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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군함도 참상, 일제 강제동원 기록물 6000여건 공개

군함도 전경 [사진 국가기록원]

군함도 전경 [사진 국가기록원]

 
행정안정부 국가기록원은 일본 서남(西南)한국기독교회관으로부터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관련 기록물 사본을 기증받아 공개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번에 기증받은 기록물은 일본 내 강제동원 연구자로 잘 알려진 하야시에이다이(林えいだい)가 수집하거나 직접 생산한 기록물이다. 강제 동원된 조선인의 피해를 잘 보여주고 있는 문서와 사진 기록 등 6000여 점이다.
군함도[사진 국가기록원]

군함도[사진 국가기록원]

 
하야시에이다이는 조선인 강제동원 연구를 위해 후쿠오카(福岡), 홋카이도(北海道), 한국 등을 찾아다니며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또 지금까지 『청산되지 않은 소화(昭和)-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 』(1990) 등 57권의 책을 저술했다.
 
일본 서남한국기독교회관은 규슈(九州) 지역 서남한국기독교가 2007년 설립한 부속기관으로, 하야시에이다이로부터 조선인 강제동원 관련 기록물을 수집한 바 있다.
조선인 400명이 수용됐던 군함도 시설 [사진 국기기록원]

조선인 400명이 수용됐던 군함도 시설 [사진 국기기록원]

 
일제 강제동원 전문가인 정혜경 박사는 “이들 기록은 하야시에이다이가 일제 강제동원 관련 저술 등에 이미 활용한 바 있으나 대량으로 입수되어 공개된 것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1944년 8월부터 1945년 9월까지 메이지(明治) 광업소 메이지(明治) 탄광(후쿠오카)이 생산한 ‘노무월보’는 당시 조선인이 처한 혹독한 노동 상황 등을 보여주는 중요자료로 평가된다. 1944년 8월 누계 자료에는 탄광에 도착한 광부 1963명 중 1125명(약 57%)이 도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강제노동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소 요시쿠마(麻生吉隈) 탄광(후쿠오카) 갱도사고(1936년) 관련 당시 신문 보도내용 등도 주목된다. 요시쿠마 탄광은 아소광업이지쿠호(筑豊) 일대에서 운영해온 7개 탄광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탄광이다. 신문 기사에는 “갱도 화재사고로 인해 사망 20명, 중상 3명, 경상 12명, 행방불명 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기록돼 있다. 
아소 요시쿠마 탄광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를 다루고 있는 후쿠오카 신문(1936년 1월 27일). [사진 국가기록원]

아소 요시쿠마 탄광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를 다루고 있는 후쿠오카 신문(1936년 1월 27일). [사진 국가기록원]

 
하야시에이다이가 직접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군함도(하시마·端島) 관련 사진도 여러 점 공개되었다. 군함도는 미츠비시(三菱)가 1890년 사들여 개발한 해저 탄광으로 혹독한 노동조건 탓에 ‘감옥섬’, ‘지옥섬’으로 불렸다. 공개된 사진은 군함도 전경(前景), 신사(神社) 및 초소(哨所), 세탄장(洗炭場), 조선인이 수용되었던 시설 등이다.
 
또 하야시에이다이가 강제동원 피해 유족 등을 만나 촬영한 사진과 면담 내용도 함께 공개됐다. 미츠비시 사키토(三菱 崎戶島)탄광(나가사키) 피해자의 유족 사진에는 “부친이 면(面)순사에게 체포된 뒤 1944년 병사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모친은 갑자기 가출하고 나는 친척집에 맡겨졌다. 부친의 유골은 전쟁 뒤 동료가 가지고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어 강제동원의 아픈 역사를 엿볼 수 있다. 
강제동원 된 광부들이 도망가도록 도왔다고 증언하는 일본인 노부부. [사진 국가기록원]

강제동원 된 광부들이 도망가도록 도왔다고 증언하는 일본인 노부부. [사진 국가기록원]

강제동원 피해사실을 증언하는 유족. [사진 국가기록원]

강제동원 피해사실을 증언하는 유족. [사진 국가기록원]

 
이상진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장은 “기증받은 기록물을 국민들이 볼 수 있게 할 계획”이라며 “향후 조선인 강제동원 등 과거사 관련 기록물을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여 학술연구, 열람 등에 적극 활용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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