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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 읽고 한국여성들 여성 차별에 눈 떠"

 작가는 단순히 글만 쓰는 사람이 아니다. 쓰기 이전에, 아니 쓰기 위해 읽는 사람이다. 결국 백지에, 그 백지를 메운 흔적을 묶은 책에, 그들이 쏟아놓는 것은 자신들의 생 체험과 독서 이력이 뒤섞인 어떤 덩어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 시대의 작가들은 요즘 어떤 책에 꽂혀 있을까. 그들 글쓰기의 뿌리에서 자양분 역할을 하는, 작가가 읽는 책 얘기를 작가로부터 직접 듣는다. 그들의 작업실을 찾아가서다. 표정과 육성이 살아 있는 책 소개, '작가의 요즘 이 책'이다. 1시간가량 동영상 촬영분을 10~15분 길이로 편집해 생생히 전한다. 영상에 못 담은 얘기는 기사로 함께 소개한다. 다섯 번째 순서는 82년생 김지영, 아니 78년생 조남주다. 조남주가 소설가고, 김지영은 조남주 소설의 주인공이지만 조남주와 김지영은 어쩐지 닮았다. 소설에서건 현실에서건 조남주들(혹은 김지영들)이 차별받는 상황은 비슷하기 때문일까. '작가의 요즘 이 책'은 2~3주 간격으로 토요일 새벽 업데이트된다. 지금까지 김훈·정유정·김연수·권여선을 만났다. 
 
소설책 한 권으로 요즘 한국사회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조남주 작가. [사진 시사IN포토]

소설책 한 권으로 요즘 한국사회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조남주 작가. [사진 시사IN포토]

 시장 반응을 놓고 보면 가히 신드롬적인 상황이라고 할 만하지만 그 돌풍을 피해간 독자도 있을 테니 다시 설명하면, 소설가 조남주는 『82년생 김지영』(이하 『김지영』)을 쓰기 전까지는 사실상 무명에 가까웠다. 이 책 한 권으로 작가나 소설의 주인공이나, 그야말로 한국 사람 누구나 아는 '하우스홀드 네임', 보통명사 같은 고유명사가 됐다. 지난달 중앙일보 지면에 쓰기도 했지만(8월 26일자 20·21면) 가부장 한국사회 여성들이 겪는 평균적인 차별 수난사를 소설이 제대로 건드렸기 때문일 게다. 출판사의 따끈따끈한 판매 동향에 따르면 『김지영』은 요즘 일주일에 2만 부씩 팔려 나간다. 그를 인터뷰한 건 8월 초순이었다. 당시 판매 부수는 20만 부 초반대였다. 
 
『82년생 김지영』

『82년생 김지영』

 
 신문기사가 나간 8월 하순, 숫자는 25만으로 늘어나 있었다. 8일 오후 현재 누적 판매 부수는 30만 부다. 숫자도 숫자지만 더 놀라운 건 추세다. 가속도가 붙는 것 같다. 영화로 치면 1000만 영화다. 한국인 특유의 몰아주기 성향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결과라고 믿고 싶지만, 혹시라도 남성들의 여성 차별에 억눌려왔던 여성들의 분노가 책 구입으로 표출되는 거라면, 이 땅의 남성들은 귀갓길 뒤통수 조심해야 하는 건 아닌가. 소설의 아득한 판매 실적이 그동안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들의, 남성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의 깊이를 말한다면 말이다.  
 
 
 
 
 
 영화에서도 김지영이 그렇게 그려질 테지만(영화 판권이 팔려 영화사 계획대로라면 내년 초 개봉된단다) 실제 만나본 조남주는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씨는 연필 데생처럼, 길가의 코스모스처럼 흐릿하고 연약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상일 뿐, 이야기를 나눌수록 여성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뿌리 깊고 완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령 미국 작가 리베카 솔닛의 에세이 『걷기의 인문학』을 '작가의 요즘 이 책'으로 추천하면서도 조씨는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을 얘기했다. 걷기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육체 활동이지만 걸을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이 먼저 확보되어야 한다. 
 
『귀를 기울이면』

『귀를 기울이면』

 
 책의 그런 대목을 읽으며 조씨는 자신의 처지를 떠올렸다고 한다. 스스로 걷는 거 싫어하고 돌아다니는 거 싫어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실은 바깥에 나가거나 밤늦게 돌아다니는 일 자체를 싫어하는 지금의 습성이, 여성으로서 안전하게 돌아다니기 어려운 열악한 걷기 환경에서 비롯됐을 수 있겠구나,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는 얘기였다. 여성이어서 접하지 못한 운동의 목록은 확장된다. 예컨대 초등학교 시절 남자 아이들은 야구나 축구하며 운동장을 휘젖는데 조씨를 포함한 여자 아이들은 발야구, 피구를 하거나 응원을 하곤 했다. 성인이 되서도 밤길을 걸을 때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지는 않는다. 역시 위험하기 때문이다. 
 
 남성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조씨의 비판적인 시선이 여성 차별이라는 과녁만을 겨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황산벌청소년문학상을 안긴 장편 『고마네치를 위하여』에는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뒷문을 걸어 잠궈 이웃한 달동네 주민들의 출입을 막는 장면이 나온다. '못사는' 외부인들이 단지를 활보하지 못하게 하려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민 이기주의다. 이 에피소드는 조씨의 체험과 관련 있다. 조씨는 '작가의 말'에서 "저는 소설 속 S동 같은 곳에서 자랐습니다"라고 썼다. 영등포구 신길동. 실제로 조씨가 살았던 곳이다. 
 
『고마네치를 위하여』

『고마네치를 위하여』

 
 소설이 제공하는 재미를 잣대로 삼는다면 『김지영』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2011년 등단 장편 『귀를 기울이면』은 큰 거 한 방 터뜨리는데 눈이 멀어 방송사고를 마다 않는 방송가의 시청률 지상주의를 꼬집었다. 그 과정에서 최근 뜨거웠던 방송사 외주 제작사의 열악한 생존 환경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여성 차별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 일반적인 갑을 관계의 살풍경이다. 방송은 10년간 공중파 시사고발 프로그램 작가로 일한 조씨의 전문 분야. 역시 체험에서 싹튼 문제의식을 소설로 버무렸다. 
 
방송작가 시절의 조남주씨. [사진 민음사]

방송작가 시절의 조남주씨. [사진 민음사]

 하지만 역시 포인트는 『고마네치…』 등은 팔리지 않아 그동안 조씨의 이름 석 자를 접할 일이 없었지만 여성 문제를 건드린 『김지영』은 팔린다는 점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조씨의 자가 진단은 이랬다. 
 -왜 이렇게까지 팔린다고 생각하나.   
 "인터넷에 올라오는 리뷰나 독자와의 만남 행사에서 여성 독자들은 대개 스스로 경험했거나 주위 동료, 친구, 아는 동생들을 통해 전해들은 내용이 소설 안에 들어 있다고 말해요. 그런데 그 동안은 '그게 뭐가 문제지? 불쾌하거나 위협적인 상황이긴 한데 그런 걸 겉으로 드러낼 수 있는 문제인가?'라고 여기다가 소설에 그게 문제라고 적혀 있으니까 '나도 그랬는데' 하며 본인의 주장이나 경험을 드러내는 것 같아요."
 소설이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해줘 독자들이 몰표를 몰아준다는 얘기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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