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번개 멈춘 볼트, 불멸의 ‘육신’으로 남다

우사인 볼트는 타이슨 게이와 아사파 파월이 양분하던 남자 단거리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100m에서 끝까지 전력질주하지 않고도 9초69로 우승했다. [중앙포토]

우사인 볼트는 타이슨 게이와 아사파 파월이 양분하던 남자 단거리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100m에서 끝까지 전력질주하지 않고도 9초69로 우승했다. [중앙포토]

이제 ‘육상 황제’가 트랙 위를 질주하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우사인 볼트(31·자메이카)는 13일 영국 런던의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400m 계주 결승에서 자메이카의 마지막 주자로 나섰다. 이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그에겐 이날 계주 결승이 마지막 레이스였다. 50m 지점, 특유의 스퍼트를 시작하려는 순간 볼트는 왼 다리를 절뚝이더니 쓰러졌다. 영국 대표팀이 가장 먼저 결승선(37초47)을 통과하는 모습을 그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바라만 봤다. 인류 역사상 누구보다 빨랐던 볼트는 트랙 위에 누운 채 경기를 끝냈다.
 
마지막 레이스인 세계선수권 남자 400m 계주 결승에서 넘어진 우사인 볼트. [런던 AFP=연합뉴스]

마지막 레이스인 세계선수권 남자 400m 계주 결승에서 넘어진 우사인 볼트. [런던 AFP=연합뉴스]

동료들의 부축을 받고 트랙을 떠난 볼트는 고별 인터뷰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볼트 시대’를 함께 보냈던 동료들이 그의 마지막 레이스를 위로했다. 자메이카의 첫 번째 주자 오마르 맥레오드는 “이런 일이 일어났지만, 볼트의 이름은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주자 줄리언 포르테는 “볼트가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부상도 경기의 일부”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 100m에서 볼트를 꺾고 금메달을 딴 저스틴 개틀린(35·미국)은 “우리는 서로 충분한 존경을 표시했다. 부상을 당했지만 그는 여전히 세계 최고”라고 말했다.
 
동료도 있었고, 라이벌도 있었지만 ‘볼트 시대’에서 그를 이긴 선수는 없었다. 인간이 정한 ‘인간의 한계’를 비웃기라도 한 것처럼 볼트는 자신의 한계를 계속 뛰어넘으며 전설 같은 기록들을 써내려갔다.
 
볼트는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 100m에서 9초58로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200m(19초19)와 400m계주(36초84) 세계기록까지 세우며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불렸다. [AFP=연합뉴스]

볼트는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 100m에서 9초58로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200m(19초19)와 400m계주(36초84) 세계기록까지 세우며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불렸다. [AFP=연합뉴스]

2008년까지 육상 단거리에는 여러 강자가 각축을 벌였다. 당시 22세였던 볼트는 5월 IAAF 리복 그랑프리 100m에서 9초72로 아사파 포웰(35·자메이카), 타이슨 게이(35·미국)를 앞섰다.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에서 볼트는 세계 기록(9초69)을 세우며 우승했다. 결승선 10m 정도를 앞두고 세리머니를 할 정도로 여유 있는 레이스였다. 끝까지 최선을 다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볼트는 “내 목표는 세계 기록을 세우는 게 아니라 금메달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볼트는 베이징올림픽 200m에서도 세계 기록(19초30)을 세우며 우승했다.
 
이후 그의 질주에는 가속이 붙었다. 200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m에서 9초58의 기록으로 또다시 세계 기록을 세웠다. 이 때도 끝까지 스퍼트 하지 않고 옆을 두리번거리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경쟁이나 기록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세계 기록을 연거푸 세운 볼트는 인간 이상의 존재 같았다. 여기에 쾌활한 성격, 엉뚱한 언행 덕분에 그는 세계 육상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볼트는 2011년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m 결승에선 부정출발로 실격됐다. 2009년을 정점으로 기록이 점차 나빠졌다. 그러나 볼트는 2012년 런던올림픽 100m에서 올림픽 기록(9초63)을 세우며 또 우승했다. 이어 200m, 400m 계주에서도 금메달을 따내며 2회 연속 올림픽 3관왕에 올랐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볼트. 양팔을 벌려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찌르는 번개 세리머니는 그의 전매특허였다. 그는 화려한 쇼맨십으로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Xinhua=연합뉴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볼트. 양팔을 벌려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찌르는 번개 세리머니는 그의 전매특허였다. 그는 화려한 쇼맨십으로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Xinhua=연합뉴스]

볼트는 또 지난해 리우 올림픽 100m에서 9초81로 우승했고, 200m와 400m 계주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 육상 역사상 처음으로 3개 종목 3연패를 달성한 선수가 됐다. 베이징올림픽에 함께 출전했던 자메이카 동료 네스타 카터가 금지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올해 초 밝혀지는 바람에 볼트의 금메달 하나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세 차례 올림픽에서 볼트가 가장 빨랐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세계선수권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11개)을 따낸 선수이기도 하다.
 
이번 대회에서도 볼트는 대부분의 종목에서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다. 나이와 기량을 보면 그가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도 우승할 확률이 높아 보였다. 볼트의 아버지 윌리슬리 볼트(60)는 “볼트가 2년 정도는 더 뛰었으면 좋겠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볼트는 정상에서 깨끗이 물러나는 길을 선택했다. 트랙을 떠나면 축구 선수로 뛰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던 그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 조제 모리뉴의 전화를 기다린다”며 농담을 했다.
 
마지막 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따고 싶었던 볼트는 지난 4월 절친한 육상선수인 저메인 메이슨(영국)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당시 큰 충격을 받은 볼트는 한 달 가까이 훈련을 하지 못했다. 앞선 경기의 시상식이 지연되는 바람에 이날 400m 계주가 늦게 시작됐다는 자메이카 선수들의 불만도 터져 나왔다. 자메이카 대표팀 주치의 케빈 존스는 “(레이스 전부터) 볼트의 왼 다리 근육이 뭉쳐 있었다”고 말했다. 악재가 겹치면서 볼트는 마지막 레이스 도중 쓰러지는 아픔을 맛봤다. 10년 동안 육상의 신(神)처럼 달렸던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수를 한 순간이었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AD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북핵위기 심화 및 동북아 안보환경 변화 등 미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2017년 7월 1일 개소했습니다.
연구소는 대학과 정부출연 연구 기관 등과 연계해 학술행사를 개최하며, 정기적으로 자문회의를 열고 다양한 시각과 차별화된 이슈를 제시합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은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