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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생각을 잃어버린 뇌와 스마트 기기

노성원 한양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노성원 한양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지난 주말, 스마트폰을 초기화하느라 몇 시간 사용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사건이었다. 약속 시간이 다가왔고 30분 정도 운전해 가는 장소인데도 막막했고, 그 길을 물어볼 친구의 전화번호도 알 길이 없었다. 이 세상에 혼자 된 느낌, 내가 얼마나 스마트 기기에 의존해 왔는지, 얼마나 무력하고 어리석은지 깨닫는 경험이었다.
 
2016년 한국정보화진흥원 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17.8%가 스마트폰 중독이고, 청소년은 30.6%였다. 스마트폰 중독이란 스마트폰 사용에 몰두하고, 이로 인해 심리적·신체적·사회적으로 부정적인 문제가 나타나며, 자율적 조절이 실패하는 특징을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물론 스마트폰은 몹시 유용하다. 궁금증을 단번에 해결해 준다. 하지만 문제를 고민하고 책을 찾아 읽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해결하는 일은 점점 줄어든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길러지지 않는다. 검색엔진과 저장해 놓은 자료에 의존하니 외울 필요가 없다. 독일의 뇌과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만 프레드 스피처가 그의 저서 『디지털 치매』에서 언급한 대로 우리는 머리를 쓰지 않는 ‘똑똑한 바보’가 돼 가는 게 아닐까.
 
요즘 멀티태스킹 시대라고 한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한다는 뜻이다. 멀티태스킹이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진정한 멀티태스킹이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책 두 권을 동시에 읽거나 두 사람과 한꺼번에 대화를 하기가 쉽지 않듯이 말이다. 우리 뇌는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정보가 들어오면 문을 닫고 정지한다. 너무 많은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학교 수업시간에는 멍 때리고 앉아 있는 것처럼 뇌가 더 이상 정보를 다루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이것이 스트레스가 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스마트폰 사용시간이 많은 사람일수록 불면증·비만·당뇨의 위험성이 높아지는 악순환의 연결고리가 생긴다.
 
우리 뇌는 태어난 후 소리·색·촉각·냄새 등 다양한 자극을 받으며 신경세포들이 연결, 조직화되며 성장한다. 이때 현실세계와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이것은 디지털 세상에서 입력되는 경험과 다르다. 스마트 기기에 일찌감치 노출된 아이들의 두뇌는 완전히 성장하기 어렵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자신의 자녀가 14세 되기 전까지 스마트폰을 금지하는 자녀 교육 방법을 밝혀 최근 화제가 됐다. 미 실리콘 밸리에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자녀들을 가장 보내고 싶어하는 명문 발도르프학교에는 컴퓨터가 없다고 한다. 게다가 여러 연구 결과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교육이 어린이에게 좋다는 근거는 아직 없다.
 
미국과 캐나다의 연구 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이 심리적 괴로움, 우울증 등 정신건강 위험이 더 높고 자살 유혹에 더 빠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타인과 소통하려는 SNS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해 우울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 아이들이 모여 서로 대화하지 않고 각자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모습을 흔히 본다. 소통하고 싶지만 우리는 점점 고립돼 간다. 스마트폰 과다 사용에 따른 우울증·수면장애·불안과 주의력 결핍, 인지기능 장애 등 정신 장애가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는 최근 10년간 우리나라를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발표되고 있다. 학업성적이 절대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영국에서 중학생 13만여 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 금지가 성적 향상으로 이어졌다. 32개국 15세 학생 25만 명에 대한 국제학업성취도 평가 데이터는 자기 방 안에 컴퓨터가 있는 학생의 학교성적이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손으로 일일이 메모하거나 편지 쓰고, 내게 필요한 대부분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주소만 달랑 들고도 행선지를 찾아갔던 시절이 어느새 아련해진 지금이다. 시간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위험한 것을 차단하고 문제를 예방하는 건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 석면·방사선·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처하는 데에 또다시 수십 년이 흘렀다. 부모들에게 “아이들을 모니터 앞에 앉혔어요? 뇌 발달을 해치고 중독성이 생긴다는 것을 몰랐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라는 말을 하기까지는 또 얼마나 걸릴까. 부모들 스스로가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에 영향을 준다. 지금의 디지털 미디어 환경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어른들이다. 아이들의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선 우선 가정 내에서 부모들부터 스마트폰 들여다보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노성원 한양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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