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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 건국’ 독립운동 퇴색시켜 … ‘19년’은 대한제국 외면

진영에 갇힌 건국 논쟁 ② 건국은 시점이 아니라 과정 
지난해 12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동북아재단·한국학중앙연구원이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 전문대학원 교수가 “1948년 건국을 언급한다고 해서 친일파로 음해하는 저급한 주장들은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토론회장에 있던 광복회 회원들이 “항일독립운동을 했던 선열들의 희생을 모욕하지 말라”며 반발했다.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이라면 건국 이전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항일운동을 하던 역사는 무엇이 되느냐는 게 광복회의 문제제기다.
 
이처럼 건국을 특정 시점으로 지정하는 순간 그 시점 이전의 단계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 문제가 뒤따른다.
 
1919년을 대한민국 건국 시점으로 못박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고종이 독립협회 등과 연합해 황제의 자리에 오르며 세운 대한제국(1897~1910)의 존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와 무관하게 될 수도 있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1919년 9월 6일 상해 임시정부 청사에서 열린 임시의정원(제헌의회 역할을 한 기구) 회의록을 보면 임정과 대한제국이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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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시헌법 8조)를 삽입함은 우리 민족통일의 한 방침이 될 것이오. 더욱이 우리의 (대한제국) 황실은 적(일본)에 주권을 탈취당한 것이오.”
 
조완구 의원이 임시헌법 8조에 ‘구(옛)황실 우대조항’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고, 논란 끝에 이 조항은 투표를 거쳐 통과됐다. 이민원 동아역사연구소 소장은 “오랜 기간 동안 중국의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 국가주권을 선언하게 된 계기가 대한제국의 탄생이고, 국민주권을 선언한 계기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립”이라며 “대한민국 건국은 특정 시점으로 볼 게 아니라 수차례의 단계를 거친 역사의 연속성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말했다.
 
<‘진영에 갇힌 건국 논쟁’ 기획>
[1회] 건국 주역들이 본 건국
[2회] 건국은 시점이 아니라 과정
[3회] 화쟁의 교과서 만들자
 
특별취재팀=강홍준·고정애·문병주·윤석만·안효성·최규진 기자 kang.h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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