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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0개 돌조각 ‘티타늄 용접’ … 미륵사지 석탑 11월 제모습

한국 석탑의 기원으로 꼽히는 백제 미륵사지 석탑(기단 폭 12.5m, 높이 14.3m, 무게 1892t)이 두 달후 옛 모습을 되찾는다. 안전진단부터 재조립까지꼬박 20년이 걸렸다. 사진은조립 마무리 후의 투시도(최종 모습은 약간 달라질 수 있음).

한국 석탑의 기원으로 꼽히는 백제 미륵사지 석탑(기단 폭 12.5m, 높이 14.3m, 무게 1892t)이 두 달후 옛 모습을 되찾는다. 안전진단부터 재조립까지꼬박 20년이 걸렸다. 사진은조립 마무리 후의 투시도(최종 모습은 약간 달라질 수 있음).

한국은 ‘석탑의 나라’다. 대략 1500개의 석탑이 우리 산하를 지켜왔다. 그 가운데 맏형이 있다. 전북 익산시 백제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639년 조성)이다. 국내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돼 한국 석탑의 모태로 꼽힌다. 300여 년 전 서측면이 허물어지자 사람들은 석축을 쌓아 탑이 무너지지 않게 했다. 1915년 일제는 콘크리트를 덧씌우는 공사를 했다. “문화재를 망쳤다”고 꼬집을 수 있겠으나 당시로선 신소재로 보강공사를 한 셈이다.
 
하지만 더는 그대로 둘 수 없었다. 98년 안전진단을 실시했다. 병세가 깊었다. 해체·조립이 결정됐다. 그러기를 올해로 20년째. 탑 안팎의 돌을 하나하나 걷어내고, 크기를 재고, 생김새를 기록하고, 또 이를 다시 쌓아 올렸다. 단일 문화재 보수로는 역대 최장 기록이다.
 
그 어머니 같은 탑이 11월께 제 모습을 찾는다. 지난 5일 현장을 둘러봤다. 전체 6층 가운데 현재 5층 옥개석(지붕돌) 조립이 한창이다. 두 달 후 기단 폭 12.5m, 높이 14.3m, 무게 1892t의 탑 전모가 드러난다. 김현용(41·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현장팀장은 “공사의 9부 능선을 넘어섰지만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했다.
 
현재 보수공사 중인 5층. [박정호 기자]

현재 보수공사 중인 5층. [박정호 기자]

왜 이리 시간이 오래 걸렸을까.
“참고자료가 거의 없다. 무(無)에서 시작한 것과 같다. 발굴→해체→조립 모든 과정이 도전이었다. 해체에만 10년, 조립에만 4년이 걸렸다. 수습한 돌조각만 2400여 개다. 잡석을 포함하면 3000개 가까이 된다. 길이·두께·모양이 모두 다르다. 같은 게 하나도 없다. 그것을 일일이 측량하고, 3D 스캐닝을 했다. 해체된 돌을 토대로 조립 설계를 했다. 총 사업비가 225억원에 이른다.”
 
원래 9층 탑이 아닌가.
“절반 이상이 무너져 6층 일부까지만 남아 있었다. 문화재 수리의 대원칙은 원형 보존이다. 최대한 옛 부재(部材)를 살려 썼다. 처음에는 47% 남짓 예상했는데 현재 72%까지 높였다. 옛 돌의 손상된 부분과 새 재료를 티타늄 봉으로 접합했다. 돌과 돌 사이 빈틈을 메우는 무기질 재료도 개발했다.”
 
해체작업 전의 모습. [사진 문화재청]

해체작업 전의 모습. [사진 문화재청]

미륵사지 석탑은 삼국시대 목탑에서 석탑으로 옮아가는 양상을 보여 준다. 목조건물처럼 돌을 맞춰 가며 쌓았다. 수많은 석재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참고로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의 부재는 64개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0호 이재순 석장(石匠)은 “옛날 돌은 높낮이가 모두 다르다. 자연 그대로 생긴 모습을 살려 표면이 거친 편이다. 새 돌도 그렇게 가공했다. 반듯하게 깎는 것보다 품이 세 배가량 들었다”고 설명했다.
 
석탑은 내년 하반기께 일반에게 공개된다. 가설 덧집 철거, 주변 정비 등이 남아 있다. 배병선 보수정비단장은 “우리 건축문화재 보존 기술이 한 단계 뛰어올랐다. 다른 문화재 복원의 전범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륵사지 수리 경험은 석가탑 해체·복원(2012~2016)에도 큰 참고가 됐다.
 
석탑 1층 안으로 들어가 봤다.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길이 8.5m, 폭 1.5m 통로가 있다. 탑의 중심 공간으로, 다른 석탑에선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그 한복판 심주석(기둥돌)에서 2009년 금동사리호·유리구슬 등 유물 9000여 점이 쏟아졌다. 당시 나온 사리 13점은 2015 년 말 제자리에 재봉안됐다. 1400년 전처럼 부처의 깨우침이 사방으로 뻗쳐 가라는 마음에서다.
 
17년째 현장과 함께해 온 김현용 팀장의 감회를 물었다. “대학 졸업 당시 계약직으로 왔던 기억이 새롭네요.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느낌입니다. (웃음) 탑이 천년만년 버텨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잘 버틸 겁니다.” 
 
익산=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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