음악을 듣는 이가 없다고 볼멘소리를 되풀이할 때가 아닌 것 같다. 문제는 기획력이다.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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