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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비긴 어게인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노래가 당신을 구원할 수 있나요?” 존 카니 감독의 영화 ‘비긴 어게인’의 원래 제목이다. 영화에서는 상처받은 두 주인공이 노래로 가족 문제를 해결하고 일자리도 얻고, 앨범도 내게 된다. 한마디로 노래 덕분에 다시 가슴 뛰는 인생의 꿈을 되찾는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다. 신데렐라 이야기와 같은 진부한 플롯이지만, 영화 내내 흐르는 달콤한 음악들이 압권이다. 특히 애덤 리바인의 ‘로스트 스타즈’ 한 곡만 들어도 줄거리가 주는 식상함은 단번에 사라지고 만다.
 
최근에는 이 영화의 제목을 딴 예능 프로그램이 화제다. 실력파 뮤지션들이, 존 카니 감독이 만든 영화들의 배경인 아일랜드에 가서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길거리 공연을 벌이는 설정이다. 연예인들의 해외 여행담은 이제 예능의 고전이 되었고 심지어 외국에서 식당을 여는 얘기까지 나왔으니, 뮤지션들에게 노래를 시키는 것이 딱히 새로울 것은 없다. ‘비긴 어게인’이 반가운 건 유희열이 자신의 본업인 음악가로 돌아와서다. TV 프로 ‘알쓸신잡’의 잡학박사들 틈에서 헤매는 바보 같고 인간적인 모습도 좋지만 역시 그의 진정한 매력은 음악을 할 때 나온다. 도저히 같은 인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강력한 아우라를 발산하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아무리 실력 있고 경험이 많은 음악가라고 해도 길거리 공연은 절대 쉽지 않은 미션이다. 특히 유명한 이들에게 더욱 그렇다. 평소의 연주환경과 차이가 그만큼 더 크기 때문이다. 가수가 마이크와 스피커만으로 공연하는 것은 아니다. 공연장에서는 소리를 보강하고 수정하기 위해 다양한 최첨단 기술이 동원된다. 음향 엔지니어의 역량이 가수나 작곡가 이상으로 노래의 성패를 좌우하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모든 기술적 장치를 벗어 던지고 맨몸으로 청중 앞에 서야 하는 것이 바로 길거리 공연이다. 용기 없인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길거리 공연이 정말 힘든 것은 자신들을 알아봐 주는 청중이 없어서일 게다. 이 또한 인기가 많은 음악가일수록 더욱 그렇다. 몇 년 전 세계 최정상의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워싱턴DC 지하철역에서 벌였던 버스킹이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세계 어느 도시를 가도 기꺼이 비싼 티켓 값을 내고 연주를 듣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 그였지만 그가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타’를 공짜로 연주한 45분간 발길을 멈춘 사람은 고작 7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중에 한 명은 세 살짜리 꼬마였다니. 이 정도면 가히 대가의 굴욕이라고 해야 할 듯싶다.
 
사람들은 음악보다는 음악가의 명성에 더 큰 관심과 환호를 보낼 때가 많다. 허름한 티셔츠에 야구 모자를 눌러쓴 연주자가 사실은 조슈아 벨이고, 그가 연주한 악기가 40억원을 호가하는 명기였단 것을 알았어도 그냥 지나쳤을까? 베토벤 같은 거장은 습작조차도 명작으로 소개되지만, 이름 없는 작곡가들의 숨은 걸작이 다시 빛을 보는 일은 흔치 않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앞에서 전 세계 관광객들이 장사진을 치는 것이 어디 그림 자체가 주는 감동 때문이랴. 예술에서의 베블런 효과라고나 할까. 예술작품이 소비되고 유통되는 과정에서 작품의 질보다는 작가나 연주가의 스펙이 더 위세를 떨치는 것은 일상적인 현상이다.
 
이런 일이 어디 예술뿐이랴. 음식 맛을 묻는 블라인드 테스트의 결과가 예상을 완전히 뒤집는 경우는 다반사다. 그렇게 보면 사람의 오관(五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정확한 것은 아닌 듯하다. 특히 사회적 편견이나 선입관이 덧씌워지는 경우 더욱 그렇다. 그래서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말도 나오는 것 아닐까. 이에 대해 반발도 적지 않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어렵게 쌓은 스펙이 무의미해지는 것을 반길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러나 고착화된 학벌이나 과열된 스펙경쟁 때문에 참여 기회조차 박탈당한 사람에게 자신의 실력을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필요한 일 아닐까. 오롯이 혼자 서는 길거리 연주처럼.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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