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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대한민국 싹 틔운, 독립운동의 길 역사탐방

8월 15일은 광복절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나 광복(빼앗긴 나라를 되찾음)을 맞이한 날이죠. 이날은 또한 대한민국 정부의 탄생일이기도 합니다. 광복을 맞이한 우리나라는 제헌국회를 거쳐 헌법을 완성하고 이에 바탕을 둔 정부를 1948년 8월 15일 수립했거든요. 이번 주 소년중앙에서는 이런 특별한 날을 맞이해 서울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총감독을 맡은서해성 감독과 함께 역사적 장소를 둘러보는 탐방에 나섰습니다. 
 
글=이세라·한은정 기자 slwitch@joongang.co.kr ,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전민주(경기도 광명중 1), 임규민(서울 발산초 6), 김지민(서울 서이초 5), 장우진(용인 심곡초 5) 학생기자
 
[소년중앙] 독립운동의 길 역사 탐방. 서해성 감독은 탑골공원을 두고 "이름 없는 사람들이 모여 독립을 선언하고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곳"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탐방에 나선 (왼쪽부터) 전민주, 장우진 학생과 서해성 감독, 그리고 임규민, 김지민 학생.

[소년중앙] 독립운동의 길 역사 탐방. 서해성 감독은 탑골공원을 두고 "이름 없는 사람들이 모여 독립을 선언하고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곳"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탐방에 나선 (왼쪽부터) 전민주, 장우진 학생과 서해성 감독, 그리고 임규민, 김지민 학생.

 
3.1운동 하면 주로 ‘비폭력 항일운동’을 생각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3.1운동이 일어난 지 한 달하고 10일이 지난 1919년 4월 11일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탄생했습니다. 무슨 뜻이냐고요? 자, 여기서 잠깐 대한민국 헌법을 살펴보겠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란 헌법 제1조보다 앞서 쓰여 있는 전문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중략).’ 1919년 3월1일, 전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 운동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세워졌다는 뜻이죠.  
지난 7일, 소중학생기자들은 서해성 감독과 함께 3.1 운동을 발자취를 따라 걸었습니다. 서 감독이 추천한 장소는 모두 3곳입니다. 첫 번째는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보성사입니다. 두 번째는 독립선언서를 기초로 우리 독립을 이끈 33인이 선언했던 음식점 태화관, 세 번째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든,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탑골공원입니다.
 

 
3.1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곳, 보성사 터(종로구 수송동 44) 
30평 2층 기와 벽돌집으로 보성학교 내에 있었다. 현재 보성사 터는 조계사 경내에 편입돼 있는데, 정확한 장소는 극락전 앞마당 정도로 추정한다. 기념비와 동상은 조계사 후문 맞은편 수송공원에 있다.

보성사는 3.1운동의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곳이야. 천도교에서 운영하던 인쇄소지. 당시 이곳엔 보성전문학교·보성초등학교·보성중학교가 있었어. 학교가 있으면 뭐가 필요해? 교재가 필요하지. 그래서 인쇄소가 있었던 거야. 지금처럼 교육부가 교재를 배포해주는 시대가 아니었거든. 천도교는 동학을 손병희가 개칭(이름을 바꾼)한 종교야. 손병희는 전봉준과 함께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일으켰어. 하지만, 조선관군과 일본 연합군에 의해 실패하고 말지. 이후 고종황제가 서거하자 손 선생은 종교계와 연합해 3.1운동을 기획해. 이때, 기독교,불교는 연합했지만 유교는 거절했지. 하지만 대부분의 조선인은 독립을 위해 참가했어.
 
보성사 1919년 6월 28일 일본의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전소됨

보성사 1919년 6월 28일 일본의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전소됨

 
보성사의 기념비와 동상이 있는 수송공원을 찾은 소중 역사탐방단.

보성사의 기념비와 동상이 있는 수송공원을 찾은 소중 역사탐방단.

 
  
손병희 선생

손병희 선생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 얘기를 하나 해줄게. 2월 27일, 한 일본경찰이 보성사 근처를 지나다가 굳게 닫힌 인쇄소에서 철커덕 철커덕 소리가 나는 것을 듣게 돼. 안으로 들어가 봤더니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있는 거야. 덜미가 잡히고 만 거지. 이 일본경찰은 신철(신승희)이라는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야. 한국인이지만 독립운동가 수백 명을 감옥에 보냈지. 인쇄소 사장이자 3.1운동 독립선언서를 찍은 총 책임자였던 이종일 선생은 손병희 선생 등 높은 분들에게 서둘러 연락했어.
손 선생은 신철을 좋은 음식점으로 부른 후 500(5000원이라는 설도 있어)원을 내려놓고 “사흘만 눈을 감아주시오”라고 말했어. 신철은 가만히 있다가 나갔어. 그 후 신의주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만세운동을 일으키려 한다고 거짓 출장보고서를 쓰고 신의주로 가버려. 평생 좋은 일이라곤 안 했던 자가 중요한 순간에 도와준 거지. 신철은 그해 5월 천도교를 도운 혐의로 체포돼 용산 감옥으로 끌려갔는데, 수사 중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어. 독립운동가는 아니지만, 이런 사람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성사에서 인쇄한 3.1 독립선언서 진본.

보성사에서 인쇄한 3.1 독립선언서 진본.

위기는 또 있었어. 선언서를 인쇄했으면 배포를 해야지. 선언서를 손수레에 싣고 재동파출소 앞을 지나가다 검문을 당하는데, 때마침 정전(그 시절엔 정전이 잘 됐거든)이 된 거야! 어두우니까 열어봐도 잘 알 수가 없잖아. 그래서 족보라고 속였어. 일본경찰은 제대로 확인 안 하고 그냥 넘어가지. 안국역 남쪽으로 50m 내려가면 수운회관이 있고 그 옆에 천도교중앙대교당이 있어. 당시는 공사 중이어서 허름한 임시 건물이었어. 거기에 독립선언서를 보관했어. 일부러 허름한 곳에 숨겨 시선을 피한 거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장소, 태화관 터(종로구 인사동 194)
왕위에 즉위하기 전 인조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이후 안동 김씨 김흥근의 저택, 헌종의 후궁 경빈 김씨의 순화궁으로 주인이 바뀌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이윤용·이완영 형제가 번갈아 살았다. 그 뒤 명월관 분점 태화관이 생기면서 3.1운동을 맞았다. 지금은 태화빌딩이 들어서 있다.


두 번째 장소는 독립선언서를 읽었던 ‘태화관’이라는 음식점 자리야.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은 3월 1일 낮 12시 태화관에서 만나기로 했어. 하지만 교통편이 좋지 않아서 어르신들이 제때 도착을 못하고 말아. 결국 4명은 오지 못했어. 한 명은 손병희 선생의 지시로 상하이에 갔고, 나머지 세 명은 지방에 있었지. 대신 29명이 모여서 독립선언서를 읽고 만세삼창을 했어. 지금은 그다지 볼 게 없지만 내년에는 여길 확장하고 그분들이 노력했던 뜻을 기릴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어.
 
명월관 별관 태화관자리로 이곳 아래층 왼편 사교 1호실이 33인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자리다.

명월관 별관 태화관자리로 이곳 아래층 왼편 사교 1호실이 33인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자리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오지 못한 4명 중 1명은 현재 친일 논란의 한가운데 있어. 확실한 건 오지 못한 4명 중 3명은 나중에 친일을 했지. 당시 친일한 지식인들 전체 숫자에 비하면 적긴 해. 참, 민족대표 33인이 친일을 많이 한 것처럼 알려져 있는데 그 말은 일제가 만든 거야. 친일을 한 것처럼 만들면 누구한테 유리할까? 일본한테 유리하지. 문제는 일본이 흘린 얘기를 지금 우리가 믿고 그렇게 얘기한다는 거지. 33인 중 친일이라고 밝혀진 사람은 세 명뿐이라는 사실, 잊지 말자고.
 
태화관 터인 태화빌딩 앞에 모여 이야기 중인 학생기자와 서 감독.

태화관 터인 태화빌딩 앞에 모여 이야기 중인 학생기자와 서 감독.

태화관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 그땐 2층으로 된 한옥집이었어. 지붕은 한옥이고 바깥 기둥은 콘크리트로 만들었지. 하필 왜 여기 음식점에서 독립선언을 했을까? 여기가 이완용의 집이었거든. 친일파(독립운동가도 중요하지만 친일파도 알아둬야 해) 이완용은 이곳에서 나라를 일본에 넘기는 을사늑약을 모의했지. 손병희 선생은 나라가 망한 자리에서 나라를 구하겠다고 생각하고 여기서 독립선언을 한 거야. 멋있지? 패배한 자리에서 다시 일어선다는 거지.
 
3.1 운동을 기획하던 손 선생은 이완용을 찾아가서 “완용 씨 이번 기회에 나라를 구하는 사람이 되어보면 어떻겠소”라고 말했어. 이완용은 이렇게 대답했어. “기세가 참 대단하오. 날 찾아와서 독립운동을 하자니!” 이어 “뜻이 잘 이루어지면 사람들이 나를 제일 먼저 때려죽이려 할 텐데, 그런 일이 온다면 기뻐하겠소”라고 말했대. 밀고 안 하겠다는 뜻이지. 보통은 밀고할까봐 무서워서라도 말도 못할 텐데. 손 선생의 기백이 대단하지?
 





독립만세운동의 발상지, 탑골공원(종로구 종로2가 38)
10층 석탑이 있어 탑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본래 원각사라는 절이 있었다.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으로 3.1운동의 발화지다.
 
드디어 가장 중요한 장소, 탑골공원이야. 당시 이름은 파고다공원이었지. 3.1운동 당일 33인은 원래 탑골공원에 가려고 했어.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것 같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어. 선언하는 순간 학생들이 흥분할 것 같고, 그럼 큰 소동이 일어날지도 모르지. 손병희 선생은 이미 큰일(동학농민운동)을 겪어봤잖아. 내 짐작이지만, 손 선생은 또 수십만을 죽이는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걱정했을 것 같아. 
 
3월 1일 오후 2시 30분, 탑골공원엔 학생들이 가득 모였어. 초기 시위를 이끈 것은 주로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와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학생이 많았고, 그밖에 다른 학교 학생도 모였지. 학생들은 선언서를 읽고 공원 남쪽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오른쪽으로 꺾었어. 그리고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 경운궁(덕수궁)으로 향했어. 그리고 그 앞에서 세 번 절을 올렸어. 왜 그랬을까?
 
고종의 시신이 경운궁에 있으니까. 울며 절하며 예를 올린 거야. 그 다음 경성일보(경성 즉 서울에서 발행한 조선총독부 기관지. 현 서울시청 자리)에서 명동까지 시위를 이어갔어. 참, 3.1운동은 그날 하루로 끝난 게 아니야. 다음 날부터 본격적으로 ‘우리 독립할 수 있다!’ 소문이 퍼졌고 줄기찬 싸움이 시작됐지. 3.1운동은 전국으로 고루 퍼졌고 서울에서만 13차례 일어났어.
1919년 3월1일 서울 덕수궁 뒷담을 지나가는 독립원성행렬

1919년 3월1일 서울 덕수궁 뒷담을 지나가는 독립원성행렬

 
자, 세 곳을 다 둘러본 소감이 어때? 모두 의미가 있지만, 나는 탑골공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지금 공원은 비록 작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세계 어떤 공원에서도 없던 일이 이 공원에서 있었다는 사실이야.
 
우선 독립선언을 했어. 그리고 대한민국을 탄생시켰지. 무슨 이야기냐고? 조선이 일본에 의해 망해서 나라를 되찾겠다는 선언만 한 것이 아니야. 독립선언은 이제 더 이상 왕정(임금이 다스리는 정치)은 하지 않겠다, 왕정 대신 공화국(republic,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으로 가겠단 뜻이야. 바로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Republic of Korea)를 탄생시킨 거지. 중요한 건 이름 없는 사람들이 뭉쳐서 독립을 선언하고,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사실이야.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야기이기도 해. 이름 없는 사람들이 이름을 얻은 곳이 어디라고? 맞아 탑골공원이야!
 


서울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서해성 감독

서울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서해성 감독

서해성
작가이자 문화 총괄 기획자. 역사와 관련된 일을 오래 해왔다. 2002~2010년 전국 '기적의도서관' 10개관 건립 총감독, 2015년 광복 7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총감독, 2016년 서울시 인권표석사업 총괄 기획자를 거쳐 2017년 현재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총감독을 맡고 있다.  
 
 
 
 
 
[학생기자들의 탐방 후기]
서해성 감독과 함께 독립선언의 길로 역사 탐방을 떠났던 학생기자들의 후기를 소개합니다. 옛 독립운동의 흔적을 글로 기록하며 궁금했던 역사적 인물들은 ‘독립운동가’ 앱을 통해 자세히 찾아봤습니다.
정리=한은정 기자
 

김지민(서울 서이초 5)
저는 태화관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독립선언을 한 곳인 동시에 이완용이 을사늑약을 모의한 곳이었죠. 민족대표들이 탑골공원에서 태화관으로 장소를 바꾼 이유도 듣고, 태화관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어 좋았어요. 또 일본인 중에서도 한국의 독립을 원하던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고 고맙기도 했죠.
 
임규민(서울 발산초 6)

우리나라 독립에 큰 영향을 준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보성사 터를 본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어요. 특히 감독님이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내용을 설명해 주셔서 좋았습니다. 그중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다 들켰던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어요. 처음으로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를 도운 사실을 알게 됐거든요. 민족대표 33인 중 29인이 모여 독립을 선언한 태화관도 기억에 남습니다.
 
장우진(용인 심곡초 5)
보성사 터, 태화관 터, 탑골공원 세 곳 다 좋았지만 무엇보다 탑골공원이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보성사·태화관 터에서는 예전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탑골공원은 옛 모습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것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죠. 또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이 독립을 위해 힘을 모았던 장소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었습니다.  
 
전민주(경기도 광명중 1)  
역사 말고도 세상 모든 일에 대해 질문해도 좋아요.” 서해성 감독님 말씀에 역사 탐방이 생각보다 더 즐거울 것 같은 예감이 들었죠. 감독님 덕분에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 생생한 역사 탐험을 할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친일파 이완용에게 독립운동을 권한 손병희 선생님의 에피소드가 인상 깊었죠. 탑골공원에 들어섰을 때는 그 시절 국민들의 타오르는 열정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어요. 영국·러시아·미국 등 큰 나라에는 크고 멋진 공원들이 많이 있지만 대한국민의 독립 의지와 노력, 땀과 눈물이 존재하는 탑골공원보다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 모두 꼭 이곳을 방문해서 그날의 열정을 느껴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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