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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양숙의 Q] 프랑스 외인부대서 5년, 군가 부르다 목소리 얻었지요

기자
배양숙 사진 배양숙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보이스 코치 이진선(37)씨. 신체 여러 부위 훈련을 통해 자신 속에 숨겨진 목소리를 찾아주는 조련사다. 지금은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지만 그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3살에 부모와 헤어졌고 15살엔 수녀원에서마저 도망쳤다. 갈 곳 없는 소년을 받아준 중화요리집, 더 큰 세상으로 가기 위해 선택한 프랑스 외인부대, 그토록 꿈꿨던 배우 데뷔, 그리고 우연히 만난 보이스 코치라는 직업. 배우와 보이스 코치로 1인2역을 하고 있는 이진선을 '배양숙의 Q'가 만났다.



 
'배양숙의 Q'가 서울 삼성생명 서초타운에서 배우 겸 보이스 코치 이진선을 만났다. 최정동 기자

'배양숙의 Q'가 서울 삼성생명 서초타운에서 배우 겸 보이스 코치 이진선을 만났다. 최정동 기자

 
 
보이스 코치란 직업이 우리에겐 아직 생소한데요.
“목소리엔 그 사람의 건강 상태는 물론이고 지적 수준, 직업, 신체골격, 자라온 환경 등 200여 가지의 정보가 담겨 있어요. 보이스 코치란 각자에게 숨겨져 있지만 정작 자신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본인만의 목소리를 찾아주는 조련사입니다. 올바른 호흡법과 발음, 발성법을 알려주죠. 전략적으로 목소리를 사용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돋보일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영화 촬영 때문에 매우 바쁘다고 들었어요.
“네, 영화 ‘공작’과 ‘안시성’ 두 작품에 출연하게 됐습니다. 윤종빈 감독님이 메가폰을 잡은 ‘공작’은 내년 추석 전 개봉 예정인데, 북한의 핵 개발 실체를 밝히기 위한 남북의 첩보전을 다룬 영화에요. 전 기자 역으로 출연합니다. 2018년 개봉 예정인 ‘안시성’은 김광식 감독님 작품으로 15일 첫 촬영에 들어가요. 고구려 장수 양만춘이 88일간 당태종의 공격을 막아낸 '안시성 전투'를 그린 초대형 사극이에요. 제 배역은 당나라 총사령관의 부관 입니다. 아직 비중이 큰 배역은 아니지만 이제 시작이에요. 영화 촬영과 더불어 보이스 코칭 강연도 틈틈이 다니느라 여름을 바삐 보내고 있습니다.” 
부모님과는 어떻게 헤어졌나요?
“부모님과 헤어진 이유는 저도 잘 모릅니다.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도 안 나고요. 1983년 서울 종로3가 파고다 공원에서 제가 발견됐고 마리아 수녀회에 보내졌다고 하더라고요. 16살에 어쩌다 나는 고아가 됐을까 생각해보며 종로3가를 한없이 걸었어요. ‘내가 이쯤에서 혼자 울고 있지 않았을까’, ‘나라면 여기서 아이를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했을까’. 만약 부모님이 저를 잃어버린 거라면, 그리고 저를 찾기 위해 애타게 노력했다면 충분히 찾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속상했지만 이제는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15살에 어린 나이에 수녀원을 탈출한 이유는 뭔가요?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중학생 때 부산에 있는 수녀원으로 가게 됐습니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평생 초등학생일 줄 알았던 제가 중학생이 된다는 것이 충격이었어요. 그곳에 있는 선배들을 보니 기술을 배워 정해진 공장에서 평생 기계를 만지며 살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정해진 삶을 살기 싫었습니다. 제 안에는 항상 무언가를 도전하고 성취하려는 욕구가 강하게 있었던 것 같아요.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했고, 수녀님들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도망치기로 결심했죠.” 
 
 
수녀원 아이들과 젬마 엄마 수녀님. 뒷줄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이진선. [사진 이진선]

수녀원 아이들과 젬마 엄마 수녀님. 뒷줄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이진선. [사진 이진선]

 
 
어린 나이에 처음 마주한 세상은 어땠나요?
“도망친 날 밤 무작정 걷다 부산 국제시장에 도착했습니다. 배가 고파서 일단 중화요리집으로 들어가 짜장면을 시켜 먹었어요. 직원이 배달 나가면 도망칠 생각이었는데 마감 시간이라 안 나가더라고요. 결국 사장님이 눈치를 채시고 제게 돈은 있는지, 잘 곳은 있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셨어요. 그리고 그 중화요리집에서 일하며 생활할 수 있게 도와주셨죠.”
정해진 삶이 싫어서 도망쳤으니 중화요리집에서 일만 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제가 ‘중국집 총각’으로 불리고 있더라고요. 저는 이런 삶을 원해서 수녀원을 나온 게 아니었고, 공부만이 이 상황의 돌파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검정고시를 준비했죠. 처음에는 주변에서 괜히 돈 낭비 하지 말라고 비아냥거렸어요.”
교재비를 감당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느 날 아침 사장님이 공부하다 잠 든 제 모습을 보시고는 남은 교과서 할부금을 다 대주셨어요. 제 진심을 느끼신 거죠. 그렇게 대입 검정고시까지 합격했지만 한국에서 대학을 가기엔 장벽이 너무 높았습니다. 연극영화과는 다른 데보다 학비가 훨씬 비싸고, 독학으로는 유복한 가정에서 과외 받은 아이들을 따라가기 힘들었어요. 저 같은 사람은 대학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구조였어요.”
연극영화과를 고집한 이유가 있나요?
“10살 때 서울 세종문화회관 초대로 뮤지컬 ‘피터팬’을 봤어요. 어린 제 눈에는 얼마나 그 세상이 거대하고 황홀했는지요. 그게 뭔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피터팬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저렇게 많은 사람들 눈에 지속적으로 노출 된다면 부모님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때부터 막연히 배우가 제 꿈이 됐어요.”
 
 
배우 이진선은 영화 '검사외전(2015)'에 국회의원 보좌관 역으로 출연했다. [사진 이진선]

배우 이진선은 영화 '검사외전(2015)'에 국회의원 보좌관 역으로 출연했다. [사진 이진선]

 
 
배우라는 꿈과 프랑스 외인부대는 전혀 접점이 없어 보여요. 외인부대로 가게 된 계기가 뭔가요?
“꿈과 현실의 괴리에 대한 무력감에 너무 힘들어 혼자 술을 한잔 하다 잠든 어느 날이었습니다. 새벽에 열어둔 창문으로 제 얼굴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게 느껴져 깼는데, 어디선가 읽은 ‘외인부대’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어요. “내 스스로 내 자신을 변화 시킬 수 없다면 외부의 힘을 빌려 나를 변화시키자. 프랑스 외인부대로 가자.” 죽을 수도 있는 곳이지만 전 정말 절박했거든요. 제 젊음의 일부를 희생하면 기회가 주어질 것 같았어요. 그렇게 결심하고 나서 바로 여권을 만들고 프랑스 편도 항공권과 60만원, 바지 한 벌, 속옷 한 벌, 양말 한 켤레만 가지고 비행기에 올랐어요. 그때가 18살이었습니다.”
불어를 전혀 몰랐잖아요. 외인부대까지 혼자 가기조차 쉽지 않았을 텐데요.
“정말 궁하거나 간절히 원하면 눈앞에 작은 빛이 보이더라고요. 공항에 내렸는데 한국인처럼 보이는 가이드가 서 있는 거예요. 그분한테 도움을 청했죠. 우여곡절 끝에 모병소에 도착했지만 두려움과 긴장감으로 그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어요. 이를 악물고 지원했고, 각종 테스트를 통과해 외인부대원이 됐습니다.”
언어 장벽으로 힘들진 않았나요?
“힘들었죠. 그래서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훈련이 끝나고 밤 10시에 소등된 후에도 저는 화장실에서 초를 켜고 공부했어요. 하루는 당직 사관이 순찰 돌다가 불빛을 발견하고 화장실 문을 두드리는 겁니다. 두려움에 떨며 문을 열었더니 덩치 큰 흑인 당직 사관이 눈을 부릅뜨고 서 있더라고요. 혼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잘 땐 자라!’라고 소리치고는 초코바를 하나 꺼내 주며 엄지 척 하는 거예요. 너무 고마웠어요.”
 
 
제 1외인기갑연대에서 기갑전술 훈련 중인 모습. [사진 이진선]

제 1외인기갑연대에서 기갑전술 훈련 중인 모습. [사진 이진선]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했나 보네요. 5년 동안 복무하면서 많은 걸 얻었을 것 같아요.
“스키, 승마, 수영, 운전, 불어를 배웠고 가장 중요한 건 제 목소리를 얻었습니다. 그땐 몰랐지만 텍스트를 또박또박 소리 내 읽거나 노래를 나지막이 부르는 건 좋은 목소리를 얻기 위한 훈련이거든요. 프랑스 군가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음이 굉장히 낮아요. 저는 당시 목소리가 미성이었는데, 프랑스 군가를 5년 동안 부르니까 목소리에 힘이 생겼습니다.”
실제로 전투에 참여한 적도 있나요?
“2000년, 세네갈에서 정권이 교체되면서 정부군와 반정부군이 대치했습니다. 세네갈 정부는 프랑스 외인부대에 협조를 구했고, 저희 부대원 150명 정도가 갔어요. 외인부대가 있는 것 만으로도 전쟁이 억제되거든요. 다행히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안전을 위해 아이들한테도 총을 겨눌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마음 아팠습니다.”
타지에서 홀로 지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입대한 지 3년 정도 됐을 때 '외로워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을 만큼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하루는 같이 근무하던 형한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소연 했는데, 그 형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한국 가면 뭐 할 건데? 한국에서 네가 뭘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로 돌아가고 싶으면 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그 말로 제가 여기 온 이유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죠. 전쟁에서 이기는 것 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먼저였던 거예요. 그렇게 5년 간의 복무를 마치고 에꼴 댄스 드 파리(Ecole dance de paris)에 입학해 그토록 하고 싶었던 연기 공부를 했어요.”
 
 
피레네 산맥을 오르내리며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사진 이진선]

피레네 산맥을 오르내리며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사진 이진선]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 한 일은 뭔가요?
“오디션을 찾아봤습니다. 맨 위에 있던 단원 모집 공고를 보고 바로 연락해 단원 생활을 하게 됐어요. 처음 맡은  배역은 ‘닭’이었습니다. (웃음) 김유정의 소설 '봄봄'에 나오는 닭이요. 저한테는 너무 소중한 첫 배역이었기 때문에, 닭 동영상을 보면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어떻게 걷는지, 목은 어떻게 돌리는지, 어떻게 우는지, 눈빛은 어떤지 까지요. 그렇게 꿈에 그리던 무대에 섰는데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힘든 때도 많았어요. 연극 만으로는 살기 힘들어서 막노동까지 했거든요.”
생애 첫 인터뷰 장소인 서울 삼성생명서초타운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요.
“사실 이 건물도 제가 일했던 현장이에요. 공사하느라 한참 드나들었던 건물이 완공되고 출입이 통제되니까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제가 언제 또 이곳에 올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오늘 이렇게 인터뷰하기 위해서 왔네요. 여기 들어오면서 건물과 인사를 나눴어요. 그동안 잘 지냈냐고. (웃음)”
‘코칭’은 어떻게 접하게 됐나요?
“제 아내는 대학병원에 근무하고 있어서 많은 강의를 들어요. 하루는 아내가 저한테 김상임 코치의 강의를 들어보라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강의료가 생각보다 비싼 거예요. 저는 ‘내년에 아기도 태어나고 쓸 돈이 얼마나 많은데!’하고 버럭 화를 냈죠. 그런데도 아내가 계속 권유하니까 속는 셈 치고 들어봤는데, 코칭이라는 게 알면 알수록 신기하더라고요. 저는 제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코칭을 받을 때마다 새로운 제 자신을 발견했고 잠재된 능력들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됐죠. 물론 가장 큰 깨달음은 제 목소리를 발견한 겁니다. 코칭은 다른 주입식 일반 교육과는 달라요. 질문 하나하나가 그 사람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끌어내거든요.”
 
김상임코치는 두 자녀의 엄마로 삼성공채로 입사해 CJ임원에 오르기까지 다양한 업무경험을 했다. 2011년에 퇴임한 후 "코칭으로 대한민국 행복지수"를 높이겠다는 마음으로 기업임원에서 대학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코칭과 강의로 변화시키고 있다. 현재 블루밍경영연구소의 대표코치다.


 
아내분이 코칭과의 인연을 만들어 준 거네요. 아내를 만나게 된 얘기가 궁금합니다.
“어느 날 집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세네갈 봉사단원 모집 공고가 나오더라고요. ‘코이카의 꿈’이라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외인부대 시절 세네갈 아이들한테 총을 겨눈 게 저한테는 항상 죄책감으로 남아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봉사하자는 생각으로 지원했죠. 저는 봉사단장으로 세네갈에 가게 됐고, 세브란스 병원에서 의료진들을 보내줬어요. 그 중에 제 아내가 있었고요. 그렇게 아내를 처음 만났습니다.”
 
 
2011년 세네갈 의료봉사 현장에서 아침 조회 중인 이진선(맨 오른쪽)과 그의 아내 박신영 간호사(맨 오른쪽에서 두번째). [사진 연세의료원]

2011년 세네갈 의료봉사 현장에서 아침 조회 중인 이진선(맨 오른쪽)과 그의 아내 박신영 간호사(맨 오른쪽에서 두번째). [사진 연세의료원]

 
 
외인부대를 가지 않았다면 아내도 만나지 못했겠네요.
“그렇죠. 근데 세네갈에 있을 때는 너무 바빠서 아내와 말 한마디 못해봤어요. 제대로 만난 건 한국 와서 였죠. 세네갈에 심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아이가 있었거든요. 세브란스 병원에서 그 아이를 돕기로 했고, 저는 그 아이의 보호자가 되어 같이 한국으로 왔습니다. 그때도 막노동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매일 저녁 집에서 깨끗하게 샤워하고, 제일 좋은 옷을 입고 그 아이를 만나러 병원으로 갔습니다. '보호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아이를 안심시켜주기 위해서요. 어느 날 병실을 나왔는데, 익숙한 얼굴의 여자가 서 있더라고요. 세네갈 봉사할 때 만났던 간호사, 제 아내였습니다. 그 넓은 병원에서 다시 만난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니죠. 제가 먼저 차 한잔 하자고 말을 건넸고, 그렇게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성장이 멈춰버린 아기 '아미나타' 와 박신영 간호사. 아미나타는 한국 세브란스 병원에서 대수술을 받고 살아날 수 있었다.[사진 연세의료원]

성장이 멈춰버린 아기 '아미나타' 와 박신영 간호사. 아미나타는 한국 세브란스 병원에서 대수술을 받고 살아날 수 있었다.[사진 연세의료원]

 
 
직접 코칭을 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김상임 코치님이 저한테 처음 코칭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셨어요. ‘제가 볼 때 이진선씨는 지금도 충분히 많은 재능이 있어요. 이제 달리기는 그만하시고 가지고 계신 재능을 깨워 보세요. 요즘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로 고민하고 있어요. 오랫동안 목소리 훈련을 하셨을 텐데 다음 코칭 모임 때 보이스 코칭을 한 번 해주시면 어떨까요?’ 그 날 밤 얼마나 설렜는지 몰라요. 달리기가 아닌 새로운 도전은 오랜만이었거든요.”
첫 보이스 코칭은 어땠나요?
“첫 번째 프로 데뷔 무대가 우리나라 최고의 회계사 그룹이었어요. 그런데 같은 날 아내가 출산을 위해 병원에 실려 간 거예요. 아내도 걱정되고 임원들 앞에서 강의하려니 무척 긴장되더라고요. 하지만 제 자신을 믿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지금은 '블루밍경영연구소' 소속 코치로 저만의 보이스 코칭 프로그램과 기업 리더들을 위한 보이스 코칭을 진행하고 있어요.”
기업 리더들이 돈을 주면서까지 보이스 코칭을 받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그 정도로 목소리가 중요한가요?
“첫 인상을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게 목소리에요. 겉모습은 몇 시간에서 며칠이면 없어지는데 목소리는 평생 가거든요. 그런데 목소리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게 직업입니다. 제가 강의 나가서 임원분들께 본인의 목소리가 무슨 색인 것 같으냐고 물으면 대부분 회색이라고 말씀하세요. 딱딱하고 무미건조하고 사무적인 직업의 영향이죠. 어느 분은 아들이랑 여행도 가고, 원하는 것도 다 사주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사이가 틀어졌다고 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집에서도 항상 임원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는 거예요. 제 코칭대로 목소리에 활력을 넣어 가족들과 얘기했더니 한 달 만에 아들이 먼저 옆자리로 다가와 앉았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목소리 하나 때문에 가족과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고 소중한 고객을 놓칠 수도 있어요.”
 
 
이진선은 '블루밍경영연구소' 소속 보이스 코치로 한국코치협회 KAC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이진선은 '블루밍경영연구소' 소속 보이스 코치로 한국코치협회 KAC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37년 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힘든 상황을 잘 극복하는 방법이 따로 있나요?
“저는 프랑스에서 오랜 기간 혼자 지냈고, 가족도 없어서 힘들어도 말할 곳이 없었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많은 생각하지 말고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이거 하나만 넘자’라는 생각으로 버텼죠. 제가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환경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처지에 낙담하지 말고,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작은 도전이라도 꾸준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도전을 성공시켜나가다 보면 반드시 자신의 꿈에 도달한 나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어떤 도전을 하고 싶나요?
“먼저, 저는 2023년까지 1000만 관객 영화의 주·조연이 되기 위해 달려갈 것입니다. 두 번째로 소년, 소녀 가장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해 봉사와 기여를 할 것입니다. 저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는 동료 배우들을 코칭하고 싶습니다. 배우들은 작은 배역 하나 따내기도 힘들지만 운좋게 배역을 맡더라도 이름을 알리거나 스타 반열에 오르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렇다보니 생계유지가 힘든 배우들도 많습니다. '배우'라는 꿈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동료들을 제 코칭으로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요.”
지금도 계속 봉사활동을 하고 계시지요.
“코치 선생님들 중 경기도 평택의 한 초등학교에 있는 다문화 학생들을 위해 봉사 활동을 다니는 분이 계세요. 그런데 학교에 불어밖에 할 줄 모르는 학생들이 있다고 저한테 도움을 요청하시더라고요. 그 아이들 중에 특히 의욕이 없는 남학생이 있는데, ‘공부하면 뭐해요, 어차피 공장에서 일할 텐데.’라고 말했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들으니 제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아 당장 아이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했죠. 일단 제가 불어로 말한다는 것에 아이들이 놀라워하고 신나 했어요. 또, 제가 프랑스에서 살던 얘기를 들려주니까 의욕 없던 아이들도 마음을 열고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앞으로도 저는 이런 활동을 통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돕고 싶어요. 저도 힘들 때 따뜻한 시선, 작은 손길,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됐으니까요.”
100세 시대에서 37세면 아직 절반도 안 왔잖아요. 앞으로 긴 여정을 가야 하는 동년배한테 조언 한마디 부탁드려요.
“우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믿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 시선에도 제가 순간순간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 자신을 믿었기 때문이에요. 그 다음으로는 '진정한 나'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는가?', '무엇을 더 해볼 수 있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뭐지?' 이렇게 자신에게 진실 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해요. 자기 안에 들어있는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기 바랍니다. 방법이 어렵다면 코칭 서적을 읽어보세요.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알 수 있고, 또 다른 나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또 다른 나에게도 기회를 주세요.”
 기회 없는 능력은 쓸모가 없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1000만 배우가 되면 부모님을 찾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아요.
“엄. 마. 아. 빠.
35년 만에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불러봅니다.
부르기만 했는데 가슴 한편이 내려앉으며 숨이 조여옵니다.
나중에 엄마를 만났는데 내가 너무 커버려서 몰라보면 어떡하지...?
시간이 이만큼 지나면 잊혀 질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봐.
나 이제 엄마를 만나도 미워하지 않을 자신 있는데.
도대체 어느 지붕 아래에 살고 있어요?
당신 아들 얼마나 잘 컸는데...
하지만 엄마...
당신 가슴에 큰 짐 지고 사시지 않기를 가장 먼저 기도합니다.
막연하게..
보고 싶습니다.”
 
 
배우 이진선의 가족사진. 오른쪽부터 이진선, 아들 노엘, 아내 박신영 간호사. [사진 이진선]

배우 이진선의 가족사진. 오른쪽부터 이진선, 아들 노엘, 아내 박신영 간호사. [사진 이진선]

 
누구나 ‘환경’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환경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고 실행하느냐이다. 첫 인상이 너무 밝아 상상할 수 없었던 이진선씨의 인생 역정! 그는 자신에게 던져진 불행한 환경을 탓하며 자포자기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믿고 꿋꿋하게 세상의 비바람 속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젠 10살 무렵 운명처럼 다가온 절실한 꿈이었던 ‘배우’의 길을 걷고 있고,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이 생겼다. 배우이자 코치 이진선, 37년의 고단했던 인생과 새로운 꿈에 기립박수와 함께 무한한 응원을 보낸다. 그의 삶이 이 시대의 또 다른 이진선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방향등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배양숙 (사)서울인문포럼 이사장 theore@joongang.co.kr
정리 = 장하니 인턴기자 chang.hany@joongang.co.kr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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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은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