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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는 속도전, 시스템, 갈등 관리 … 盧 정부가 반면교사

문재인 정부 100일의 재구성
문재인 정부가 오는 17일로 출범 100일을 맞는다. 국정 지지도는 70%를 웃돌며 고공행진을 하고 있지만 문 대통령 앞에 놓인 시험지는 결코 간단찮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북한과 미국의 갈등 고조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서 비롯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포대 임시 배치와 그에 따른 중국과의 갈등은 물론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도 기다리고 있다.
 
국내적으론 부동산 가격 안정과 일자리 확충, 검찰·국정원을 포함한 권력기관 개혁, 그리고 탈핵 공론화 등이 당면 과제다. 부동산 가격 안정이 이전 정부로부터 떠안은 숙제라면 일자리와 권력기관 개혁은 새 정부가 직접 발제한 국정과제다.
 
이해득실 엇갈리는 정책은 후순위로
인수위 없이 출범한 문 대통령은 취임 초 일주일을 적폐 청산 작업에 할애했다. 취임 사흘 만에 업무지시 2호로 국정교과서 폐지를 지시한 게 대표적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선 지난 정부 때 체결된 위안부 합의를 거론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위안부) 합의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부정적인 의견을 견지해 왔다.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 관계자는 “외교 책임자로 여성 장관을 지명한 것도 위안부 피해자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란 판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지시도 적폐 청산 작업의 일환이었다.
 
속도전은 문재인 정부 100일을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 중 하나다. 문 대통령은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이 끝나고 4시간 뒤 청와대 집무실에서 일자리위원회를 신설하는 업무지시 1호에 서명했다. 취임 사흘째인 5월 12일에는 인천공항을 찾아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같은 달 15일에는 초등학교를 방문해 미세먼지 대책을 내놨다. 임상렬 리서치플러스 대표는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고 지지하는 정책을 신속히 추진하면서 취임 초 국정 동력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대신 증세와 탈원전 등 이해득실에 따라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정책 추진 시점은 후순위로 미뤘다. 문재인 정부 100일을 날짜별로 재구성하면 이런 점이 확연히 눈에 띈다. <그래픽 참조>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 “노무현 정부 첫 100일을 반면교사로 삼은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부터 이라크 파병을 둘러싸고 갈등에 휩싸였다. 윤태영 전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은 2015년 출간한 『바보 산을 옮기다』에서 “노무현 정부는 갈등으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합이란 대통령의 약속이 무색하게도 갈등은 점점 그 심각성을 더해갔고 해결은 더욱 요원해졌다. 취임 초 북핵과 이라크 파병 문제에 이어 부안 방폐장 문제가 겹치면서 정부의 앞길이 험난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고 적었다.
 
갈등 관리는 문재인 정부 100일의 또 다른 키워드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민정수석을 맡았던 문 대통령은 갈등이 확산되는 양상을 바로 곁에서 지켜봤다. 지난 대선에 관여한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은 “문 대통령은 집권 초기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국정 동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노무현 정부의 실패에서 깨달았다”고 전했다. 윤 전 비서관도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우리 사회의 갈등 구조는 전면화됐고 합리적 중도는 설 자리를 잃었다. 그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은 많은 지지자를 잃었다”고 회고했다.
 
문재인 정부는 갈등 사안에 초기부터 적극 개입하지 않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론화위원회다. 민주당 관계자는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사 중단 결정을 놓고 정부와 공론화위가 서로 미룬 것처럼 보인 건 정부 개입 최소화 원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론화가 잘 진행된다면 대의제 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한국처럼 극한대결 정치에 합의제 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취임 초부터 북핵 위기와 부동산 가격 폭등이란 두 가지 현안을 동시에 떠안았다는 점에서 닮았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5월 14일 신형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인 화성-12형을 시험발사했다. 노 전 대통령 때도 취임 하루 전날 북한은 동해안으로 단거리 대함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 문제는 대화에 군사적 카드도 병행
북핵 위기가 고조된 상황이었지만 노무현 정부는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우리의 큰 원칙은 핵은 용납할 수 없고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강조한 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도 노 전 대통령의 북핵 해법과 닮았지만 각론에선 차이가 있다. 문 대통령이 대화 채널에 더해 핵잠수함 건조와 미사일 탄도 중량 확대 등 군사적 카드를 병행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부동산 가격 폭등이란 시험지도 동일했지만 대책 발표와 향후 대응에선 두 정부가 서로 달랐다. 문재인 정부는 시그널보다는 시스템에 방점을 뒀다. 시장에 대한 경고를 보내기 전에 강력한 대책을 먼저 내놨다. 시장에 경고 시그널을 보내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노무현 정부 때의 교훈이 참고가 됐다는 후문이다.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도 지난 3일 “노무현 정부 때도 수차례 대응책을 발표했지만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점에서 명백한 실패”라고 고백했다. 이 한마디에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가 녹아 있다는 평가다.
 
문재인 정부가 시그널보다 시스템을 우선에 둔 건 검찰 개혁에서도 확인된다. 검찰 개혁을 추진한 노 전 대통령은 취임 13일째인 3월 9일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를 통해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검사들을 설득하는 경우는 전례가 없었다. 하지만 검찰은 거세게 반발했고 노 전 대통령의 시그널은 먹혀들지 않았다. 이와 달리 문재인 정부는 전원 민간인으로 법무·검찰개혁위원회를 구성한 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와 법무부의 탈검찰화, 검찰 인사제도 개선 등 시스템 개혁에 주력하고 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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