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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얻은 것과 아베 일본 총리가 잃은 것

11일 오후 슈뢰더 전 독일총리가 나눔의집을 찾아 이용수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1일 오후 슈뢰더 전 독일총리가 나눔의집을 찾아 이용수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권혁재 사진전문기자

‘8279㎞.’
 
게르하르트 슈뢰더(73) 전 독일 총리의 거주지인 독일 작센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생활하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까지의 직선거리다. 단순한 거리가 아니다. 전쟁범죄에 희생된 할머니들을 위한 깊은 위로의 순례길이었다.
 
슈뢰더 전 총리는 방한 4일째인 지난 11일 나눔의집을 찾았다. 외국의 전·현직 국가 원수급 인사가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단순한 위로 방문 차원이 아니었다.
 
그는 나치 독일군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에 희생된 소녀 안네 프랑크(1929~45)의 초상 액자를 미리 준비해왔다. 안네 프랑크는 나치 독일군을 피해 2년 동안 숨어 지내면서 겪은 일들을 기록했다. 훗날 『안네 프랑크의 일기』로 출간돼 나치의 만행을 생생하게 세계에 알렸다. 
독일에서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까지 직선거리. [사진 www.geori.org]

독일에서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까지 직선거리. [사진 www.geori.org]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 [중앙포토]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 [중앙포토]

 
소녀 시절 일제에 강제로 끌려가 산산이 짓밟힌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2004년 별세한 김순덕 할머니가 그린 ‘못다 핀 꽃’으로 비유되곤 한다. 이런 할머니 개개인이 겪은 고통과 희생이 결코 안네 프랑크 못지않다는 게 슈뢰더 전 총리의 설명이다.
 
슈뢰더 전 총리는 이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포옹하고 일일이 손을 맞잡는 데 잠시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옥선(91) 할머니가 예정에 없던 기억 팔찌를 선물하자 오른손목에 찼다. 할머니와의 만남에서는 “인권을 실현하는 분”, “여러분들이 쓰는 역사는 과거가 아닌 미래” 같은 치하도 잊지 않았다. 후손들이 다시는 이런 끔찍한 고통·희생을 겪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으로 읽혔다.
슈뢰더 전 총리가 이옥선 할머니에게서 기억 팔찌를 선물받고 있다. 김민욱 기자

슈뢰더 전 총리가 이옥선 할머니에게서 기억 팔찌를 선물받고 있다. 김민욱 기자

 
7년 총리 재임 시절 강한 개혁으로 ‘유럽의 병자’로 불렸던 독일의 경제 회생의 발판을 만든 그였지만 할머니들 앞에서는 최대한 예의를 갖췄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슈뢰더 전 총리는 자리에 동석한 할머니를 향해 오히려 “불편하신 몸에도 불구하고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슈뢰더 전 총리가 남긴 나눔의집 방명록. "이렇게 큰 고통을 당한 분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흐릅니다"고 적었다.

슈뢰더 전 총리가 남긴 나눔의집 방명록. "이렇게 큰 고통을 당한 분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흐릅니다"고 적었다.

 
통일 독일의 혼란스러운 사회를 ‘흔들리지 않게’ 이끈 그였지만 나눔의집 방명록에는 “이렇게 큰 고통을 당한 분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흐릅니다”라고 적었다. 동행한 김소연 통역사(미래동시통역 대표)를 통해 의미를 전해 들은 이용수(90) 할머니는 “너무나 멋진 분”이라고 순간 울먹였다.
 
앞서 그는 나눔의집 소녀상 앞에서 여전히 과거사를 사죄하지 않는 일본을 향해 날 선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할머니들은 노벨평화상 수상 자격이 충분하다고도 했다.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지는 순간에는 건강을 기원해 드렸다.
 
슈뢰더 전 총리는 나눔의집 일정을 마친 뒤 서울의 한 극장에서 일반 시민들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짧은 방한 기간 중 그가 보여준 이런 장면들은 기회마다 유럽국가들에 전쟁 과거사를 사죄해온 옛 가해국 독일의 정치 지도자 다운 역사인식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12일에도 포털사이트 주요 검색어에는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자료사진. [중앙포토]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자료사진. [중앙포토]

 
‘1133㎞.’
 
 일본 수도 도쿄(東京)에서 나눔의집까지 거리다. 슈뢰더 전 총리가 온 거리의 7분의 1에 불과하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할머니들을 찾지 않았다. 오히려 위안부 존재의 강제성을 부인한 채 위안부 한·일 합의서의 착실한 이행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만 강조하고 있다. 
일본 도쿄에서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까지 거리. [사진 www.geori.org]

일본 도쿄에서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까지 거리. [사진 www.geori.org]

 
과거사에 대한 독일 대 일본의 극명한 인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건은 과거에도 있었다. 1985년 독일의 전 대통령 바이츠 체커는 제2차 세계대전 40주년 연설에서 “비인간적인 행위를 마음에 새기려 하지 않는 자는 또 그러한 위험에 빠지기 쉽다”고 역설했다.
야스쿠니 신사(왼쪽)과 다하인 유태인 수용소. 일본과 독일과 전혀 다른 과거사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진 정책브리핑 홈페이지 캡처]

야스쿠니 신사(왼쪽)과 다하인 유태인 수용소. 일본과 독일과 전혀 다른 과거사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진 정책브리핑 홈페이지 캡처]

 
반면, 비슷한 시기 일본은 ‘전후 정치 총결산’을 내걸면서 A급 전범까지도 추도하는 야스쿠니 심사를 공식 참배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과거사 인식의 변화는 없는 셈이다.
 
적어도 나눔의집에서만큼은 독일·일본 양국의 공공외교 면에서 일본이 완패했다. 독일의 국가 이미지는 뛰어올랐다.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은 “아픈 과거사를 대하는 두 총리의 상반된 역사인식이 여실히 대비된 자리였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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