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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일의 시시각각] ‘착한 전기’의 승자 누가 될까

홍승일 수석논설위원

홍승일 수석논설위원

“수돗물 아니라 생수로 빨래한다.”
 
전기를 물 쓰듯 하는 사람 놓고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전기는 고급 에너지다. 증기기관에 이어 제2차 산업혁명 시대를 연 대발명이다. 석유를 때서 전기를 만들 경우 같은 열량을 얻기 위해 전기는 두 배 이상의 생산원가가 들어간다. 전기가 석유보다 훨씬 비싸야 맞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연료(우라늄)가 상대적으로 싼 데다 세금·보조금 등 각종 혜택을 받는 원자력 발전 덕분에 전기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여 회원국 중 가장 낮은 편이다.
 
값싼 전기는 축복이자 저주다. 전기 과소비는 2011년 9월 대규모 순환 정전 블랙아웃의 한 원인이 됐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추구한 이명박 정부 들어 고유가로 유류값은 오르는데, ‘MB 물가지수’는 전기요금을 원가 이하로 억제했다. 한국전력이 수조원의 누적적자에 시달리던 시절이다. 하지만 반도체·자동차·철강 등 국내 주요 제조업체들이 반색했고 외국계 기업과 데이터센터들이 소문난 강경 노조에도 불구하고 값싼 전기를 찾아 한국에 둥지를 틀었다.
 
일반 가정과 서비스업의 과소비도 두드러졌다. 유난히 더운 이번 여름 독일 관광객들이 서울 명동거리를 걷다가 문이 활짝 열어 젖혀진 의류매장에서 냉방공기가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독일은 메르켈 집권 이후 원전을 없애고 신재생 에너지를 늘리는 정책을 써 전기료가 유럽에서 1, 2위를 다툰다. 석유 난로가 전기스토브나 전기장판으로 대체된 것, 웬만한 빌딩의 중앙 전기 시스템 냉난방이 퍼진 것도 2000년대 이후다. 우리나라가 세계 에어컨 1위를 달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가 블랙아웃을 막기 위해 공공시설에 단속반을 보내 온도계를 들이대고, 이번처럼 기업들에 급전(給電) 지시를 남발하는 건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목전에 둔 나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단속보다 전기값을 원가만큼 올려 시장원리를 작동하면 된다. 물론 수십 년 값싼 전기에 길들여진 표심의 눈치를 위정자들은 볼 수밖에 없지만.
 
일단 가격만 따지면 원전은 ‘착한 전기’다. 하지만 이 명칭은 에너지 민주화를 부르짖는 이들에게 연고권이 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그동안 재야에서 암중모색하던 탈원전론자들이 뭉쳤다. “우리는 이제껏 나쁜 전기(원자력·석탄 발전)를 써 왔다”는 성찰과 함께 ‘착한 전기’의 시대를 다짐했다.
 
‘착한 전기’ 자리를 놓고 신재생은 앞으로 원전과 경쟁을 해야 할 운명이다. 값싼 전기에 길들여진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신재생 에너지를 ‘착하다’고만 해 줄지 불확실하다. 전기값 인상은 증세만큼 민심에 대한 폭발력이 강하다. 그렇다면 “이번 정권 5년 동안 전기값 인상은 없다”(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고 할 것이 아니라 신재생으로의 전환으로 인상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솔직히 이해를 구하는 것이 어땠을까. 가격이 아니라 안전과 청정으로 승부하겠다는 설득과 함께.
 
원전 안전성을 맹신하는 사람들에겐 흔히 “현대 사회는 위험 사회이자 그것이 세계화하는 사회”라는 석학 울리히 벡의 경고를 들려 준다. 마찬가지로 “1000만 명이 사는 서울의 모든 지붕을 태양광으로 바꾸면 서울의 전력을 해결할 수 있다”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존 벅의 말도 다소 공허하게 들린다.
 
신재생 진영이 ‘원전 마피아’의 벽을 넘으려면 비정상적으로 낮은 전기요금의 허들부터 넘어야 한다. 급전 지시로 인위적 전기사용 억제에 나선다든지, 전력예비율을 22%에서 20%로 낮추는 것은 탈원전 ‘기울어진 운동장’의 변죽처럼 들릴 수 있다.  
 
홍승일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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