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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탈북 방송인 임모 씨 재입북 사건 진상은? 10명 탈북하면 1명 기획입북? 탈북 브로커들의 ‘죽음의 거래’

‘코리안 드림’을 안고 사선을 넘어온 탈북자들의 한국사회 정착은 탈북보다 더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2년 한 탈북자 가족이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뒤 모처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코리안 드림’을 안고 사선을 넘어온 탈북자들의 한국사회 정착은 탈북보다 더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2년 한 탈북자 가족이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뒤 모처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한국 방송에 출연했던 탈북 여성이 지난 7월 16일 북한선전매체에 등장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산하기구인 ‘우리민족끼리’가 공개한 영상 <반공화국 모략 선전에 이용되었던 전혜성이 밝히는 진실>에서다. 북한 영상에 모습을 드러낸 탈북자 임지현(전혜성) 씨의 문제는 일파만파로 커졌다. 일부에서는 “한국 사회 정착에 실패하고 돌아갔다” “음란 동영상을 촬영하고 그런 사실이 드러나자 도망갔다” 또는 “간첩 임무를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갔다” 등 자극적인 추측성 발언이 난무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이면을 들춰보면 얽힌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입북 배경을 규명하는 것을 넘어 보다 깊이 바라볼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탈북자 임지현 씨가 최근 출연한 북한 방송(왼쪽)과 한국 예능프로그램에 출연 당시의 모습. [<우리민족끼리> 영상캡쳐]

탈북자 임지현 씨가 최근 출연한 북한 방송(왼쪽)과 한국 예능프로그램에 출연 당시의 모습. [<우리민족끼리> 영상캡쳐]

임지현 씨는 북한 영상에서 “2014년 1월 탈북했고 지난 6월에 돌아왔다. (지금은) 평안남도 안주시에서 부모님과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경찰이 임씨의 출입국 기록을 살펴본 결과 지난 4월 중국으로 출국한 사실이 확인됐다. 북한에 들어간 시점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임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출국할 때까지 한 종합편성 방송에 출연해 탈북 과정과 북한 생활을 소개했다. 한국 남성과 가정을 꾸리는 가상 부부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 적응 잘하는 탈북자로 불리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북한이 공개한 영상에서는 완전히 다른 입장을 보였다. 탈북자의 한국 생활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뒀다. 임씨는 “술집을 비롯해 여러 곳을 떠돌았지만 육체적·정신적 고통만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탈북자의 방송 출연을 비난하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 “써준 대본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고 ‘돈 40만원 벌기가 쉬운 줄 아느냐’는 말도 들었다”고 전했다. 영상 말미에는 “한국 생활이 외로웠고 부모님이 그리웠다”며 탈북에 대한 후회를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국에 남아 있는 김연희씨를 비롯한 탈북자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들은 한국 정부에 “탈북 브로커에게 속아 한국에 왔으니 북한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탈북자 중에도 북한에 돌아가려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정부는 실정법에 따라 한국 국적을 가진 탈북자를 북한으로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당국의 허가 없이 북한에 들어갈 경우 국가보안법 제6조 ‘잠입·탈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임씨의 출국과 입북 배경을 두고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각종 기록(통신·금융거래 등)을 분석하고 어떤 경로를 통해 북한에 들어갔는지 살펴보고 있다”며 “서울지방경찰청본청에서 직접 수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모든 사항을 확인하려면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탈북자를 사이에 둔 은밀한 거래에 따른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8월 9일 서울 명동 중국대사관입구에서 열린 북한이탈주민 강제북송 반대 및 즉각 석방 요구 기자회견에서 북한이탈주민 구금자 가족 등이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탈북자를 사이에 둔 은밀한 거래에 따른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8월 9일 서울 명동 중국대사관입구에서 열린 북한이탈주민 강제북송 반대 및 즉각 석방 요구 기자회견에서 북한이탈주민 구금자 가족 등이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임씨의 입북 배경을 두고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대공 수사를 했던 소식통은 “탈북자들이 북한에 남겨진 가족을 탈북시키려 중국에 갔다가 오히려 납북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 탈북자들의 한국 사회 정착을 돌아보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정은 집권 이후 탈북자 정책 바뀌어 납치 기도 
 
경찰 관계자는 “임씨는 탈북 직후 이뤄진 조사에서 ‘북한에 부모가 생존해 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북한 영상을 보더라도 임씨는 “평남 안주에서 부모와 함께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가족을 찾기 위해 중국에 갔다가 납치됐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에서 납치된 것인지 북한으로 유인된 것인지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의 탈북자 납치가 종종 이뤄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의 탈북자 정책을 주목해야한다”고 말한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탈북자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들은 “북·중 접경 지역의 철책이 보강됐고 단속이 강화됐다”고 말했다.
 
이는 실제로 체감되고 있다. 당장 탈북자 규모가 줄었다.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는 2011년 2706명에서 이듬해 1502명으로 줄었다. 2015년에는 1275명까지 줄면서 2000년대 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 수가 줄어든 것은 ▷북한의 경제 사정이 좋아졌고, ▷한국으로 이미 많은 탈북자가 내려왔고, ▷한국에 내려가도 크게 성공하기 어렵다는 소식이 북한에도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김정은 집권 이후 강화된 내부 단속 때문으로 여겨진다.
 
북·중 접경 지역에서는 북한 당국 요원들이 잠복해 있다가 배회하는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압송하기도 한다. [사진·중앙포토]

북·중 접경 지역에서는 북한 당국 요원들이 잠복해 있다가 배회하는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압송하기도 한다. [사진·중앙포토]

북한 당국의 탈북자 압박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2015년부터는 탈북을 막던 정책에서 탈북자를 잡는 정책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탈북자를 납치하거나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탈북자를 유인한다. 북한의 정보기관에 정통한 소식통은 “대부분의 탈북자는 한국 사회에 정착한 후 북한에 남겨진 가족을 데려오려는 시도를 한다”며  “북한의 국가보위성이 이를 지켜보다가 중국에서 납치하거나 북한으로 들어오도록 유인한다”고 말했다. 임씨의 입북 사건도 그런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1984년 북한으로 납치된 영화감독 신상옥 씨가 서울에 있는 형 신태선 씨에게 보낸 편지. [사진·중앙포토]

1984년 북한으로 납치된 영화감독 신상옥 씨가 서울에 있는 형 신태선 씨에게 보낸 편지. [사진·중앙포토]

북한 당국은 탈북자를 어떻게 납치할까? 첫째, 북한 국가보위성 요원들이 단둥을 비롯한 북·중 접경 지역에 잠복하면서 배회하는 탈북자들을 찾아내 북한으로 압송한다. 국가보위성은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같은 역할을 한다. 북한에 침투한 간첩을 색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다. 탈북자를 체포하는 것도 이들의 역할이다. 따라서 중국 선양에 거점을 만들고 탈북자 체포에 나서고 있다. 중국 영토이지만 북한 당국의 납치가 자행되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한국 여권으로 중국에 들어온 탈북자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과 중국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사실상 묵인되고 있다.
 
둘째, 탈북 브로커를 활용한 유인 납치 수법이다. 북한 당국은 탈북자들이 브로커를 통해 북한에 연락하거나 송금하는 것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다. 그러나 기회를 엿보다가 다른 공작에 활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자가 북한으로 돈을 보내도 북한에서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배달 사고’가 발생하면 탈북자는 브로커를 의심하게 된다. 이때부터 돌아올 수 없는 늪에 빠져들게 된다. 브로커는 탈북자에게 직접 중국으로 나와 문제를 해결하라고 유도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가족을 탈북시킬 때도 유인책이 활용된다. 브로커는 “북한에서 단속이 심해져 사정이 어렵다”거나 “가족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등 핑계를 대며 탈북을 미루다가 “중국에 직접 나와 해결하면 된다”고 말하거나 “브로커를 믿지 못해 탈북하지 않으니 직접 북한에 들어가 가족을 탈북시켜야한다”며 탈북자를 유인한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탈북자의 입장은 다르다. 탈북자들은 “가족의 생사가 걸린 절박한 사정이라 일단 중국행 비행기표를 마련하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탈북하는 가족들이 접경 지역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시간이 별로 없다”며 “지금 바로 와 해결하지 않으면 그대로 체포된다”고 재촉하기 때문이다.
 
탈북은 브로커들에게 사업 대상일 뿐
 
그러나 이런 꼬임에 넘어가 중국으로 출국한 뒤 행방이 묘연해진 탈북자가 종종 있다. 탈북자들은 “일단 중국으로 오라는 연락을 자주 받는다”고 말한다. 지난 3월 탈북을 도와준다며 ‘천리마 민방위’가 등장했을 때도 경계심을 보인 이유다. 이 단체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사망한 직후 등장했다. 홈페이지에 “김정남의 장남인 김한솔과 가족의 탈출을 도왔다”며 “다른 탈북자들도 원하는 곳으로 가도록 도와줄 수 있으니 연락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이 탈북자에게 보내던 e메일 내용과 비슷하다”며 “오히려 접촉했다가 북한에 납치될 수 있다”는 제보가 잇따라 들어왔다.
 
브로커들이 왜 탈북자를 체포하는 북한 당국에 협조하는것일까. 익명을 요구한 국정원의 정보관은 “브로커도 일종의 이중 스파이와 같다”고 말한다. 브로커가 개입하더라도 탈 북은 국가보위성 또는 접경 지역 군대의 협조를 받아야 가능하다. 이때 브로커는 뇌물을 주고 협조를 받지만, 반대로 북한의 보안기관 관계자도 협조를 구하기 때문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쉽게 말해 10명을 탈북시키면 1명 정도는 북한 당국이 체포하도록 도와줘야 한다”며 “서로 주고받는 게 있어야 거래가 이어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브로커를 통한 탈북 비용은 1인당 1000만~수천만원까지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동남아를 통해 입국한 탈북자들이 경기도 중소기업연수원에서 임시로 머물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브로커를 통한 탈북 비용은 1인당 1000만~수천만원까지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동남아를 통해 입국한 탈북자들이 경기도 중소기업연수원에서 임시로 머물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냉정하게 말해 탈북은 브로커에게는 사업의 대상이다. 하나원 관계자는 “탈북자들이 입국한 뒤 교육받고 하나원에서 퇴소하는 날이면 브로커들이 몰고 온 봉고차들이 정문 앞에 줄지어 대기했다”며 “정착금을 탈북자에게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것을 알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브로커는 탈북자를 차에 태워 인근 우체국으로 간 뒤 정착금을 찾아 가져간다. 당장 브로커에게 줄 돈은 없지만 정착지원금을 담보로 탈북한 경우다.
 
어쨌든 한국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탈북자의 마중물과 같은 지원금을 탈북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당국이 지원금을 분할 지급하자 브로커의 봉고차는 사라졌다. 그렇다고 손을 놨을까. “매월 지원금이 입금될 때면 탈북자의 집으로 찾아간다”고 관계자는 귀띔했다.
 
경찰 관계자는 “임씨가 2011년 탈북한 뒤 중국인과 결혼했지만 둘 사이에 자녀는 없고, 2014년 한국에 입국했다”고 말했다. 임씨의 입북 문제가 드러난 이후 다양한 추측이 제기됐다. 중국인 남편이 임씨의 탈북에 개입했고 임씨가 한국에 들어온 뒤에도 북한에 돈을 보내거나 임씨 가족의 탈북을 도와주는 브로커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중국인 남편이 북한으로 돈을 보내지 않자 이를 해결하려고 임씨가 출국했다”는 탈북자 증언도 나왔다.
 
결국 북한에 남겨진 가족이 관계돼 있다고 볼 여지가 크다. 구체적인 목적은 알 수 없지만 임씨는 수차례 중국을 다녀온 것으로 드러났다. 탈북자들은 왜 그토록 북한의 가족에 집착할까. 당연한 말이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홀로 떠나왔다는 죄책감도 있다. 탈북자들은 북한 땅을 바라보기 위해 단둥 등 접경 지역을 자주 찾는다.
 
탈북보다 한국 사회 정착이 더 어렵다?


지난 6월 임씨의 입북 사실이 공개되기에 앞서 중국을 다녀온 탈북자 출신 여성 방송인도 있다. 그는 중국에서 뭘 했는지 밝히기를 주저하면서도 “탈북자들은 북한을 떠나 넘어왔던 그곳을 보면서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랜다”며 “휴전선 아래 통일 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이 압록강 넘어 보이는 내가 살던 마을이 같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국정원 관계자도 “탈북자들은 북한의 유인 납치 위협을 알면서도 크게 신경 안 쓴다”며 “북한을 탈출했던 경험이 있어 무서운 것이 없는것 같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이 꿈꾸는 코리안 드림은 쉽게 이뤄질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탈북자들의 한국 사회 정착은 탈북보다 더 어렵다고 말한다. 남성욱 교수(고려대 통일외교학부)는 “탈북자들은 인천공항에 도착한 직후부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심각한 괴리를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특히 직업을 고를 때 갈등이 커진다는 분석이다. 남 교수는 “한국 사회의 치열한 경쟁은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온 사람들에게도 버겁다”며 “대부분의 탈북자도 사무직으로 일하길 바라지만 영어와 컴퓨터를 잘하지 못해 그런 직업을 얻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직업을 얻지 못하면 경제적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 2015년도 탈북자 적응실태조사에서도 한국 생활에 불만족한 부분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61.1%)가 1위로 꼽혔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 영국 등 제3국으로 재탈북하거나 북한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따라서 탈북자의 정착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한국에 입국시켜 문제를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탈북자들의 기구한 사연은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지난 8월 1일 정신병원에서 보호관찰을 받던 탈북자 유모 씨가 위치추적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했다. 그는 1998년 처음 탈북한 뒤 2000년 북한에 남아 있는 아내를 데려오겠다며 다시 북한에 돌아가기도 했다. 불과 2년 만인 2002년 다시 두 번째 탈북을 했지만 2004년 광화문광장에서 “김정일 장군님 품으로 돌려보내달라”며 1인 시위를 했다. 같은 해 이복동생을 흉기로 찔러 살인미수 혐의를 받았지만 정신질환 증세를 보여 병원에서 치료감호를 받고 있었다. 탈북자 정착 지원기관에 근무하는 관계자는 “국내 정착에 성공한 탈북자도 많다”며 “개인에 따라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성공의 기준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탈북자 정착기관인 하나원 [사진·중앙포토]

탈북자 정착기관인 하나원 [사진·중앙포토]

 
탈북 배경부터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박현선 교수(이화여대 북한학과)는 “북한에서 정치·경제적 이유로 탈북자들을 내보내는 배출 요인, 한국 정부가 정착을 지원하는 것은 탈북자를 끌어당기는 유인 요인”이라며 “이러한 구조적 요인과 함께 개인의 동기가 작용해 탈북을 결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최근 탈북의 동기는 변하고 있다. 
 
2009년 7월 열린 하나원 개원 10주년 기념식에서 교육원생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2009년 7월 열린 하나원 개원 10주년 기념식에서 교육원생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강제 북송자들 현황 공개하는 북한
 
박 교수는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지만 최근에는 생계형 탈북이 아닌 미래지향형 탈북이 늘고 있다”며 “2000년대 들어서는 더 좋은 환경에서 자녀들이 성장하기 바라면서 한국 행을 결심한다”고 말했다. 탈북의 추세가 탈출에서 이민으로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 도착했다고 마냥 기뻐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한국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거나 정착에 실패했을 때 미련 없이 제3국으로 떠나는 이유다. 
 
경찰은 최근 국내에 주소를 둔 탈북자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확인해 봤는데 900여 명 정도가 소재 불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의 탈북자 관리 실패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나 탈북자 신변 보호와 정착을 지원하는 경찰서 보안과 직원들은 “탈북자들은 국가에서 감시한다고 생각해 연락을 피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탈북자가 몰려 있는 곳에서는 1년에 전화 통화 한 번 하기도 어렵다고 말한다. 수천 명에 이르는 탈북자를 10여 명의 직원이 담당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른 업무도 해야 하니 손이 달린다. 그나마 임씨가 주소를 둔 강남구는 관내에 거주하는 탈북자가 수십 명에 그쳐 자주 연락이 가능했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임씨를 두 번 만났다”고 했다. 그러나 임씨가 입북한 것을 보더라도 만남 자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
 
북한 당국은 임씨가 출연한 한국의 방송 장면을 공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또한 임씨는 한국에서 거주하던 곳을 ‘서울시’가 아닌 ‘서울특별시’라고 말했다. 북한 미디어 전문가는 “꾸며낸 방송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 최대한 구체적인 사실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탈북자를 강제로 끌고 간다는 시선을 의식했다고 풀이된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북한 당국은 국제기구에 강제 북송된 여성들의 현황을 공개하기도 했다. <미국의 소리>는 북한이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고 했다. 여기에서 강제 북송된 탈북 여성은 6437명이고 이 중 33명만 처벌받았다고 했다. 북한 당국은 이들이 해외 체류 중 살인과 마약 거래 등 중대 범죄에 연루됐다며 처벌의 배경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북 사건 조사는 ‘미결’이 결론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며 북송 문제가 불거졌다. [사진·중앙포토]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며 북송 문제가 불거졌다. [사진·중앙포토]

한국 정부는 재입북한 탈북자가 25명이고 이 중 5명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이러한 추정은 북한 매체에 등장한 것을 바탕으로 집계한 것일 뿐 정확한 평가는 아니다. 생각보다 더 많은 탈북자가 자의에 의해 북한으로 넘어갔거나 강제적으로 끌려갔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북한은 대외 선전매체에서 임씨의 영상을 공개했던 것과 달리 북한 주민들이 시청하는 조선중앙TV에서는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북한 당국은 탈북자가 다시 북한에 들어온 경우 북한 주민에게 공개했었다. 한국 사회와 탈북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더 크다는 분석이다. 아무래도 한국 방송에 나와 북한을 비판했던 임씨를 공개하기엔 부담이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들 스스로 유인 납치 위협을 알면서도 중국을 오가는 것에 대해 국정원도 단속이나 간섭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국정원 건물. [사진·중앙포토]

탈북자들 스스로 유인 납치 위협을 알면서도 중국을 오가는 것에 대해 국정원도 단속이나 간섭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국정원 건물. [사진·중앙포토]

임씨가 북한에 들어간 배경은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수사 관계자는 진실 규명에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에 들어가 확인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대략적으로 몇 % 수준에서 추정할 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반적으로 입북 사건 조사는 그렇게 미완으로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며 “혹시라도 다시 한국에 돌아오면 그때 마무리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수사 관계자는 “정확한 배경을 알 수 없는 현실에서는 입북 자체가 실정법 위반이라 일단 체포영장을 청구할 수도 있다”며 “중국이나 한국에서 신병을 확보하자는 의미도 있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를 의식해 임씨를 처형 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2000년대 이후 탈북자들의 처벌수위가 낮아진 영향도 있다. “북한 당국의 관심이 줄어들면 다시 탈북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임씨의 입북 배경이나 한국에 돌아오는 것도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의 탈북자 인식이다.
 
통일 전문가들은 “탈북자 3만 명이 넘어선 것이 현실이다”며 “먼저 온 통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 들어온 북한 주민들은 ‘탈북자’ ‘탈북민’ ‘새터민’ ‘북한이탈주민’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호칭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한국 사회는 아직도 이들을 어떻게 맞이하고 함께해야 하는지 합의를 보지 못했다는 단면이다.
 
박용한 북한학 박사,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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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은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