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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본·대] ‘공부벌레’ KAIST 예습·복습에 주 31시간, 2위는?

충남 천안의 코리아텍(한국기술교육대) 반도체 실습실(클린룸)에서 서화일 전기전자통신공학부 교수(왼쪽)가 학부생들과 함께 반도체 공정실습을 하고 있다. 코리아텍은 학생들이 수업을 위해 공부하는 시간(수업 제외)이 주 28시간에 이른다. [중앙포토]

충남 천안의 코리아텍(한국기술교육대) 반도체 실습실(클린룸)에서 서화일 전기전자통신공학부 교수(왼쪽)가 학부생들과 함께 반도체 공정실습을 하고 있다. 코리아텍은 학생들이 수업을 위해 공부하는 시간(수업 제외)이 주 28시간에 이른다. [중앙포토]

“한국 대학은 신입생 선발엔 온갖 정성을 쏟으면서도, 정작 입학한 학생을 잘 가르치는 데엔 소홀하다.” 며칠 전 기자가 만난 서울 소재 A대 부총장의 ‘고백’입니다. 그 분에 따르면 A대를 포함한 상당수 국내 대학은 조금이라도 ‘나은’ 신입생을 뽑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죠. 매년 특이한 이름의 입학 전형을 만들고, ‘라이벌 대학’을 의식해 모집군을 바꾸고, 막대한 홍보비를 쓰는 게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입학한 학생을 ‘잘 가르치는’ 노력엔 인색한 곳이 많아요. 일부 개선되긴 했지만, 아직도 상당수 대학에선 10년 넘도록 강의 내용에 변화 없는 수업, ‘교수는 말하고 학생은 받아적는’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나오고 있잖아요. "우리 교수는 PPT 읽어주는 남자", "수업은 학원 인강(인터넷 강의)으로 하고 대학에선 시험만 봤으면 낫겠다"는 불평이 나올 정도죠.
 
A대 부총장은 “성적 좋은 학생을 뽑아놓고도 정작 제대로 가르치는 데 노력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 있냐. 대학들이 신입생의 ‘커트라인’ 대신 교육의 질로 경쟁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오늘 ‘랭·본·대(랭킹으로 본 대학)’에선 재학생의 학습량, 과제량, 독서량이 많은 대학을 살펴보려 합니다. 미리 ‘힌트’를 드린다면, 랭킹 상위권에 오른 대학들엔 앞서 비판한 ‘일방 통행’ 강의를 줄이고, 학생이 능동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학교 차원의 노력을 기울인 곳이 많답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공대, 공부 시간 길고 과제물 많아…독서량은 인문대
2015년 7~8월 시행한 ‘중앙일보 교육의 질 평가’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학습량은 전공·계열에 따라 적지 않은 차이를 보였습니다. 당시 중앙일보 대학평가팀은 37개 대학 6800명 학생에게 지난 학기 수업에 관련된 예습·복습, 과제·발표 준비에 할애한 시간을 물었습니다.  

 
조사 결과 수업에 관련된 주당 학습 시간(수업 제외)이 가장 길었던 학생들은 공학 계열 전공자들이었답니다. 평균 주당 15.2시간으로 조사됐어요. 이어 자연과학 계열(13.5시간), 상경 계열(11.7시간), 사회과학 계열(11.3시간), 인문 계열(어문 계열 포함, 10.9시간) 순이었습니다. 
 
과제물(보고서)는 어느 전공자들이 가장 많이 썼을까요. 조사 결과 공학 계열이“지난 학기 5편 이상의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답한 학생 비율이 가장 높았습니다(47.8%). 이어 자연과학 계열(41.4%), 인문계열(40.4%), 사회과학(32.7%), 상경계열(31.0%) 순이었습니다.
 
반면 수업과 관련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전공은 인문 계열로 조사됐죠. 인문 계열 학생들은 응답자 중 44.4%가 “지난 학기 수업을 위해 읽은 책이 5권 이상”이라고 답했습니다. 이어 사회과학(40.2%), 공학(38.4%), 자연과학(37.7%), 상경 계열(36.5%)로 집계됐습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공계는 KAIST 학습 시간 최장, 2위는 코리아텍
전공 뿐 아니라 대학별로도 적지 않은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공학ㆍ자연과학 계열 학생(대학별 100명)의 응답을 취합한 결과 수업을 위해 공부한 시간이 가장 긴 대학은 KAIST(한국과학기술원)으로 나타났습니다. KAIST 학생들은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도 주당 평균 30.5시간을 학습한다고 답했습니다. 당시 조사된 공학ㆍ자연과학 계열 학생들의 평균 학습 시간(15.2시간)의 두 배 수준입니다.

 
KAIST에 이어 코리아텍(한국기술교육대, 주당 28.4시간), 포스텍(22.1시간), 영남대(20.1시간), 한국산업기술대(16.6시간) 순으로 학습 시간이 많았습니다. 수업을 위한 공부 시간이 많은 이들 ‘TOP5’ 중 영남대를 제외한 4곳은 인문·사회 계열 전공자가 없거나, 매우 적은 '이공계 특성화 대학'들이죠.
 
대학별로 인문·사회·상경 계열 학생 100명 씩을 조사한 결과 공부 시간이 가장 긴 대학은 서울대(14.7시간)로 나타났습니다. 2ㆍ3ㆍ4ㆍ5위는 각각 숙명여대(14.1시간), 이화여대(14.0시간), 세종대(13.8시간), 동국대 서울 캠퍼스와 성균관대(13.7시간)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과제 많이 하는 대학, 건양대·코리아텍·성균관대·인하대
학생의 과제량, 독서량도 대학에 따라 꽤 차이가 났습니다. 당시 중앙일보 대학평가팀은 학생들에게 지난 학기 간 작성ㆍ제출한 보고서, 수업을 위해 읽은 책의 양을 물었어요.  
 
공학·자연계열 학생 중 5편 이상의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답한 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학교는 KAIST였습니다. 응답자 100명 중 74명이 '5편 이상'이라고 답했어요. ‘11편 이상’이라고 답한 학생도 38명에 이르렀지요. 건양대ㆍ코리아텍(63%), 성균관대ㆍ인하대(62%)도 학생 5명 중 3명 이상이 '5편 이상'이라고 밝혔습니다. 인문·사회·상경계열에선 성균관대(53%), 세종대(51%), 인하대(50%)의 과제량이 많았고요.
 
수업과 관련된 독서량에서도 KAIST는 ‘5권 이상’이라고 답한 학생 비율이 가장 높았던 학교(85%)였답니다. 건양대(77%, 2위), 코리아텍(55%, 3위)도 독서량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어요. 인문·사회·상경계열에선 성균관대(59%)·전남대(57%)·인하대(53%)·건양대(50%) 순으로 높았습니다. 
KAIST 학생들이 교내 도서관에서 독서하고 있다. KAIST 학생 100명 중 85명이 지난 학기 수업에 관련된 책을 5권 이상 읽었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 37개 대학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사진 KAIST]

KAIST 학생들이 교내 도서관에서 독서하고 있다. KAIST 학생 100명 중 85명이 지난 학기 수업에 관련된 책을 5권 이상 읽었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 37개 대학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사진 KAIST]

수업에서 강의하지 않는 KAIST
다른 대학에 비해 유난히 학습량, 과제량이 많은 대학엔 나름의 이유가 있답니다. 조사 대상 37개 대학 중 학생의 학습량, 과제량, 독서량이 가장 많았던 KAIST의 관계자들은 2012년부터 도입한 ‘에듀케이션3.0’을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에듀케이션3.0은 ‘거꾸로 교실(flipped learning)’을 대학 강의에 도입한 건데요. KAIST는 현재 100여개 강좌를 이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에듀케이션3.0의 원칙은 ‘수업에서 (교수는) 강의하지 말자’랍니다. 대신 교수는 수업 전에 강의 영상과 슬라이드, 외부 동영상 등을 활용한 자료를 온라인으로 학생에게 제공합니다. 학생들은 수업 전에 자료를 공부해야 하고요.
에듀케이션3.0 전용 강의실에서 토론식 수업을 받고 있는 KAIST 학생들. 강의 내용은 수업 전 미리 예습하고, 수업은 토론과 발표, 팀활동으로 진행되는 방식이다. 강의실 옆쪽과 뒤쪽에도 화이트 보드를 마련해 조별로 토론할 수 있게 돕는다. [중앙포토]

에듀케이션3.0 전용 강의실에서 토론식 수업을 받고 있는 KAIST 학생들. 강의 내용은 수업 전 미리 예습하고, 수업은 토론과 발표, 팀활동으로 진행되는 방식이다. 강의실 옆쪽과 뒤쪽에도 화이트 보드를 마련해 조별로 토론할 수 있게 돕는다. [중앙포토]

수업은 학생 주도의 토론과 발표, 그룹 프로젝트로 진행됩니다. 교수는 학생 간의 토론을 지켜보다가 필요할 때 나서죠. 에듀케이션3.0 전용 강의실 대부분은 세 벽면에 화이트보드가 설치돼 있어요. 토론에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죠. 
 
언뜻 생각하면 강의가 없으니 공부할 것도 적을 것 같지만, KAIST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오히려 공부할 게 많다”고 ‘불평’하죠. 에듀케이션3.0에선 학생 간 토론이 활발하고, 교수들의 질문도 잦아요. 토론에서 제대로 말하고,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려면 준비를 충실히 해야 하죠. 자연히 공부량도, 독서량도 늘어나게 된다고 합니다.
충남 천안의 코리아텍(한국기술교육대) 공학1관 유공압제어실에서 임경화 메카트로닉스공학부 교수와 학부생들이 실습 수업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충남 천안의 코리아텍(한국기술교육대) 공학1관 유공압제어실에서 임경화 메카트로닉스공학부 교수와 학부생들이 실습 수업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코리아텍은 졸업 학점 150점, 수업 절반이 실습
KAIST에 이어 수업을 위한 공부 시간, 과제량이 많은 코리아텍(한국기술교육대)은 졸업 이수학점이 150점이나 됩니다. 다른 대학보다 10~20학점 정도 많아요. 또한 전체 수업이 이론과 실험·실습을 5:5로 편성되는 게 원칙이랍니다.  때문에 실제 수업량이 타 대학에 비해 30% 이상 많다고 합니다.  
 
활발한 팀 프로젝트도 학습량, 독서량이 많은 원인이에요. 에너지신소재화학공학부 4학년 신소령씨는 “과목별로 4~5명이 팀을 이뤄 실험ㆍ과제를 수행하는데, 팀원들끼리 수시로 모여 스터디를 하고 실습을 하는 과정이 거듭된다”고 전했습니다. 1ㆍ2학년 때 배운 전공이론을 바탕으로 3ㆍ4학년 때 산업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작품을 설계ㆍ제작하는 ‘졸업 연구작품 제작’도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도록 유도하죠.
 
오창헌 코리아텍 교무처장은 “산업체에서 요구하는 실무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개교 초기부터 졸업 이수 학점을 높게 책정해 왔다”며 “학생에게 다소 부담은 될 수 있지만, 이론에서 배운 내용을 실험·실습에 적용함으로써 교육 효과와 학습 의욕 모두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건양대 창의융합대학 학생들이 조별 토론을 하고 있다. 충남 논산의 건양대는 한 달을 한 학기로 운영하는 10학기제, 수업 시간엔 팀 활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CLD 방식의 수업을 도입했다. [사진 건양대]

건양대 창의융합대학 학생들이 조별 토론을 하고 있다. 충남 논산의 건양대는 한 달을 한 학기로 운영하는 10학기제, 수업 시간엔 팀 활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CLD 방식의 수업을 도입했다. [사진 건양대]

1년 10학기제, 팀 활동 프로젝트 중심의 건양대
학생들의 과제량ㆍ독서량이 많은 건양대는 독특한 학사제도, 교과과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건양대 창의융합대학의 경우 4개월 단위로 1학기를 운영하는 대신 10학기제를 시행 중이에요. 한 달을 한 학기(Term)로 운영하는데, 대개 한 과목을 1~ 2개 학기 동안 집중적으로 배워요. 그만큼 수업, 학습 집중도가 높아 학생이 체감하는 학습량 또한 많습니다.
 
건양대 창의융합대학은 모든 수업에 ‘CLD(Creative Learning by Doing) 방식을 적용합니다. ‘프리 클래스(수업 전 학습)’-‘인 클래스(수업)’-‘포스트 클래스(수업 후 학습)’라는 3단계로 구성되는데요. 학생들은 수업에 앞서 기초적인 학습을 미리 하고(프리클래스), 수업에선 교수가 내는 특정 주제의 문제를 팀 활동을 통해 해결하죠. 수업 내에 해결하지 못하면 수업 후에 다시 모여 팀 활동을 계속하고요(포스트 클래스). 창의융합대학 김두연 학장은 “결국 학생들이 수업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도, 공부해야 할 양도 많아질 수 밖에 없다”고 소개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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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양대는 프로젝트 기반의 교육과정을 지향합니다. 건양대 의료공과대학 학생들은 매 학기, 졸업까지 총 8번의 프로젝트 교과를 수강합니다. 오도창 학장은 “일반 강의 보다 프로젝트 중심의 ‘액티브 러닝’ 수업은 학습량이 많을 수 밖에 없다. 프로젝트의 계획, 작품 설계, 토론, 평가의 과정에서 학생이 능동적으로 참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학습량·과제량·독서량이 많은 대학들은 한결같이 일방 통행식 강의에서 벗어나 학생의 의욕을 끌어올리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수업 방식을 개발하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더 많은 대학들이 학부생의 수업·강의를 개선하는 데 한층 노력했으면 합니다. 
 
천인성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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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은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