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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러 ‘동북아 핵클럽’과 함께 돌아온 新냉전의 지정학

지난 6~7일 문재인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일정에서 하이라이트는 대북 원유 공급 중단 등 제재 강화에 러시아가 동참할 것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답변은 ‘얼마 되지도 않는 걸 갖고 얘기하지 말라’는 취지의 거절 의사였다. 북한과 연결된 송유관 폐쇄에 부정적 입장을 고수하는 중국과 함께 유조열차ㆍ유조차ㆍ유조선 등 언제든 북한에 유류를 공급할 수 있는 물류망을 가진 러시아가 대북 원유 공급 차단에 반대한 것이다.  
지난 6일 열린 한ㆍ러 정상회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발표문을 읽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6일 열린 한ㆍ러 정상회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발표문을 읽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앞서 중국 샤먼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은 “북한은 풀뿌리를 먹는 한이 있어도 체제가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제재의 무용성을 에둘러 표시한 발언인 동시에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사회의 제재 대열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선심을 쓰듯 러시아와 중국은 같은 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중ㆍ러가 북한에 핵보유국 위상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은 표면상 국제 핵 비확산 규범(핵확산금지조약ㆍNPT)과 독점적 핵보유국의 리더십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NPT에 가입해 핵 기술과 장비를 지원받아 핵 개발의 기초를 쌓았다. 이 때문에 1993년 3월 NPT 탈퇴를 일방적으로 선언했지만 국제 사회는 여전히 NPT 회원국의 의무를 요구하고 있다. 입장 특혜를 받았으니 단물만 빼먹고 나가선 안 된다는 간단한 이치다. 따라서 냉전 시대 북한과 이데올로기 동맹이었던 중ㆍ러라 해도 공식적으로 북한의 핵 개발을 용인할 수 없는 입장이다.
문제는 이런 공식 입장과 별개로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제재 노력을 누수 시켜온 구멍 역할을 실질적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해왔다는 점이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북한의 핵 개발을 방치 또는 암묵적으로 두둔해온 행위를 덮기 위한 레토릭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신형 ICBM 'Topol-M'. 2008년 배치된 전략무기로 핵탄두를 탑재한다. 사거리는 1만㎞ 정도로 북한의 신형 ICBM과 크기와 외형 등에서 유사하다. [사진 중앙포토]

러시아 신형 ICBM 'Topol-M'. 2008년 배치된 전략무기로 핵탄두를 탑재한다. 사거리는 1만㎞ 정도로 북한의 신형 ICBM과 크기와 외형 등에서 유사하다. [사진 중앙포토]

중국과 러시아는 왜 눈 감아주듯 북한의 핵 폭주를 방치했을까. 동북아에서 작동하는 지정학과 세력 균형의 역학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석희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핵보유국으로서 핵독점적 지위 보호보다 지정학적 요인이 더 비중 있게 작용하는 독특한 동북아 국제 역학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동북아 4강 체제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했던 미국의 위상이 부침을 겪는 과정에서 중국이 부상했고 러시아가 주춤했다. 미국은 일본과의 안보동맹 강화로 돌파구를 찾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전략적으로 연합해 역내 패권 경쟁을 벌이는 구도로 재편됐다. 이 구도에 북핵 개발이 세력균형의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은 북한이 핵 개발로 벼랑 끝 모험을 할 때마다 전략적 가치를 재검토했지만 매번 전략 자산으로 결론냈다. 순망치한인 북중 관계와 북한의 완충 역할로 압축되는 지정학적 판단 때문이다.  
러시아의 초음속 전폭기. 한 기당 4800억원에 달한다. 경제난을 앓고 있지만 러시아의 무기체계는 미국에 이어 2위 위상을 지키고 있다.

러시아의 초음속 전폭기. 한 기당 4800억원에 달한다. 경제난을 앓고 있지만 러시아의 무기체계는 미국에 이어 2위 위상을 지키고 있다.

역내에서 미ㆍ중 패권경쟁의 균형자 역할을 하는 러시아는 미국의 독주와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북한의 핵 폭주를 좌시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 이후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핵이 사라졌지만 그후로 26년만에 북한은 핵을 보유하게 됐다.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은 “기막힌 반전이자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냉전 당시 북ㆍ중ㆍ러 북방 삼각 그룹은 핵클럽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해결 과정에서 거론되는 평화협정ㆍ주한미군 철수 등을 이끌어내 역내의 미국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게 전략적 목표라는 점에서 북방 삼각은 이해가 일치하는 이익 공동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북한 정권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원유 금수에 반대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속내를 가늠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국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는 신동방정책을 내걸고 극동 러시아 개발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동북아와 태평양으로 눈길을 돌린 러시아로선 이 지역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야 하는데 북한ㆍ북핵 문제를 지렛대로 개입 명분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핵 문제에서 변방에 머물렀던 러시아가 주요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러시아의 발언 배경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서 “북한을 감싸면서 북핵 문제에 개입하려고 하는 러시아의 속내가 대미 관계에 변화를 주기 위한 레버리지 확보 차원인지 더 적극적으로 역내 패권 경쟁의 행위자로 나서려고 하는 것인지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중국에 이어 러시아까지 북한 핵문제를 지렛대로 삼으려 할 경우 북핵 해결은 더 꼬이고 복잡해진다는 점이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동북아의 전략 균형을 이제 미국이 냉철히 평가해야 하는 때가 임박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중국을 둘러싼 동북아의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바뀌지 않는 한 중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기 위해선 창조적 발상의 적용이 절실한 국면이다. 김 전 원장은 ”미국의 북한 비핵화 전략도 지정학이 핵비확산 논리를 압도하는 동북아의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이뤄질 수 밖에 없게 됐다”며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지원 선택을 압박하기 위해서라도 한ㆍ일 핵배치를 논의 테이블에 올리는 방안을 고심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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