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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언어 습득의 기본 무시한 영어 사교육 시장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교수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교수

학부모는 자녀의 영어교육에 관해 궁금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 아이는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 어릴수록 영어를 빨리 잘 배운다는데, 우리 아이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 궁금한 것이 많지만, 명확한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아이는 언어를 의식적으로 배우지 않는다. 아이는 자신이 어떤 언어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면서 조금씩 주변의 언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간다. 아이의 세계에서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일종의 놀이이며, 일상의 경험과 주변 사람과의 친밀한 상호작용과 소통의 결과물이다. 모국어는 물론 외국어도 예외는 아니다.
 
문제는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영어교육에 이런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데 있다. 아이가 세상의 언어를 배울 때 나타나는 간접성, 무의식성, 흥미와 놀이 그리고 상호작용이라는 고유의 특성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다. 영어를 의식적으로 가르치려는 상업주의와 학부모의 과욕 그리고 잘못된 교육 방법이 서로 버무려져, 영어교육이 직접적이며, 강제적이며, 일방적이며, 의식적 학습 양상을 띠는 경우가 많다. 이런 영어교육은 아이에게 득보다 독이 될 수 있다.
 
‘강아지’나 ‘개’라는 단어를 사전식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공원이나 동물병원에 있는 강아지나 개를 보면서, 아이에게 “여기 강아지가 정말 많네. 넌 어떤 강아지가 예뻐?” 하는 식의 소통과 경험을 통해서 아이는 어떤 특정한 동물을 ‘개’ 또는 ‘강아지’로 이해하게 된다.
 
아이에게 TV 프로그램이나 동영상을 통한 영어교육이 널리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는 이런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보면서 영어의 의미를 습득하고 필요한 코드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아이에게는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영어 표현을 둘러싼 많은 다양한 정보가 필요하고, 느낌이나 직관으로 영어를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이 생략된 일방적 전달은 실은 빈껍데기일 가능성이 크다.
 
인간은 다양한 맥락에서 누군가와 소통하고, 그런 소통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기호와 코드를 익힌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영어라도 그것을 부모와 함께 사용해보고 그림이나 게임과 같은 활동을 하면서 영어를 사용하는 상황을 만들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가 영어를 인위적으로 학습하기보다 놀이, 흥미, 재미, 자연스러움, 상호작용, 구체적인 맥락이라는 것에 주목한다면, 아이가 영어라는 언어를 조금씩 자신의 코드로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 그리고 상황에 덧붙여진 영어 표현이 있다면, 아이는 보다 쉽게 그런 언어 코드를 이해하게 되고 그것을 조금씩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느리지만 조금씩.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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