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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송이의 뻔하지 않은 여행 글쓰기(3) 현지식대로 먹고 놀고 자고…여행의 발견

남들이 재미있어 할만한 여행 글을 쓰고 싶으시다구요? 누구나 한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다른 곳으로 시선이 분산되지 않는, 호기심 넘치는 여행 글을 쓰고 싶으시다구요? 그렇다면, 먼저 재미있는 여행을 하세요! 재미없는 여행을 하고 재미있는 글을 쓸 수는 없으니까요. <편집자>  
 
스위스 알프스.   [중앙포토]

스위스 알프스. [중앙포토]

 
여행에서도 일상에서처럼 먹고 놀고 잔다. 다만 여행이 일상과 다른 점이라면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먹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즐기다가 익숙하지 않은 잠자리에 든다는 점이다.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흘러가는 사물과 사람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 '의도적인 낯섦' 속에서 낯설고 신기하고 소중하고 특별한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여행 글쓰기를 위한 여행은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을 익숙하지 않은 눈으로, 낯선 이방인의 시선으로 적어 내려가는 것이다. 무시로 흘러가는 순간을 무시로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런 면에서 여행은 발견이다. 그러므로 소소하게든지, 대단하게든지 모든 여행자는 탐험가다. 
 
오지를 여행해야만 탐험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모든 여행자는 곧 탐험가다. 자신의 동네 골목길에서 소소하게 탐험을 하듯 작은 것을 발견하며 여행하는 미치다코우의 『동경산책』을 보아도 여행이 꼭 먼 곳으로의 떠남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도서 `동경산책`  [프리미엄]

도서 `동경산책` [프리미엄]

 
낯선 곳에서 낯선 시선으로 
 
여행 글쓰기를 위한 여행에서는 이방인 특유의 ‘낯선’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일부러 낯섦을 찾아 나서야 할 때도 많다. 난생 처음 가본 곳과 몇 번 가본 곳은 다르게 보인다. 자기도 모르게 익숙함이 스며든다. 어쩌면 나 자신과 내가 관계하는 사람들과 사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려운 것은 그만큼 너무 가까이 있다는, 익숙한 탓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냥 여행'이 아닌 여행 글쓰기를 위한 여행에서는 먹고 놀고 자는 방법도 사뭇 달라야 하리라. 일반적인 여행에서라면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며 내가 자고 싶은 곳에서 잠든다. 하지만 이제 여행글을 쓰기로 작정했다면 나의 취향을 넘어 타인의 취향을 넘나드는 큰 그릇이 필요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외에 너와 그, 그리고 그들이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도 살펴야 한다. 내가 느끼는 것 외에 그들이 느끼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여행글을 쓰는 나는 철저히 주체이면서 동시에 여러명의 객체가 된다.
 
규슈 구로카와. [중앙포토]

규슈 구로카와. [중앙포토]

 
그러기 위해서는 여행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현지식'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행가이드북을 쓰겠다고 하면 말 할 것도 없고(사실 가이드북 쓰기에는 일정한 메뉴얼이 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겠지만 은퇴자들이 가이드북을 쓰기는 사실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 가이드북은 체력전이고 시간싸움이다) 에세이라고 하더라도 '여행의 발견'을 위해선 가능한한 현지인을 만나 이야기하고 현지식으로 식사를 하고 현지인이 즐기는 곳에 가서 다분히 현지식으로 즐기는 것이 필요하다. 나의 위장과 잠과 대화를 불편하게 하는 그 모든 낯선 '현지식'을 겪어라. 그리고 달콤쌉쌀한 그 맛을 사랑하라.  
 
기자는 흔히 "원고의 80%는 현장에서 끝난다"고 말한다. 여행을 제대로 했다면 뭔가를 꾸역꾸역 쓰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여행글을 쓰는 법'이란 말도 사실 웃기는 것이다.
 
글쓰는 데에 법칙이란 건 따로 없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면 된다. 서술어가 앞에 나오고 주어가 나중에 나와도 된다. 기승전결 따위는 아예 필요도 없을 뿐더러 재미에 방해만 된다. 글에서 감동이나 지식을 얻었다면 독자는 그저 자연스레 '재미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구체적인 경험에서 구체적인 글이 나오고 디테일한 경험에서 디테일한 글이 나온다. 추상적이고 애매한 글을 쓰고 싶다면 추상적이고 애매한 경험을 하라. 하지만 살아있는 글을 쓰고 싶다면 안으로 안으로 더 들어가라. 그들의 생활안으로 마음안으로, 나의 시간속으로 마음속으로.  
 
그러기 위해선 패키지여행이나 단체여행이 아닌 소규모 자유여행을 해야 한다. 패키지여행은 여행자의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한다. 준비할 것도 대처할 일도 없다. 숱한 여행자들이 가는 똑같은 코스로 나의 여행이 이미 정해져 있다. 
 
서호주 북부의 킴벌리 지역.  [사진제공=호주관광청]

서호주 북부의 킴벌리 지역. [사진제공=호주관광청]

 
일탈을 위해 여행을 떠나왔는데 정작 여행코스 밖으로의 일탈은 불가능하다. 나는 여행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이곳을 지나 저기로 가서 그것을 보고, 저것을 먹으며 여기에서 자는 여행자코스를 순례하며 여행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말 같지만, 여행의 기본인 이러한 현지식 태도(?)를 간단히 무시해 버리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봐왔다. 어디를 가더라도 한식을 고수하고 외국어가 잘 안된다는 이유로 현지인과의 접촉은 시도하지 않은 채 같이 간 일행과 주로 대화를 나누며 무조건 화장실이 편하고 깨끗한 잠자리만 찾아 들어가는 것, 온전히 휴양을 목적으로 떠난 여행이 아니라면 그것은 '그냥 여행'에서도 꽤나 손해를 보는 장사다.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한국에서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을 풍경만 달리한 채 경험하고 돌아오는 모양새다. 여행을 다니며 눈은 커졌을지 몰라도 시야는 그대로다.  
 
수많은 나라를 여행했다는 한 은퇴 노부부는 늘 트렁크에 전기쿠커와 라면스프, 고추장을 가지고 다닌다. 아침과 저녁은 꼭 호텔방에서 몰래 보글보글 뭔가 얼큰하거나 구수한 것을 끓여드신다. 하루라도 한식을 챙겨먹지 않으면 도저히 여행을 즐겁게 다닐 수 없다는 이유다.
 
꼭 패키지 여행단이나 중장년층에서만 벌어지는 일도 아니다. 한 때 아르바이트 삼아, 경험삼아, 대학생들을 데리고 실크로드와 인도 등지로 역사탐방여행을 떠나는 팀의 TC(Tour Conductor, 여행 인솔자)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스무살 남짓한 대학생들의 태도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캐나다 로키산맥을 관통하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  [사진제공=캐나다관광청]

캐나다 로키산맥을 관통하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 [사진제공=캐나다관광청]

 
내 보기엔 오지 여행치고 굉장히 좋은 현지 식사와 잠자리를 갖춘 일정이었는데도, 아이들은 밤마다 내게 전화를 해서 헤어드라이어 같은 편의품을 찾았고(하물며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호텔프론트 연결도 직접 하지 않고 누군가를 의지하는 것이었다) 고급스러운 현지식이 가득한 식탁에서 고추장과 김을 꺼내놓고 밥을 비벼먹으며 매운 컵라면을 곁들였다. 대화도 주로 같이 온 일행과만 했다. 이 부분에서 괜히 찔리는 분들도 계실테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얘기는 여행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마르코폴로나 혜초가 아니더라도, 돈을 주고 사는 여행상품이 넘쳐나는 요즘에야 더 이상 탐험 따위는 없다고 해도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여전히 신비함을 감추고 있다. 적어도 여행을 하는 그 당사자에게만은.  
  
관광과 여행의 차이 
 
나는 죽어도 여행중에는 한식을 먹어야 하고, 야영은 두 말할 필요 없이 여러명이 북적대는 방에서는 잠들 수 없고, 쑥스러워서 못하는 외국어로 사람을 사귀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면 과감히 여행글쓰기는 그만 포기하라고 말하겠다. 
 
'그냥 여행', 아니 '그냥 보기만 하는 여행'은 돈과 체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지구 끝까지 가 볼수도 있고 지구 한 바퀴를 돌 수도 있으며 알래스카나 아프리카, 히말라야는 물론 남미나 남태평양도 갈 수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여행상품은 돈만 들이면 생각보다 다양하고 편리한 것도 많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나는 000까지 가봤다. 난 50개국을 다녀왔다’는 자랑 정도로 만족할밖에.  
 
암스테르담. [중앙포토]

암스테르담. [중앙포토]

 
궁하면 통한다. 말이 안 통해도 사람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호감만으로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사실 길 나서면 고생이다. 어쩌면 그것이 여행이다. 여행길은 고생길이다. 멋드러진 여행사진이 여행을 대변해 주지 않는다. 여행과 여행사진이 종종 별개일 거라고 느낄 만큼 그 둘은 다른 장르다.
 
어쩔 수 없이 젊은 사람에게나 나이든 사람에게나,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나 적은 사람에게나,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누구에게나 도전일 수밖에 없다. 여행의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아니 그 두려운 마음을 감수하겠다는 마음에서부터 여행의 묘미와 재미는 싹튼다.  
 
도전이 아닌 여행은 관광에 머문다. '관광=돌아다니면서 경치를 보고 감탄하며 사진을 찍는 놀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밝혀지고 거의 모든 국가의 가이드북이 나온 요즘에야 누군가의 '관광책'은 별 의미가 없다. 관광을 실컷 하고 돌아와서 멋진 여행책을 쓰겠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나는 꽤 멋있는 여행을 다녀왔고 이제 나의 인생을 녹일 멋진 여행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쓰면 될까?’를 고민하는, 많은 분들에게 먼저 묻고 싶다. "당신은 정말 '여행'을 다녀오셨나요?"    
 
이송이 여행작가·일요신문 여행레저기자 runaindia@hanmail.net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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