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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19) “나는 이상한 나라에 불시착한 외계인?”

포월침두가 있는 보해산 위에 UFO 같은 구름이 떴다. [사진 조민호]

포월침두가 있는 보해산 위에 UFO 같은 구름이 떴다. [사진 조민호]

 
이상한 나라에 불시착했다. 내 앰프가 고장 났다는 소문이 거창군 가조면에 퍼졌다. TV도 없는 산속의 밤은 길고 적적해서 음악마저 없으면 그 어두운 고요를 견디기가 상당히 힘들다. 무려 20kg이 넘는 앰프를 서울로 다시 데려가 고쳐올 수도 없어 음악 없는 긴 밤이 며칠 계속됐다. 내 사정을 딱하게 여긴 아랫집 목사님이 거창에서 고칠 길이 없는지 이쪽저쪽에 물어보셨나 보다.  
 
커피가 떨어져 원두를 사러 갔더니 사장님이 “앰프가 고장났다면서예~” 한다. 아는 동생이 있는데 오디오를 좀 볼 줄 안다며 바로 전화를 걸어준다. 차로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와 주었다. 그런데 이 앰프 나이가 올해로 딱 40살이다. 많아야 40세쯤 돼 보이는 이 친구, 자기와 비슷한 나이의 앰프를 뜯어보더니 생전 처음 접하는 내부 설계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 이상하네~”를 연발하더니 한 시간 만에 손을 든다.
 
거창까지 따라 내려와 제 나이를 망각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다 결국엔 사망해버린 23살 스피커의 생전 모습이다. 사망이유는 6회 참고. [사진 조민호]

거창까지 따라 내려와 제 나이를 망각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다 결국엔 사망해버린 23살 스피커의 생전 모습이다. 사망이유는 6회 참고. [사진 조민호]

 
“제 스승이 있는데예, 함 물어보께예” 하더니 휴대폰 카메라로 앰프 내부 이쪽저쪽을 찍어 어딘가로 보낸다. 5분도 안 돼 바로 답장이 온다. 이 앰프는 요즘 앰프와 달리 직류 앰프가 아니라 교류 앰프란다. 이런 앰프는 자기한테 가져와도 고칠 자신이 없다며 거창도서관 옆에 가면 ‘대영소리사’라는 곳에 도사가 한 분 계시는데 그분이라면 가능할 거란다. 직류? 교류? 도통 무슨 소리인지. 난 이 대목에서 거의 포기했다. 거기 가도 방법이 없을 거라고. 이 앰프는 여기 거창에서 사망하실 거라고.
 
거창에 내려와 평생 망하지 않는 회사를 만들고 이름을 ‘King Of My Life(KOML)’이라고 지었다. 괜히 고물(KOML)이라고 지었나. 온갖 고물과 함께 나도 고물이 되어가는 건 아닌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고수님의 위로에 눈물날 뻔
 
고수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거창 ‘대영소리사’ 사장님의 작업실. 수술대 위에 내장을 다 드러내 놓고 누운 40살 내 앰프가 보인다. [사진 조민호]

고수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거창 ‘대영소리사’ 사장님의 작업실. 수술대 위에 내장을 다 드러내 놓고 누운 40살 내 앰프가 보인다. [사진 조민호]

 
숨이 깔딱깔딱 넘어가는 앰프를 안고 못 고쳐도 그만이라는 심정으로 거창 읍내로 고려장을 치르러 갔다. 수십 년은 된 듯한 작업실에서 CPR(심폐소생술) 실시 단 두 시간 만에 고물이 다시 숨을 쉰다. 내 예상의 반의 반도 안되는 수리비를 치르고 나가려는데, 고수님이 앉으라 하더니 커피를 내주신다. 왜 내려왔냐, 뭐하고 지내냐, 처음하는 시골생활이 힘들지 않냐, 옛날 잘 나갈 때 생각하지 마라 힘들다, 지나가다 들러라~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받은 격려와 위로에 눈물이 날 뻔 했다. 앰프 고치러 왔다가 있지도 않은 친형을 만난 듯했다.  
 
목사님의 관심에서, 커피숍 사장님의 입으로, 다시 아는 동생의 어설픔을 거치고, 그 아는 동생 스승의 겸손을 통과해, 거창의 고수 손에서 다시 살아난 고물~ 왜 이곳 사람들은 남의 일을 제 일처럼 여길까? 가끔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내 일도 남이 해야 할 일로 미루고 떠넘기며 살아 온 나같은 도시것들에겐 너무나 낯선 하루였다. 이상한 나라에 불시착한 외계인 같았다. 나 혼자.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minozo@naver.com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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