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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약물 빨아들이는 수액 줄?…재질 따른 약효 감소 논란

수액줄 재질에 따라 약물이 달라붙으면서 실제 약효가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 새로 제기됐다. [중앙포토]

수액줄 재질에 따라 약물이 달라붙으면서 실제 약효가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 새로 제기됐다. [중앙포토]

항암제, 고혈압 치료제 등을 환자에게 주사할 때는 일반적으로 약물을 곧바로 정맥에 주사하지 않고 흔히 '링거 줄'이라고 말하는 수액 줄을 쓴다. 미리 수액으로 희석해 펌프·레귤레이터 등으로 약물 양을 조절해 환자 몸에 주입하는 식이다. 그런데 환자 몸에 들어가는 약물 양이 수액 줄 재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일부 약물이 PVC나 폴리우레탄 재질의 줄에 많이 달라붙으면서 약효가 들쭉날쭉해진다는 지적이다. 의료 현장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라 논란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연세대 황성주·변효진 교수팀은 수액 줄의 재질에 따라 약물 흡착이 달라진다는 내용의 논문을 '국제 약학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Pharmaceutics)' 최근호에 발표했다고 13일 밝혔다. 국제 약학 저널은 약학 분야에서 권위가 높은 국제 학술지다. 연구팀은 혈관 확장제인 나이트로글리세린, 면역 억제제인 싸이클로 스포린 A·타크로리무스, 진정제인 디아제팜 등 4가지 약물을 PVC·폴리우레탄·폴리올레핀 등 3가지 재질의 수액 줄에 각각 주입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연세대 황성주ㆍ변효진 교수팀이 수액줄에 따른 약물 흡착 정도를 실험하는 장면. 4가지 약물을 3가지 수액줄에 각각 주입해서 얼마나 달라붙는지 확인했다. [사진 학술지 'JOVE' 캡처]

연세대 황성주ㆍ변효진 교수팀이 수액줄에 따른 약물 흡착 정도를 실험하는 장면. 4가지 약물을 3가지 수액줄에 각각 주입해서 얼마나 달라붙는지 확인했다. [사진 학술지 'JOVE' 캡처]

  연구 결과 4가지 약물 모두 재질에 따라 수액 줄에 약물이 달라붙는 정도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로 PVC 수액 줄이 '비(非) PVC' 수액 줄보다 약물 흡착이 심한 편이었다. 특히 병원에서 많이 쓰는 PVC와 폴리우레탄 재질에서 약물을 빨아들이는 비율이 높았다. 반면 폴리올레핀은 약물 흡착도가 적었다. 폴리올레핀은 뒤늦게 개발된 재질이라 상대적으로 병원 사용도 적은 편이다.
 
  면역억제제인 타크로리무스를 4시간 동안 수액 줄(펌프 방식)로 주입할 경우 PVC 재질에선 약물의 16.5%(오차 ±2%)가 중간에 사라졌다. PVC 줄에선 타크로리무스 약물의 6분의 1 정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셈이다. 한편 폴리우레탄은 10.8%(오차 ±2%), 폴리올레핀은 1.1%(오차 ±1.2%)이 사라져 PVC 소재보다는 약물이 중간에 상대적으로 적게 사라졌다.
PVCㆍ폴리우레탄ㆍ폴리올레핀 수액줄을 각각 사용했을 경우 일부 약물의 흡착도가 어떻게 되는지 확인한 연구 결과. [자료 황성주ㆍ변효진ㆍ정동준ㆍ방사익 교수]

PVCㆍ폴리우레탄ㆍ폴리올레핀 수액줄을 각각 사용했을 경우 일부 약물의 흡착도가 어떻게 되는지 확인한 연구 결과. [자료 황성주ㆍ변효진ㆍ정동준ㆍ방사익 교수]

  황성주 연세대 약대 교수는 "대체로 물에 잘 녹지 않는 난용성 약물이 수액 줄에 달라붙을 가능성이 높게 나왔다. 난용성 약물은 전체 약물의 3분의 1 정도 된다"면서 "약은 정량 주입이 필수적인데 흡착 문제로 정해진 양보다 환자에게 덜 들어가면 환자 건강에 문제가 생길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 실험에서도 이 같은 내용이 재확인됐다. 사람에게 직접 수액 줄의 약물 흡착도를 실험한 건 세계 두 번째다. 변효진 교수가 나이트로글리세린을 PVC·폴리우레탄·폴리올레핀 수액 줄을 통해 일반인에게 주입했더니 혈중 약물 농도가 각각 다르게 나왔다. 주입을 시작한 지 30분째 되는 시점에 혈중 평균 농도는 폴리올레핀을 사용한 경우 1.0ng/㎖ 수준으로 가장 높았다. 반면 PVC는 0.25ng/㎖ 안팎이었고 폴리우레탄은 거의 0에 가까웠다. ng(나노그램)은 10억분의 1그램을 의미한다.
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4년 전 성균관대 정동준 교수·삼성서울병원 방사익 교수팀이 실시한 나이트로글리세린·클로메티아졸(진정제)·이소소비드(협심증 치료제) 실험 결과와도 일치한다. 또한 독일 등 외국에서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정부의 무관심 등으로 관련 논의는 아직 활발하지 않다. 
 
  환자들에게 약품을 쓰고 있는 병원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은 엇갈린다. 일부 의사는 약물 흡착 문제를 인지하고 거기에 맞는 수액 줄을 사용하고 있다. 몇몇 제약사는 약을 공급하면서 제품에 맞는 수액 줄을 쓰거나, 반대로 특정 수액 줄은 쓰지 말라는 점을 사용설명서에 명시하고 있다. 
 
  이대호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약물마다 써야 하는 수액 줄이 있기 때문에 권고 사항을 지키려고 한다. 특히 항암제 등 중환자에게 쓰는 약은 정량 주입이 중요하기 때문에 평소 주의를 기울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약물 흡착'이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의료진도 많다. 익명을 요청한 종양내과 전문의는 "PVC 수액 줄 등에 약물 흡착이 일부 나타나는 걸 알지만 정량 주입에 문제될 만큼은 아니다"고 밝혔다. 조윤숙 서울대병원 약제부장은 “우리 병원은 거의 100% 폴리우레탄 수액 줄을 쓴다"면서 "환자에게 약을 썼을 때 눈에 띌 만큼의 약효 감소가 감지됐거나 해당 사안이 이슈가 된 적도 없다. 미미한 양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약효가 뚜렷하게 달라진다는 건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병원 항암주사실에 걸려 있는 주사제에서 수액줄을 통해 약물이 환자에게 주입되고 있다. 최근 일부 약물에서 수액줄 재질에 따라 환자에 들어가는 양이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새로 나왔다. [중앙포토]

한 병원 항암주사실에 걸려 있는 주사제에서 수액줄을 통해 약물이 환자에게 주입되고 있다. 최근 일부 약물에서 수액줄 재질에 따라 환자에 들어가는 양이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새로 나왔다. [중앙포토]

  약물 흡착 자체를 아예 모르는 경우도 상당수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는 "수액 줄에 약물이 달라붙는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다. 주변 동료들도 전혀 모른다고 한다"고 말했다. 사용설명서에 수액 줄 관련 사항을 알려주는 약품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변효진 교수는 "의료진이 일일이 환자와 약물에 맞는 수액 줄을 골라서 쓰는지 의문이 든다. 수액 줄을 제한적으로 갖춘 중소형 병원일수록 어려울 것으로 본다"면서 "의료진 대부분은 약물 흡착이 되는지 몰랐거나 최근에야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문제에 대처하는 정부 움직임은 '느림보' 수준이다. 약물 흡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처음 나온 지 5년 만인 이달에야 흡착 정도를 분석하는 KS(국내표준)을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해당 문제를 규제할 방안이나 이를 해소할 가이드라인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재질 별로 수액 줄 사용 실태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연세대 황성주ㆍ변효진 교수팀이 수액줄에 따른 약물 흡착 정도를 실험하는 장면. 4가지 약물을 3가지 수액줄에 각각 주입해서 얼마나 달라붙는지 확인했다. [사진 학술지 'JOVE' 캡처]

연세대 황성주ㆍ변효진 교수팀이 수액줄에 따른 약물 흡착 정도를 실험하는 장면. 4가지 약물을 3가지 수액줄에 각각 주입해서 얼마나 달라붙는지 확인했다. [사진 학술지 'JOVE' 캡처]

  신준수 식약처 의료기기정책과장은 "약물 흡착에 대한 분석법도 우리가 외국보다 앞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관련 연구가 많지 않고 국제적 표준도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성주 교수는 "국내에서 앞서 나가는 작업에 대해선 정부가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 이번에 제정될 KS도 규제 수단이 아니라 일종의 실험법인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환자 안전, 건보료 낭비 방지 등을 위해선 수액 줄 규제까진 아니더라도 의료진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리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황성주 교수는 "약품 설명서에 어떤 수액 줄을 써야 하는지, 수액 줄에 따라 약물은 얼마나 투입하면 되는지 표시하도록 의무화하는 걸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효진 교수는 "흡착이 안 되는 수액 줄을 쓰는 게 제일 좋고 그게 안 되면 의사들에게라도 정확한 정보 공유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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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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