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배명복의 토요 인터뷰] 김정은, ICBM으로 미국 흔들어 한국 포기하게 하려는 전략

탈북 망명 1년 태영호 전 북한 공사가 보는 한반도 위기
약 1년 전만 해도 그는 북한의 모범적인 고참 외교관이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이 난 지난해 6월에는 브렉시트가 ‘공화국’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평양에 보내기도 했다. 실은 일생일대의 결단을 코앞에 둔 때였다. ‘한국에 망명한 최고위 북한 외교관’으로 지난해 8월 가족과 함께 서울에 온 태영호(55) 전 주영 북한 공사 얘기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특임전략자문위원으로 대북정책을 조언하고 있는 그를 지난 8일 연구원 접견실에서 만났다.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는 “핵무력을 완성하고 나면 북한은 핵과 미사일 활동 동결을 조건으로 제재 해제를 요구할 것”이라며 “그동안의 모든 제재 노력을 수포로 돌리는 그 제안엔 절대 응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경록 기자]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는 “핵무력을 완성하고 나면 북한은 핵과 미사일 활동 동결을 조건으로 제재 해제를 요구할 것”이라며 “그동안의 모든 제재 노력을 수포로 돌리는 그 제안엔 절대 응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경록 기자]

이제 한국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됐을 것 같다.
“한국 사회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동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지난 2월 김정남 암살 사건이 나면서 틀어졌다. 신변 보호가 한층 강화되면서 자유로운 활동이 힘들어졌다. 1년이 됐지만 아직 서울 시내 동서남북 구별도 잘 못한다.”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실제로 신변에 위협을 느낀 적은 없나.
“없었다. 그 사건 이후 경호원 숫자도 늘고 경비도 대폭 강화됐다. 그분들이 나 때문에 정말 고생한다. 한국 국민의 혈세를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 송구한 마음이다.”
 
그래도 이곳저곳 다녀봤을 텐데 가장 인상적인 게 뭐였나.
“고속도로 주변 산들에 나무가 많은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휴게소 화장실이 엄청 깨끗한 점에도 감명을 받았다. 영국의 고속도로 화장실도 한국처럼 깨끗하진 않다.”
 
지난 1년 한국 사회를 경험해 보니 어떤 점이 가장 큰 문제란 생각이 들던가.
“글쎄… 북한 사람들에 비해 한국 사람들이 너무 순한 것 같다.”
 
무슨 뜻인가.
“북한 말로 순하다고 하면 ‘말랑말랑하다’는 뜻이 강하다. ‘순진하다’는 뜻도 있다. 한국 사람들과 대화해 보면 종종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게 순해서 어떻게 북한을 상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아무리 북한이 사실상의 왕조 체제라 해도 나이 서른도 안 된 젊은이가 몇 년 만에 그렇게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게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김정은은 얼굴마담이고, 뒤에 숨은 어떤 사람들이 실권을 쥐고 있는 것 아닌가.
“칼로 두부모 자르듯 이거다 저거다 답변하기 힘든 문제다. 김정은 3대 세습 체제는 김일성 가문 출신인 김정은과 현 체제의 유지를 바라는 측근 세력이 합심해 끌고 가는 체제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최종 결정은 김정은이 내린다고 봐야 한다.”
 
김정은을 철부지, 막무가내, 미치광이 등으로 희화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생각보다 스마트하고, 전략적이고, 리더십도 있다는 평가도 있다.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깝다고 보나.
“김정은은 미친놈이 아니다. 미친 척하는 ‘미친놈 전략’을 쓰고 있을 뿐이다. 상당히 영리하다고 봐야 한다.”
 
한국에 와서 봤겠지만 한국 국민은 촛불시위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해 법정에 세웠다.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이지만 북한 체제에서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하면 맞는 말일까.
“틀린 말이다. 지난 수십 년간 북한 내부에서도 한국으로 말하면 민주화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반당·반혁명 종파 사건이 많이 있었다. 주민들 사이에서도 강력한 반발이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들키면 심지어 공개 처형까지 당하는데도 안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이지 않는 불복종이자 항거라고 할 수 있다. 일반 민중과 김정은 체제의 간극은 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언젠가는 고무줄처럼 끊어질 날이 올 것이다. 10년 내 올 걸로 본다.”
 
1조 달러가 아니라 10조 달러를 줘도 김정은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게 귀하의 견해다. 제재나 협상을 통한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뜻인가.
“김정은은 올해 말까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한 모든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해 실전배치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실제 그렇게 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그 방향으로 올인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핵미사일 실전배치까지는 이대로 간다는 뜻인가.
“그렇다. 북한 당국이 군 지휘관이나 엘리트 층에 계속 강조하는 게 뭔가 하면 남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약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자주의식이 강하지만 한국은 사대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무슨 일이 생기면 스스로 돌파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미국에 의지해 문제를 풀려고 한다는 게 남한을 보는 북한의 시각이다. 북한은 ICBM을 완성한 뒤 ‘공포전략’으로 미국을 계속 흔들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시카고… 다 날려 버릴 수 있다고 계속 위협하다 보면 우리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한국 방어를 위해 북한과 싸울 필요가 있나 하는 의문이 내부에서 제기되는 순간이 올 걸로 보고 있다. 6·25 전쟁 때처럼 휴전선이 아니라 대한해협에 제2의 애치슨 라인을 긋는 사태가 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는 데다 미국이라는 버팀목까지 사라지면 한국 사회는 공포심리에 사로잡혀 금방 무너질 것으로 북한은 기대하고 있다. 제2의 베트남 사태를 노리는 것이다.”
 
미국이 바보가 아닌 이상 김정은이 진짜로 미국에 핵무기를 날릴 수 있다고 생각할까.
“김정은은 미국에 미친놈처럼 보이기를 원한다. 저러다 저놈이 진짜로 쏠 수도 있겠다 싶으면 저런 놈하고는 아예 상대를 안 하는 게 낫겠다며 뒤로 빠질 수 있다고 보는 거다.”
 
그렇다면 귀하가 생각하는 해법은 뭔가.
“김정은 정권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교체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김정은 체제와 핵미사일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게 가능할까.
“100% 가능하다.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한국과 미국은 북한 당국을 상대로 협상도 하고 제재도 했지만 다 실패했다. 해결의 주체를 북한 당국으로 보면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열쇠는 북한 민중에 있다. 북한 민중을 각성시켜 그들 스스로 현 체제에 반대해 들고 일어나게 만들어야 한다.”
 
북한에 삐라를 날리고, 대북방송을 하는 등 이미 그런 노력을 해 오지 않았나.
“비정부기구(NGO) 손에 맡겨 쇼나 하는 정도로는 안 된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선 북한 사람들을 겨냥한 맞춤형 문화 콘텐트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지금 북한 사람들이 보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는 한국 사람용이지 북한 주민용이 아니다. 나도 많이 봤지만 보고 남는 것은 ‘잘사는 한국이 부럽다’는 정도지 북한 사회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각성을 촉발하는 계몽적 역할은 거의 못 하고 있다. 우리도 한국처럼 민주화되고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콘텐트를 많이 만들어 북한에 확산시켜야 한다.”
 
[S BOX] 매일 아침 가족이 모여 신문 사설 읽고 영어로 토론
태영호 전 공사는 BBC와 CNN을 보며 국제 뉴스를 체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어 가족과의 ‘잉글리시 브렉퍼스트(English Breakfast)’. 국내에서 발행되는 여러 영자 신문에 실린 사설을 본인과 부인, 두 아들이 하나씩 나눠 읽고 아침을 먹으며 영어로 토론하는 시간이다.
 
큰 아들(27)은 런던대에서 보건경영학을 공부하다 왔고, 수학에 취미가 있는 작은 아들(20)은 영국의 이공계 명문인 임피리얼 대학에 합격한 상태에서 입국했다. 탈북자 특별전형으로 내년 3월 나란히 국내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다.
 
좋아하던 골프를 그만두게 된 사연도 소개했다. 2004년 처음 영국에 부임할 때만 해도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던 때였다. 그 덕에 런던 근교 뉴몰든에 사는 한국인 레슨프로로부터 공짜로 코치를 받기도 했다. 그 사실이 한국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달이 났다. 평양에서 보도를 접한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해명 요구 지시가 떨어진 것. 영국에서 외교활동을 하려면 골프는 필수라는 설명으로 큰 탈 없이 넘어가긴 했지만 더 이상 칠 수는 없었다. 당시 참사관이었던 그는 자신의 상사인 이용호(현 북한 외무상) 대사와 함께 푹 빠질 정도로 한때 골프를 열심히 쳤다. 한국에 와서 그는 골프채를 다시 잡았다.
 
배명복 칼럼니스트 bae.myungbok@joongang.co.kr
AD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