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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공무원 1만9000명 인사권, 압력에 노출 되기 쉬워

‘제왕적’ 대법원장 권한
양승태 대법원장

양승태 대법원장

‘제왕적 대법원장’. 올 초부터 이어지고 있는 사법부 내 갈등 양상이 외부로 표출될 때마다 함께 언급되고 있는 문구다. 대법원 고위층이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행사를 축소하는 데 개입한 사건에서부터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컴퓨터에 판사들을 뒷조사한 파일이 존재한다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의혹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권한을 지닌 대법원장에 대한 비판은 사법부 안팎에서 끊임없이 나왔다. 다음달 24일 임기가 만료되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후임 인선 과정에도 대법원장의 권한 분산 문제가 고려되고 있다. 국회에서 진행 중인 개헌 논의에서도 이 문제는 중요 의제다. 도대체 대법원장이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기에 이 같은 비판이 나올까. 중앙SUNDAY는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시스템상 대법원장이 본문에 적시된 현행 법령 97건을 전수조사해, 대법원장의 법률상 권한을 분석했다.
“성인군자라도 압력 받아들이기 쉬워”
법원 내부에서 대법원장이 가진 가장 강력한 권한은 인사권이다. 헌법과 법원조직법에 따라 법관 3214명에 대한 임명권을 갖고 있으며 10년에 한 번씩 재임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또 매년 인사 때 정기적으로 법관들을 전국 어느 법원에라도 전보시킬 수 있고 일정한 연차가 됐을 땐 고등부장 자리에 보임할 권한도 갖고 있다. 법관들에 대한 징계 여부를 결정하는 징계위원회 위원 10명을 임명할 수 있으며 법원 공무원 1만5755명에 대해서도 인사권을 행사한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사람에게 인사를 맡기면 중립적으로 할 것이라는 게 우리 헌법의 기본 태도이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혼자 인사를 하다 보면 압력에 노출되기 쉽고 소리 소문 없이 압력을 받아들이기 쉽다. 대법관 회의의 동의를 받는 등의 완충 장치가 있다고는 해도 한 사람이 법관 인사를 독점하는 체계는 아무래도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법원장은 고위 법관에 대한 권한도 많다. 임기 중 공석이 된 대법관 후보 제청권이 대표적이다. 또 대법관 후보를 추천하는 위원회 위원을 임명·위촉하는 권한도 갖고 있다.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장도 대법관 중에서 임명할 수 있다. 법학자들은 다른 무엇보다 대법관 제청 권한부터 고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등한 합의가 이뤄져야 할 전원합의체를 구조적으로 대등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법부 내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대법관회의조차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설명이다.
 
“대법원장이 대법관 임명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니 자신을 제청해 준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관계가 아무래도 수평적이라기보단 상하 관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 보니 대법원장 의견에 대법관들이 반대하기가 쉽지 않다. 대통령이 장관을 임명하는데 장관이 대통령에게 반대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선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중립적 평의회를 설치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 처방으로는 법관 사회의 승진 요소를 줄이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차관급 대우를 받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로의 승진 등 누구나 선망하고 부러워하는 출세의 길을 없애 인사권자에게 종속되는 병폐를 해결하자는 취지에서다. 헌법학자인 김진한 전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제안이다.
 
“미국은 연방법관에 대한 인사라는 것이 없다. 대통령이 의회의 인준을 받아 임명하며 임명된 법관은 그 법원에서 평생 근무한다. 다른 인사 요소에 휩쓸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재판에 전념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구조다. 연방대법원장도 재판에만 전념할 수 있다. 법관 임용 구조가 다른 우리 현실에 그대로 도입할 수는 없지만 ‘인사의 요소’를 줄여야 한다는 기본 인식은 참고할 만하다. 승진이 꼭 필요하다면 고등부장의 직급을 낮추고 숫자를 두 배로 늘리면 된다. 법원장 인사도 각 법원 부장판사급들이 로테이션으로 맡는 방식을 도입하면 된다. 그렇게 해야만 법관들이 재판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대법원장의 권한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축은 외부 인사권이다. 대법원장은 헌법재판관을 포함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국가인권위원회 위원 3명을 지명할 수 있다. 또 국민권익위원회(3명), 주식백지신탁 심사위원회(3명), 사학분쟁조정위원회(5명), 검사적격심사위원회(1명) 위원을 추천할 수 있다. 일시적으로 활동하는 특별검사, 진상조사위원회 등의 위원에 대한 추천·지명권도 행사한다. 본지 조사 결과 법관, 법원공무원을 제외하고도 80여 개 직위에 대해 인사권을 지닌 것으로 집계됐다.
 
“대법원장 좋은 판결에 집중하게 해야”
이 같은 외부 인사 권한도 장기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특히 정치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헌법재판관, 국가인권위 위원 등의 지명 권한을 주는 것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할 사법부를 정치의 한가운데로 밀어넣어 ‘사법의 정치화’를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재판관, 국가인권위원에 누구를 지명하냐는 것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다. 때에 따라서는 대통령이나 여당에서 어떤 사람을 지명하라는 식의 압박이 들어올 여지도 크다. 사법 작용이 정치로부터 독립되는 게 바람직한데 자꾸 대법원장에게 정치에 개입할 여지를 마련해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 대법원장이 좋은 판결을 내리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사회적으로 신뢰받는 헌법기관으로서 대법원이 중립적 인물들을 주요 국가 기관에 추천하는 것에 대한 긍정적 시선도 있다. 고위 법관 출신 한 변호사는 “그간의 경험을 종합하면 대통령이나 정당에서 추천한 인물들보다 상대적으로 대법원장이 고른 사람들이 더 좋은 성과를 냈다. 그만큼 신뢰할 만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얘기다. 다만 대법원장 개인에게 이런 역할을 전부 맡기기보단 대법원에 추천 권한을 줘 공식 기구에서 이를 검증해 추천하는 등 구조를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같은 사법부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할 차기 대법원장 후보자는 이르면 다음주 발표될 전망이다. 비슷한 기간 대법관을 지내며 함께 소수 의견을 많이 내 이른바 ‘독수리 5형제’로 분류되기도 했던 전수안(65)·박시환(64) 전 대법관 등이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이인복(61)·박병대(60) 전 대법관, 김용덕(60) 대법관 등의 지명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박민제 기자, 김도연 인턴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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