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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쏭부부의 잼있는 여행]32 델리까지 잊지 못할 34시간

전국이 하루 생활권인 한국에서 침대 열차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죠. 고급 침대열차 '해랑'이 있긴 하지만 수 백만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저희 같은 배낭여행자에겐 그림의 떡이지요.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침대 열차에 대한 로망을 실현하기 좋은 나라 중 하나가 바로 인도예요. 고급 기차부터 침대칸까지, 하루 1만 편 이상의 기차가 10만㎞ 넘는 인도 철로를 누비며 달리고 있거든요. 그중 우리 부부는 콜카타 하우라(Howrah)역에서 델리로 가는 12311편을 타게 되었어요. 
수많은 열차의 출발역이자 종착역인 콜카타 하우라역.

수많은 열차의 출발역이자 종착역인 콜카타 하우라역.

과거 인도 여행 당시 20시간 동안 탔던 기차를 떠올리며 ‘26시간쯤이야’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콜카타에서 델리까지 바로 가는 열차를 예약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간과한 점은 인도가 여름이라는 사실과 연착이었어요. 7월 말의 인도는 찜통처럼 뜨겁고 습했거든요. 물론 에어컨 칸을 타면 문제없겠지만 두 배 이상 차이 나는 요금 때문에 우리는 에어컨 없는 침대칸인 슬리퍼 칸(SL)을 예약했어요. 열차에서 고생길이 훤했기에 기차역까지는 에어컨이 빵빵한 택시를 탔어요. 마침 옆으로 하우라역으로 가는 로컬버스가 지나가는데 버스 옆모습이 참 인상적이에요. 

하우라역 가는 버스. 'Howrah'라고 목적지가 큼직하게 쓰여 있다.

하우라역 가는 버스. 'Howrah'라고 목적지가 큼직하게 쓰여 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역전 풍경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어요.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바삐 움직이고 그 사이를 비집고 통과하는 노란 택시의 행렬, 그리고 모든 걸 감싸 안듯이 울려 퍼지는 경적까지! 어둑해질수록 역전은 더 붐벼만 갔어요. 우선 역으로 들어가 전광판에서 열차 출발시간을 확인했어요. 우리가 탈 기차는 오후 7시 출발해서 다음날 오후 9시에 도착하는 기차예요. 혹시라도 놓칠까 싶어서 일찌감치 왔건만 역시나 연착되어 있었어요. 다행히 하우라역이 열차의 출발역이라서 2시간 연착 후에 바로 출발할 수 있었어요. 이 정도면 인도 기차 여행에서 나름의 행운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인도에서는 24시간 연착gk는 경우도 있거든요.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죠.

하우라역 앞 풍경.

하우라역 앞 풍경.

기차역 대기실 풍경.

기차역 대기실 풍경.

열차 플랫폼에 도착하니 합격자 명단 확인하듯 많은 사람이 대기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고 있었어요. 예약을 한 우리는 여유롭게 대기명단을 지나 우리 칸을 찾아 나섰죠. 선착순 좌석인지 아직 열리지 않은 문 앞으로 긴 줄을 서 있는 열차칸도 있고, 창문이 굳게 닫힌 에어컨 칸도 있었어요. 우리는 그 사이에 있는 중하 등급 정도의 열차 칸인 슬리퍼칸(SL)에 탔어요. 가장 저렴한 침대칸이라 주머니 가벼운 배낭여행자가 많이 이용하는 열차에요. 열차 안으로 들어가니 만석인지 다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네요. 심지어 우리 자리에도 말이에요.  

슬리퍼 열차칸의 3층 침대 풍경.

슬리퍼 열차칸의 3층 침대 풍경.

슬리퍼 칸 풍경.

슬리퍼 칸 풍경.

의자와 침대를 넘나드는 슬리퍼칸 좌석.

의자와 침대를 넘나드는 슬리퍼칸 좌석.

오후 9시 20분. 드디어 기차는 끈적한 인도의 밤공기를 뚫고 달리기 시작했어요. 1층 침대 밑으로 큰 배낭을 밀어 넣고 주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어요. 델리까지 가는 건 우리 둘뿐이더라고요. 게다가 이 열차 칸에 둘만 외국인이다 보니 모두의 관심을 받았어요.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노스코리아냐 사우스코리아냐,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기차여행을 시작했어요. 1층 의자에 다 같이 모여 앉아 한 시간 정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달리다 보니 2층 자리 아저씨가 주무신다고 하네요. 모두 일제히 일어나 등받이로 쓰고 있던 매트리스를 끌어 올려 침대를 만들었어요. 누가 발명했는지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 같아요. 특히 사람 많은 인도에서는 유용한 침대인 것 같아요. 기차 탑승까지 여정이 너무 길었던 탓에, 우리도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어버렸어요. 
오전 8시. 중간에 깨지도 않고 10시간을 푹 자고 있어났어요. 피곤해야 기차에서의 시간이 잘 흐를 것 같아서 전날 한껏 피곤함에 취해 있었는데, 작전 대성공이에요. 10시간 푹 자고 일어났는데도 남은 시간은 16시간 남짓. 3층에서 내려와 1층에 앉아 있으니 슬슬 배가 고파왔어요. 마침 ‘짜이짜이~’를 외치며 지나가는 직원이 있어 짜이(밀크티)를 한 잔 샀어요. 가격은 5루피(약 88원). 아침마다 마시는 따뜻한 짜이 한 잔은 인도 여행의 별미예요. 전에는 일반 상인들이 판매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 탄 기차에서는 제복을 입은 직원들만 식음료를 팔고 있었어요. 다섯 명 정도의 직원들이 긴 열차를 왔다 갔다 하며 시간대별로 다양한 음식을 팔았어요. 오늘 하루 기차에 있는 모든 음식을 다 먹어보자는 목표를 세우고 직원들이 지나갈 때마다 이것저것 시켜보았어요. 가장 맛있었던 건 카레와 비리야니(카레볶음밥)였어요. 향신료가 입에 맞지 않는 사람은 미리 요깃거리를 준비해 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인도 음식 특유의 향이 무척 강하거든요. 
점심으로 먹은 에그커리. 130루피(약 2300원).

점심으로 먹은 에그커리. 130루피(약 2300원).

저녁으로 먹은 에그 비리야니. 100루피(약 1770원).

저녁으로 먹은 에그 비리야니. 100루피(약 1770원).

오전 10시. 아침 햇살에 벌써 철로가 달궈졌는지 열차 내부의 공기도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어요. 섭씨 30도는 되는 것 같았어요. 이마에는 이미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천장의 선풍기 두 대는 24시간 열심히 돌아갔지만 인도의 여름을 나기엔 역부족 같아 보였어요. 지난 인도 여행은 겨울이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덥지는 않았는데 여름에 에어컨 없는 칸은 조금 힘든 것 같아요. 온도뿐 아니라 습도도 높아서 불쾌지수가 최고조로 치솟았죠. 세수라도 하면 나을까 싶어서 화장실에 다녀왔어요. 다행히 생각보다 깨끗한 화장실에 살짝 기분 좋아지고, 세수를 하고 나니 상쾌지수 열 배 상승! 마지막으로 철로 바닥이 훤히 보이는 변기를 보며 피식 웃고 나왔죠.

열차 화장실.

열차 화장실.

용변이 바로 철로로 떨어지는 변기.

용변이 바로 철로로 떨어지는 변기.

현지 승객들은 우리가 신기한 건지, 아니면 긴 여정이 무료한 건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어요. 우리가 밥을 먹으면 어떻게 먹는지 쳐다보고, 심지어 우리 사진을 찍어가기도 했어요. 이런 관심이 나쁘지만은 않았어요. 여기가 아니면 언제 이런 관심을 받아보겠나 하는 생각에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도 이 상황을 즐기기 시작했어요. 현지인들과 한 번씩 웃고 떠들고 나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어서 시간 흘러가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옆 자리 아이들과 게임을 하기도 하고, 힌디어도 배우고, 현지인 아저씨는 인도식 디저트인 라두(설탕과자)를 나눠 주시기도 했어요. 옆자리 단체 승객은 우리가 화장실을 갈 때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어요.  

기차에서 만난 현지인들과 찰칵!

기차에서 만난 현지인들과 찰칵!

기차가 자꾸만 벌판에 멈춰 서더니 이번엔 20분째 한 자리에서 죽은 듯 멈춰있었어요. 아무래도 26시간은커녕 오늘 안에 도착하기도 힘들어 보였어요. 옆자리 아저씨가 어디까지 가냐며 물으시더니 델리까지 간다고 하니,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검색하셨어요. 그러시더니 델리에는 자정은 되어야 도착할 거라고 하시네요. 요즘은 기차 도착시간도 어플리케이션으로 확인 가능한가 봐요. 참 스마트한 세상이에요. 

친해졌던 아이들도 음식을 나눠주시던 가족들도 모두 내리고 기차 칸에는 처음으로 적막이 흘렀어요. 오랜만에 책도 읽고 기차여행의 여유를 즐겼죠. 어느덧 또 해가 지고 기차가 조용해지자 직원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어요. 이른 오전부터 12시간 넘게 걸어다니며 음식을 판매한 직원들은 모두 피곤한 표정이예요. 모두 곧 퇴근한다고 해요. 우리는 델리까지 간다고 하니, 힘내라고 하네요. 직원들마저 기차에서 내리고 그 빈자리를 모기들이 채워주었어요.  

텅 빈 기차에서 열차 직원과 한 컷!

텅 빈 기차에서 열차 직원과 한 컷!

한숨 자고 일어나 시계를 보니 자정. GPS 위치를 확인해보니 델리 근처에 들어왔어요. ‘휴, 드디어!’ 그리고 기차는 오전 1시 40분에 종착역에 도착했어요. 예상 도착시간보다 5시간 가량 더 걸렸어요. 애매한 시간에 도착한 것도 모자라 더 당황스러운 건 뉴델리역이 아닌 올드델리역이 종착역이었던 거예요. 뉴델리역에서 내리면 여행자 거리인 빠하르 간지까지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어서 숙소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플랫폼에 가만히 서서 어떡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어요. 지나가던 현지인 아저씨도 이 시간은 위험하니 해 뜰 때까지는 역에서 있다가 해가 뜨면 밖으로 나가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하지만 이미 몸의 피로치가 한계에 다다라서 택시를 타고 빠하르 간지로 가서 숙소를 잡기로 했어요. 늦은 시간에 택시 기사와 실랑이를 하기 싫어서 택시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편하게 빠하르 간지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택시비는 약 3000원. 너무 피곤해서 많은 곳은 둘러보지 못하고, 숙소 한두 곳만 둘러본 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짐을 풀 수 있었어요. 

정말 긴 여정이었어요. 콜카타 하우라역에서 대기한 시간까지 34시간이 지나서야 델리에 도착했으니까요. ‘다음 기차여행에서는 꼭 에어컨 있는 칸에 타야지!’ 다짐했어요. 하지만 또 가격을 비교해 보다가 똑같은 열차 칸을 이용하겠죠? 힘든 만큼 더 기억에 남으니, 이번 기차여행도 두고두고 추억할 것 같아요. 다음 인도 여행지에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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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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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은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