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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7) 남편만 몰랐던 아내의 '제2천성'

성주참외. [성주군 제공]

성주참외. [성주군 제공]

 
“그땐 좀 슬펐어.”

아내가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점심을 막 먹고, 디저트 삼아 참외를 먹던 자리에서였다. 때는 평일 오후, 반백수의 하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하던 차였다. 막내는 출근하고, 부부만 남아 호젓이, 은근하게…는 개뿔. 건물 등은 놔두고 사람만 살상한다는 ‘스마트 폭탄’이 우리 거실에 떨어진 것이다.
 
말인즉 그랬다. 언젠가 아내가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인데, 참외를 깎아 내왔더란다. 하얀 속살을 드러낸 채 접시 위에 얌전히 올라앉은 참외. 포크를 들고 한 조각 찔러 입으로 가져가던 아내는 불현듯 ‘내가 뭐하는 거지?’란 생각이 들었다고. 
 
문득 보니 크고 단 참외 몸통 쪽 조각이 아니라 꼭지 쪽 조각을 포크로 찌르고 있더란 것. 그러면서 친구와 둘이, 누구 눈치 볼 것도 없는데 습관처럼 남들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내켜 하지 않는 꼭지 쪽부터 손이 가는 자신이 안쓰럽게 여겨졌다고 했다.
 
[사진 freepik]

[사진 freepik]

 
조금 먹먹했다. 슬퍼진 이유가 짐작 갔기 때문이다. 결혼 35년 차인 아내는 전업주부다. 맏이와 결혼한 탓에 퇴직하면서 분가하기 전까지 시부모와 함께 살았다. 30년 조금 넘게.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으니 모든 일에서 자신은 뒷전으로 놓는 게 아내의 천성이 되다시피 한 모양이다. 
 
그래서 신경 쓸 이가 아무도 없어도 습관처럼 참외 꼭지 쪽부터 손댔다는 걸, 그리고 그걸 새삼 알게 된 아내가 자기연민에 빠졌으리라. 아내는 결혼 전 “가족을 위해 봉사는 하겠지만 ‘희생’할 생각은 없다”는 ‘선언’을 할 정도로 당찬 면이 있었다. 한데 세월에 깎이고, 책임에 짓눌리면서, ‘헌신’과 ‘희생’ 사이에서 길을 잃고 ‘제2의 천성’을 만든 것이었다.
 
당황스러움이 더 크긴 했다. 퇴직하면 세탁기며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등 가전제품 사용법을 마스터해서 집안일을 분담하겠노라 큰소리쳐 놓고는 차일피일하던 참이었으니 말이다. 가사 분담은커녕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해, 커피 물 끓여 커피믹스를 타 마시게 된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니 유구무언이랄 밖에. 방금 둘이서 점심을 먹고는 식탁에서 몸만 살짝 뺀 상태였기에 더욱 그랬다.
 
“아, 이제는 맘대로 먹어. 누가 뭐라 그러나?” 퉁명스런 한마디로 무안함을 덮으면서 재빨리, 그러나 티 안 나게 참외 꼭지 쪽 조각을 향해 포크를 찔렀다.
 
김성희 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jaejae99@hanmail.net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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