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시론] 동·서독 통일의 씨앗 된 ‘공포의 균형’ 전략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북한이 사실상(de facto)의 핵보유국으로 등장했다. 부인하고 싶겠지만 현실이다. 그것도 한 종류의 핵무기가 아니라 다종의 핵무기를 가졌다. 플루토늄탄·우라늄탄·증폭핵분열탄은 물론 수소탄까지 포함된다. 수소탄은 아직 멀었다고 우길지 모르지만 과거에도 그렇게 우기다가 여기까지 왔다.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도 “이번 핵실험이 수소폭탄 실험이었다는 북한의 주장 중에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수소폭탄 실험 이후 북한 고위 당·정·군 간부들은 무력통일을 입에 달고 산다. 이것이 우리의 안보 현실이다.
 
핵보유국과 비핵국가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돼 전쟁 단계로 발전하게 될 경우 비핵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대들다가 죽거나 항복하거나 둘 중 하나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의 거두(巨頭)인 한스 모르겐타우의 말이다. 비핵국가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핵보유국이 되는 것이다.
 
이른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 유지돼야 생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공포의 균형이 유지되면 서로가 서로에 대해 핵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 내가 핵무기를 사용하면 상대방도 핵무기를 사용해 나를 절멸시킬 수 있다는 공포감 때문이다. 미국·러시아·중국 등이 핵무기를 개발한 이후 현재까지 서로가 서로에 대해 핵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도 마찬가지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모두 세 번에 걸쳐 전쟁을 치렀다. 1947년과 65년에는 카슈미르 지역에 대한 영유권 문제로, 71년엔 동파키스탄의 독립 문제로 전쟁을 했다. 사실 양국은 민족·종교·영토 등 뿌리 깊은 상호 적대감이 있다. 가끔 폭탄테러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테러는 과거처럼 전쟁으로 비화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다. 두 나라 모두 핵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는 74년 제1차 핵실험 이후 98년에 5차례 더 핵실험을 하면서 핵무기보유국이 됐다. 파키스탄도 98년에 6번의 핵실험 끝에 핵무기보유국의 지위를 얻었다.
 
공포의 균형에는 전쟁 억제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협력의 전제조건이 되는 기능도 있다. 과거의 동·서독 사례가 대표적이다. 75년 소련이 동독을 포함한 동구권에 중거리 핵 탄도미사일 SS-20 650기를 배치했다. 그러자 미국의 단거리 미사일인 랜스와 퍼싱이 배치된 독일과의 균형이 무너졌다. 서독의 헬무트 슈미트 정부도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퍼싱Ⅱ 96기를 들여왔다.
 
슈미트 정부는 격렬한 국내 반대여론을 물리치고 동독과 공포의 균형을 이뤘다(남정호 논설위원 칼럼, 중앙일보 9월 6일자). 군사 억지력을 확보한 서독은 동독을 상대로 본격적인 포용정책을 펼쳤고 결국 서독 위주의 통일까지 갔다. 사실 인도와 파키스탄도 상호 억제력을 확보한 2000년대 이후 오랜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대화와 교역을 증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에 대해 억제력을 확보하고 남북 협력을 도모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우리도 핵무기를 갖는 것이다. 자체 핵 개발을 하거나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를 재반입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자체 핵무장은 핵확산금지조약(NPT)과 충돌 문제가 있는 데다 한국의 핵무기 개발 당위성을 국제사회가 인정하지 못할 경우 혹심한 제재를 받게 된다. 수출입으로 먹고사는 한국이 제재를 받으면 이를 감당하기 힘들 수도 있다. 따라서 자체 핵무장보다 NPT와 무관한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 재반입이 합리적이다. 전술핵이 재반입되면 한국민의 심리적 안정감은 커질 것이다. 괌이나 미국 본토에 있는 것보다 내 창고에 쌓여 있는 핵무기가 훨씬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핵전쟁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정상적인 경제활동과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전술핵이 재반입되면 국제사회는 북한만의 비핵화가 아니라 진짜 ‘한반도’ 비핵화를 논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술핵을 재반입하면 반입 절차, 운용, 사용 승인, 훈련 등 수백 가지에 대해 상호 협의하게 될 것이다. 협상 과정에서 미국과 전술핵을 공동 운영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모형보다 훨씬 더 많이 한국의 주권을 반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전술핵 재반입에 대한 정치적 의지를 결집한 이후에나 고민해 볼 수 있는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는 이미 정해진 것 같다.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니다. 왔을 때 잡아야 한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AD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