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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인가 정권교과서인가

진영에 갇힌 건국 논쟁 ② 
‘1948년 대한민국 수립’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중학교 역사·고교 한국사 검정교과서의 집필기준이 내년 초 이렇게 달라진다. 집필기준이란 민간 출판사가 역사과 전공 교수 등을 통해 교과서를 제작할 때 지켜야 할 기준을 말한다. 교육부는 지난달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집필기준 제작을 의뢰하고 올 11월 공청회를 연 뒤 이런 내용을 발표하기로 했다. 달라지는 집필기준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가 2015년 발표했던 ‘대한민국 수립’이란 표현은 2년여 만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환원하게 된다. 둘 사이 차이는 ‘정부’라는 두 글자에 불과하나 현 정부에서 해석의 차이는 훨씬 크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대한민국 건국을 1919년으로 전제한다.
 
이처럼 동일한 역사적 사실을 놓고 정권별로 시각과 해석기준이 바뀌고 있다. 정치권과 역사학계가 목소리를 내 교육부에 영향을 미치고 교육부는 여기에 맞춰 집필기준을 바꾸거나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라고 민간 출판사에 요구하는 과정을 밟는다. 그 결과 정치적 해석이 교과서에 스며들면서 역사 교과서가 정권 교과서가 됐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좌편향 교과서 수정 요구, 2016년 박근혜 정부의 국정 역사 교과서 제작 때도 이런 과정이 나타났다.
 
최근엔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국정교과서 제작에 참여한 ‘부역자’를 청산하는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교육부 관계자)는 말도 나온다. 국정교과서 도입 저지에 나섰던 역사학회 30개 단체가 지난 8일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교과서 집필기준을 만드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관계자 등과 함께 공청회를 열어 역사교육 과정 개정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 공청회에선 보수정권 때 줄었던 근현대사 부분(조선 대원군 이후 현재까지 역사)의 분량을 늘리는 데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전체의 40%에서 50% 수준으로다. 이에 대해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시각이 정권 성향에 따라 바뀌고 그런 해석을 교과서에 싣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역사는 객관적이고 사실 위주로 쓰여야 하는데도 정권 성향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면서 소모적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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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교과서가 정권에 따라 달라지게 되면 ‘미래 세대’인 중·고교생이 알아야 할 역사적 사실이 누락 또는 제외되거나 오도되는 문제도 벌어질 수 있다. 특히 근현대사는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이 큰 부분이다.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기 위해 대한제국 등에 대한 연구 축적이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다. 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948년 건국이라고 규정하면 항일운동 역사가 묻혀 버리고, 1919년 건국이라고 하면 대한제국의 역사가 사라져 버린다”며 "잊혀진 대한제국 역사부터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도 “역사를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세력이 시작에만 집착하거나 완성에만 집착해 두 집단으로 나뉘어 세력화해서 논쟁을 벌이는 것은 사실과도 다를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강홍준·고정애·문병주·윤석만·안효성·최규진 기자 kang.h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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