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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몰락속에 민주주의 위협받는 산유국 베네수엘라 잔혹극


채인택 국제전문기자의 글로벌 줌업
 
세계 1위인 3022억 배럴(석유수출국기구(OPEC) 2016년 연말 통계 기준)의 원유매장량을 자랑하는 남미 산유국 베네수엘라가 국가 붕괴 직전 상태다. 지난해 식료품과 식수까지 부족할 정도로 극심한 경제위기가 닥치더니 올해는 정치적 혼란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야당이 지배하는 의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지난달 30일 국민투표로 제헌의회를 구성하고 헌법까지 입맛대로 뜯어고칠 태세다. 지난 5일 첫 회의를 연 제헌의회가 처음 한 일은 국민투표 부정을 조사하겠다는 루이사 오르테가 검찰총장을 해임한 일이다. '진실과 정의 화해 위원회'를 구성해 반정부시위 책임자의 색출을 맡겼다. 노골적 독재의 시작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난달말 제헌의회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격렬한 반정부 시위와 진압 모습.[AP=연합뉴스]

지난달말 제헌의회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격렬한 반정부 시위와 진압 모습.[AP=연합뉴스]

이에 맞서 지난 6일에는 현역 군인까지 가담한 무장그룹이 군기지를 공격한 데 이어 7일에는 이를 지지하는 해킹그룹이 선거관리위원회·해군 등 정부 사이트를 해킹했다. 거리에선 국민이 마두로의 무능과 장기집권 음모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친정부 세력도 맞불시위에 나섰다. 국제사회의 눈도 싸늘하다.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은 지난 5일 마두로 정권이 '민주주의 질서를 붕괴시켰다'며 베네수엘라의 회원 자격을 정지했다. 유럽연합(EU)은 물론 교황청까지 마두로 정권 비난에 나섰다. 지난달 베네수엘라 주요 인사의 해외자산을 동결했던 미국은 추가 제재를 준비 중이다.  
 
현재 베네수엘라 경제는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중증 복합골절' 상태다.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추정치가 -10%다. 2015년엔 -6.2%, 2014년엔 -3.9%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일로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어 올해 인플레율이 무려 720.5%(국제통화기금(IMF) 추정치)에 이를 전망이다. 실업률은 25.3%로 구직은 하늘의 별따기다. 이미 100만 명 정도가 식량과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나 경제난민이 됐다는 게 BBC방송의 보도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주목할 점이 빈곤선 이하 인구 비율이 지난해 IMF 추산으로 81.77%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석유가 펑펑 쏟아져도 대부분의 국민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힘들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빈곤 추방'은 마두로 정권의 '창업자'인 전임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간판 치적이었다. 빈곤율은 차베스 취임 첫해인 1999년 50%에서 2011년 27%까지 떨어져 전 세계의 부러움을 샀다. 당시 차베스는 석유산업을 국영화하고 거기서 얻은 수입으로 무상교육·무상의료를 제공하고 기초 식료품과 생필품을 무상이나 원가 이하의 가격으로 공급했다. 보건위생 등 '사회적 투자'를 늘려 가난한 국민에게 깨끗한 상수도와 화장실을 보급했다. 차베스가 벌인 일련의 정책과 이념은 스페인어로 ‘차비스모’, 즉 차베스주의로 불린다. 국내적으로는 경제적 평등을, 국제적으론 반미연대 추구가 핵심이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지난달말 카라카스에서 제헌의회 선거 촉구 캠페인 도중 지지자와 포옹하는 장면.[AFP=연합뉴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지난달말 카라카스에서 제헌의회 선거 촉구 캠페인 도중 지지자와 포옹하는 장면.[AFP=연합뉴스]

 
차비스모는 ‘차비스타(차베스 지지자들)’에 의해 ‘21세기 사회주의의 모범사례’로도 불리며 주목 받았다. 21세기 사회주의는 멕시코의 독일 출신 사회학자 하인츠 디트리히가 제시한 것이다. 그는 20세기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모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는 물질적 성장은 이뤘지만 빈곤과 기아, 경제적 착취와 차별, 억압과 제국주의, 환경파괴와 자원고갈 등 문제를 양산했다고 비판했다. 동시에 소련 주도의 사회주의는 엘리트주의와 전체주의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주민투표·국민투표 등 대중이 직접 참여해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새로운 체제를 대안으로 삼자고 제안했다. 이는 한때 사회주의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고무된 차베스는 제국주의 국가보다 자신의 차비시모 국가가 우월하다고 선전하기 위해 석유자원을 펑펑 사용했다. 미국 뉴욕의 빈민에게 난방연료를 지원했으며 영국 런던에도 같은 제안을 했다.  
 
문제는 '지속가능성'이었다. 재원을 대부분 석유산업에 의존했던 것이 결정적 화근이었다. 베네수엘라는 GDP의 40%가 석유에서 나오는데 차베스 사망 이듬해인 2014년 이후 저유가 시대가 계속되자 차베스주의는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무시한 식품·생필품의 선심제공은 시장질서를 교란시키고 암시장을 키워 심각한 물자부족 사태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과거 소련에서도 나타났던 '부족 현상'의 21세기판이었다. 더욱 큰 문제는 차베스는 물론 마두로도 오일달러를 분배하기에만 바빴을 뿐 미래를 위해 투자해 '오랫동안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를 키울 지혜가 애당초 없었다는 점이다. 울산대 이순주 교수는 "마두로는 차비스모의 계승자지만 이를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 국정 능력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국가가 제공하는 '공짜'에 익숙해진 국민의 기업가 정신과 근로의욕이 갈수록 저하된 측면도 있다.   
 
지난해 전 세계는 차비스모의 비효율성에 의한 지독한 인플레이션과 생필품 부족으로 베네수엘라 국민이 겪는 고통을 지켜봤다. 올해는 차비스모의 비민주성과 독재성을 목격하고 있다. '남미의 베니스'로 불리던 아름다운 베네수엘라가 차비스모 실험이 뒤뚱거리면서 진창에 빠져들고 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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