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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15년치 전력수급계획, 정권 입맛 따라 2년마다 춤춘다

정부가 10월 중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내놓기로 했다. 이번엔 관심이 뜨겁다. ‘탈(脫)원전’이 화두로 떠오르면서다. 지난 11일 전력정책심의위원회는 8차 기본계획에 담길 적정 설비예비율을 22%에서 20%로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설비예비율은 전력 수요가 최대일 때도 가동하지 않고 예비로 남겨두는 설비의 비중이다. 설비예비율이 낮아지면 그만큼 발전설비를 덜 지어도 된다. 핵심 논거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둔화다. 성장이 더뎌지면서 전력소비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6차에 비해 성장률이 0.42%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던 7차 기본계획(2015년) 때는 설비예비율을 조정하지 않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심의위가 전망한 전력 수요 감소량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6차 기본계획 때 반영한 GDP 성장률(향후 15년 연평균) 전망치는 3.48%, 7차 기본계획 땐 3.06%였다. 0.42%포인트 하락에 따라 2027년 전력 수요가 110.9GW(6차)에서 109.3GW(7차)로 1.6GW 줄어든다고 봤다. 그러나 이번엔 2030년 전력 수요가 11.3GW나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때 성장률 전망은 3.4%에서 2.5%로 0.9%포인트 낮아졌다. 결과적으로 전력 수요 감소 전망치가 2년 사이 7배나 널뛰기한 셈이다.
 
수급 전망이 오락가락하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1990년대엔 늘 최대전력수요를 적게 예측해 문제가 됐다. 2011년 9월 순환단전을 경험한 뒤엔 수급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유에서 설비예비율을 22%로 올렸다(2013년). 불과 3년 후인 지난해부터는 전력이 남아돈다는 지적이 나왔고, 이젠 예비율을 다시 낮추겠다고 나선 것이다.
 
공급도 문제였다. 원전이나 석탄화력발전소 등 건설시간이 긴 발전소 건설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수급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준공 시점의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 탓에 건설 기간이 짧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를 지어 사실상 ‘스페어’로 사용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그렇다 보니 발전원별 수요 전망도 정확하지 않다. 정부는 6차 기본계획 때부터 아예 설비규모 전망만 내놓고 실제 발전량 전망치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LNG만 봐도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 수 있다. 2004년 발표한 2차 기본계획에선 2000년대 중반 이후 LNG 발전량이 정체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실제로는 2010년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2010년 5차 기본계획 발표 때는 더 심했다. 당시 2015년부터 LNG 발전량이 급격히 줄어 2024년엔 2010년의 58.5%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원전이 연이어 준공되면 LNG 의존도가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LNG 발전량도 전혀 감소하지 않았다. 그러다 현 정부는 아예 원전 비중을 낮추려고 LNG 발전소를 더 짓겠다고 나서고 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년 단위로 발표한다. 발표 시점 이후 15년을 전망하는 방식이다. 정부 주도로 이런 계획을 내놓기 시작한 건 1991년이다. 당시 이름은 장기전력수급계획이었고, 2002년 전력수급기본계획으로 이름을 바꿨다. 91년 이전에는 한국전력 내부 계획이었다. 이걸 국가 계획으로 승격시킨 건 그만큼 원활한 전력 공급의 중요성이 커진 때문이다.
 
기본계획의 핵심은 수요 전망이나 예비율이 아니다. ‘발전설비 건설계획표’다. 발전소를 언제 어디에 지을지 세세하게 정한 것인데 일단 이 리스트에 포함되면 인허가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공사 기간도 단축할 수 있다. 익명을 원한 한 에너지 분야의 교수는 “이 계획은 1980년대 말 전력 수요가 급등하면서 원전이나 석탄화력발전소를 빨리 짓기 위해 정부가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 건설을 앞당기려 만든 계획이 이젠 탈원전 용도로 쓰이게 된 셈이다.
 
11일 김진우(연세대 교수) 전력수급기본계획위원장은 “2030년까지 5~10GW의 설비를 신규로 건설해야 하는데 (이 정도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와 신재생에너지로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8차 계획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뒷받침하게 될 것을 시사한 대목이다. 이에 대해 정도영 동신대 에너지융합대학 교수는 “전력수급계획은 공급 신뢰도와 경제성, 환경문제 등을 감안해 최적의 효율을 산정하는 작업”이라며 “원전이냐 아니냐를 국민에게 선택해 달라는 논의에 휩싸여 진짜 중요한 걸 놓쳐서 안 된다”고 지적했다.
 
사실 정부가 발전소 건설까지 규제하는 기본계획을 세우는 건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정부가 수요 전망만 한다. 공급은 그 전망에 따라 민간이 알아서 결정한다. 정부가 다 틀어쥐고 있는데 정책이 2년마다 바뀌니 시장 참여자의 혼란은 가중되고, 산업부와 한전 등 유관기관은 정권 눈치만 보는 구조다.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달라진 산업구조와 기후협약 등을 고려할 때 지금은 새로운 에너지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라며 “탈원전, 탈석탄도 이런 엄정한 토대 위에서 장기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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