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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의 축구·공·감] '히딩크 재발탁' 담론에 발목 잡힌 한국축구

축구팬들은 '거스 히딩크 감독 한국축구대표팀 부임가능성' 보도가 나온 이후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보이고 있다. 71살 고령의 지도자영입을바랄 정도로축구대표팀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는 의미다. [AP=연합뉴스]

축구팬들은 '거스 히딩크 감독 한국축구대표팀 부임가능성' 보도가 나온 이후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보이고 있다. 71살 고령의 지도자영입을바랄 정도로축구대표팀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는 의미다. [AP=연합뉴스]

거스 히딩크(71·네덜란드). 축구팬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이름이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그 이름이 더욱 특별하다. 온국민이 축구 하나로 울고 웃었던 기억은 15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생생하다.

 
한국 축구가 그 마법 같은 인물을 다시 거론하기 시작했다. 6일 '히딩크 감독이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직을 원한다'는 보도가 나온 게 출발점이 됐다. 공교롭게도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9회 연속 본선행을 확정지은 당일에 나온 소식이라 여론의 관심이 더욱 컸다.
 
여론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기간 축구대표팀 부진에 따른 실망감에 2002 월드컵에 대한 추억이 더해져 "지금이라도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히딩크 감독에게 맡기자"는 입장이 주를 이룬다. 관련 기사에는 "당장 히딩크 감독님을 모셔올 전용기를 급파하라"는 댓글이 넘쳐난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히딩크 감독 복귀'를 주제로 한 청원도 올라왔다.
 
관련 뉴스의 진원지는 히딩크 감독의 국내 자선 활동과 매니지먼트를 총괄하는 거스히딩크재단이다. 노제호 재단 사무총장은 7일 중앙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지난 6월 국제축구연맹(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기간 중 히딩크 감독을 만나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직을 맡아 봉사하고 싶다는 의지를 확인했다"면서 "히딩크 감독이 '봉사'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연봉을 포함해 축구협회의 대우에 연연하지 않고 한국 축구 발전을 돕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히딩크 감독은 앞서 중국축구협회의 '연봉 200억원 포함 역대 최고 대우' 제의를 거절해 화제가 됐다. 이후 중국은 수퍼리그(중국 프로축구 1부리그) 강호 광저우 헝다를 이끈 경험이 있는 마르첼로 리피(이탈리아) 감독을 데려와 지휘봉을 맡겼다.
지난 2012년에 열린 2002 월드컵대표팀 초청 하나은행 K리그 올스타전당시 경기에 출전한 박지성과 포옹하는 히딩크 감독. [사진 히딩크재단 홈페이지]

지난 2012년에 열린 2002 월드컵대표팀 초청 하나은행 K리그 올스타전당시 경기에 출전한 박지성과 포옹하는 히딩크 감독. [사진 히딩크재단 홈페이지]

 
엄밀히 말해 '히딩크 컴백' 시나리오의 기획자는 감독 자신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이다. 히딩크재단 사업에 참여 중인 인물들이 머리를 맞대 히딩크 감독에게 한국축구대표팀을 맡기기 위한 방법을 논의했고, 이를 히딩크 감독에게 전해 원칙적으로 'OK' 사인을 받아냈다. 이 작업에 참여한 한 인사는 "광화문과 서울시청 앞 광장 등 수십만 명의 붉은악마들이 모여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치던 장소들은 이후 정치적 이슈를 위한 무대로 바뀌었다"면서 "히딩크 감독이 축구대표팀을 다시 맡아준다면 우리나라가 다시 스포츠로 하나되는 순수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절차다. 다수의 축구계 관계자들은 "의도의 순수성 여부와는 별개로 '히딩크 재발탁'이라는 이슈를 꺼낸 시기와 방식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축구협회가 이미 신태용(47) 감독을 선임하고 내년 러시아월드컵 본선까지 임기를 보장했기 때문이다. 
 
축구인들이 "히딩크 재발탁 시나리오가 실현될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전망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박문성 SBS 축구해설위원은 "울리 슈틸리케(64·독일) 전 감독이 사퇴해 새 사령탑을 찾던 두 달 전이면 모를까, 후임 감독이 정해지고 러시아월드컵 로드맵이 정리된 지금 '감독 교체'를 논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축구계 인사는 "2002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 대표팀은 1년 반 넘게 장기합숙을 했다. 히딩크 감독은 대표팀 운영의 전권을 보장 받았다. 15년이 지난 지금은 상상조차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라면서 "히딩크 감독이 대표팀을 맡는다고 해서 4강 신화가 재현될 것이라는 기대는 착각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들 뿐만 아니라 지도자에게도 전성기라는 게 있다. 일흔을 넘긴 히딩크 감독에게서 예전 같은 지도력을 기대하는 것 또한 무리"라고 덧붙였다.  
월드컵 본선 9회 연속 진출에 성공한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7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연합뉴스]

월드컵 본선 9회 연속 진출에 성공한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7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연합뉴스]

 
대표팀 감독 임면권을 가진 대한축구협회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어려운 월드컵 최종예선을 선수들과 신태용 감독이 하나로 뭉쳐 통과했는데, 왜 이런 이야기(감독 교체)가 나오는지 궁금하다. 히딩크 감독 입에서 직접 나온 건지도 알고 싶다"면서 "축구협회 입장에서는 불쾌하고 어처구니 없다. 우리는 신태용 감독을 변함 없이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짜 문제는 '히딩크 감독 컴백'이라는 이슈가 회자되는 한 축구대표팀의 러시아월드컵 준비 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축구협회가 신태용 감독에게 힘을 실어준다해도 여론이 '히딩크'라는 이름에 눈길을 주는 동안에는 대표팀이 온전한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당장 10월과 11월 A매치부터 불똥이 튈 가능성이 높다. 당초 축구협회는 이 기간 중 강팀들과의 A매치 평가전을 통해 대표팀의 경쟁력을 키운다는 계획을 세웠다. 크게 지더라도 정면승부를 통해 배울 점을 찾아야 하는 경기다. 하지만 '히딩크'와 '신태용'이 나란히 거론되는 상황이라면 대표팀이 패배에 부담을 느껴 움츠러 들 가능성이 크다. 전술과 선수 구성에 대한 과감한 실험도 어려워진다.
 
결론은 빠를 수록 좋다. 히딩크재단은 당사자인 히딩크 감독의 입장을 하루 빨리 공개해야한다. 축구대표팀의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대표팀 지휘봉에 대한 의지는 어느 정도인지, 계약 조건(임기와 권한 포함)은 어느 정도를 생각하는지에 대해 대리인이 아니라 감독 자신의 입으로 밝힐 필요가 있다. 이에 따른 축구협회의 신속한 대처도 중요하다. 러시아월드컵 본선까지 9개월이 남았다. 저조한 경기력을 끌어올릴 '골든 타임'은 지금 이순간에도 흘러가고 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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