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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사채업자 만나 돈 빌려보니…“왜 사채를 쓰냐고요? 차마 죽지 못해서요”

“가족들이랑 직장 동료, 친구까지 상시 연락 가능한 10명 추려서 전화번호 적어놓고 가세요.”
 
지난 1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카페. 사채업자는 돈을 입금해주기 위한 마지막 단계라며 가족과 지인들의 전화번호를 요구했다. 자신을 박 부장이라 칭한 이 사채업자는 “돈은 내가 빌렸는데 왜 가족들의 전화번호가 필요하냐”고 묻자 “돈만 제때 갚으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며 다짜고짜 휴대전화를 빼앗으려 했다.  
 
계속된 저항에 그는 “아무런 신용도 없이 돈을 빌려주는데 이 정도 정보는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버럭 화를 냈다. 대출금 상환이 늦어질 경우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협박하고 대납을 요구하는 등 불법 추심을 할 속셈이었다. ‘사채의 늪’에 빠졌다고 호소하는 피해자 중에는 가족과 지인들에 대한 추심 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이른바 ‘돌려막기’를 하다 상황이 악화한 경우가 많다.
 
사채업자 박 부장이 제시한 3가지 조건
번화가에 뿌려진 불법 사금융 홍보 명함. 누구나 100% 대출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번화가에 뿌려진 불법 사금융 홍보 명함. 누구나 100% 대출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기자가 박 부장을 처음 만난 건 서울 지하철 장한평역 앞이었다. 불법 사채업자들의 영업행태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종로 번화가에 뿌려진 명함 속 ‘일수·월변 100% 가능’이라는 문구를 보고 연락하자 박 부장은 대출 가능 여부에 대한 대답 없이 “장한평역 8번 출구로 와서 다시 연락해달라”고만 했다.  
 
박 부장은 지하철역 인근의 9인승 회색 봉고차 안에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험상궂은 사채업자가 아닌 평범한 40대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옷차림 또한 검은색 면바지에 흰색 반소매셔츠를 입고 있어 불법 채권추심을 하러 다니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을 정도였다. 봉고차 안에는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보이는 남성이 한명 더 앉아 있었다. 대출과 상환 과정에서 모든 상담을 도와주는 ‘매니저’라고 했다.  
 
‘300만원의 급전이 필요하다’는 요구에 박 부장이 요구한 건 3가지였다.  
 
“매일 자정이 되기 전 정해진 돈을 입금할 것, 일과시간(오전 9시~오후 6시) 이외엔 항상 전화를 받을 것, 집주소와 직장 주소를 알려줄 것.”
 
300만원 대출에 선이자만 60만원 
불법 사채업자들의 대출·상환 시스템은 얼마를 빌리는지, 일수인지 월변인지, 돈을 쓰는 용도가 무엇인지에 따라 제각각이다. 박부장의 경우엔 300만원을 빌리면 선이자와 수수료로 60만원을 책정했다. 대출은 매일매일 돈을 갚는 ‘일수’ 방식이었다. 결국 매일 3만원씩, 135일에 걸쳐 돈을 갚아야 모든 상환이 끝나는 구조였다. 직장인이라 일수는 부담스럽다는 말에 박 부장은 “처음 돈을 빌리는 사람에게 월변(한 달 단위로 돈을 상환하는 시스템)을 해주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불법 대부 중개업체의 홍보 문구

 불법 대부 중개업체의 홍보 문구

 
결과적으로 300만원을 빌려도 실제 손에 들어오는 돈은 240만원에 불과한데, 갚아야 하는 총 금액은 405만원에 달했다. 연 이자율로 따지면 법정 최고금리(27.9%)의 10배가 넘는 311.3%의 ‘지옥 금리’였다.
 
불법 사채를 이용자들은 낮게는 100~200%, 많게는 1000% 이상의 폭탄 금리로 돈을 빌린다. 현 제도하에서 27.9%를 초과하는 금리는 불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당장의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피해를 감수한다. 다중채무자이거나 이미 연체기록이 있어 은행과 저축은행은 물론 제도권 금융의 마지노선인 대부업체에서조차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상태라서다.  
 
실제 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불법 사금융 이용자들의 평균 대출금리는 110.88%에 달했다. 이용 목적별로는 사업자금이 48.8%, 생활자금이 36.1%, 타 대출금 상환이 10.2%를 차지했다. 불법 사금융 이용자 대부분이 절박한 이유로 ‘급전’이 필요하거나 다른 대출금을 상환하기 위한 ‘돌려막기’ 목적으로 어쩔 수 없이 사채의 늪에 빠진다는 의미다.
 
"돈이 없으면 몸이라도 팔아라" 
서울 강북구에서 쌀국수집을 운영하는 최모(37·여)씨 또한 창업 1년만에 임대료 상승과 매출 부진 등의 이유로 불법 사채에 발을 담궜다. 이미 은행과 저축은행, 캐피탈을 통해 빌린 돈만 2400여만원. 더 이상 제도권에선 대출이 불가능할 정도로 재정이 악화한 상태였다.
 
지난 2월 최씨가 사채업자에게 처음 빌린 돈은 200만원에 불과했다. 선이자와 수수료를 떼고 150만원을 받은 뒤 매주 15만원씩 20주간 총 300만원을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가게 수입이 일정치 않은 탓에 계속해서 상환이 미뤄졌고, 연체금을 원금으로 전환해 다시 이자가 붙는 ‘꺾기’가 적용됐다.
 
최씨가 처음 받은 돈은 150만원이었는데, 불과 4개월만에 대출원금이 980만원으로 불었다. 최씨는 “사채를 끌어다 쓴다고 해도 돈만 잘 갚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7~8주차부터 돈이 밀리면서 불어나는 원금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 사채업자가 ‘돈이 없으면 몸이라도 팔아야 한다’며 유흥업소 출근을 강요했다”고 말했다.
SBS 드라마 `쩐의 전쟁`의 한 장면. 사채업자가 주인공 금나라의 아버지에게 `신체포기각서`를 쓰게하는 장면.

SBS 드라마 `쩐의 전쟁`의 한 장면. 사채업자가 주인공 금나라의 아버지에게 `신체포기각서`를 쓰게하는 장면.

 
결국 최씨는 시골에 사는 부모님께 손을 빌렸다. 지난 8월 초 김씨는 부모님이 일구던 논 일부를 팔아 ‘사채의 굴레’에서 벗어났지만 남은 건 상처뿐이었다. 최씨는 “어머니께서 고작 200만원인데 왜 사채업까지 손을 댔냐고 물어보시는데 할 말이 없었다”며 “돈을 빌려 주는 곳은 불법 사채업자 뿐이었고 차마 죽지 못해 어떻게든 살아보려던 것이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사채의 늪'에 빠진 43만 명…1인당 5608만원
불법 사채업에 발을 담그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법정 최고금리를 훌쩍 넘는 폭탄금리, 그리고 연체할 경우 불법 추심과 갖은 압박이 가해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채업자를 찾는 것은 돈을 빌릴 곳이 없어서다.  
 
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2015년 33만 명 수준이던 불법 사금융 이용자 숫자는 2016년 43만 명으로 10만 명이 늘었다. 이용 총액 또한 2015년 10조5897억원에서 2016년 24조1144억원으로 2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1인당 이용총액으로 환산하면 2015년 3209만원에서 1년만에 5608만원으로 늘어난 셈이다.  
 
불법 사금융에 발을 디딘 사람들 대부분은 대부업체 심사에서 탈락한 저신용자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2015년 9월 127만 명 수준이던 대부업 이용자수는 지난해 말 120만 명으로 5% 가량 줄었다. 특히 저신용자들의 피해가 컸다. 2015년 9월 7~10등급의 저신용자 중 대부업체 이용자 수는 94만 명이었지만 최고금리 인하의 여파로 지난해 말 84만 명으로 9.7% 감소했다.  
 
이재선 대부금융협회 사무국장은 “2016년 3월 최고금리가 27.9%까지 내려가면서 대부업체의 대출 심사가 깐깐해졌고, 결국 심사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렸다. 제도권 대출의 마지노선인 대부업체에서도 돈을 빌리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되면서 담보가 없거나 다중채무자인 경우엔 그 어디를 가도 돈을 빌릴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최고금리 인하→대출 심사 강화→불법 사금융 이용'의 악순환
정부가 법정 최고금리를 인하할 때마다 내세우는 명분은 ‘서민들의 이자 부담 경감’이다. 지난달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법정 최고금리 인하를 언급하며 강조한 내용 또한 “고금리 대출로 과도한 부담을 지는 저신용·취약계층의 금융이용 여건을 개선”이었다.
 
일단 금융위원회는 대부업법 시행령을 개정해 내년 1월부터 대부업자와 여신금융기관에 적용되는 최고금리를 24%로 내리겠다는 계획이다. 이자제한법 시행령까지 개정된다면 개인간 거래시에도 법정 최고금리는 현 25%에서 24%로 내려간다.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서 법정 최고금리 수준으로 돈을 빌려야 하는 중·저신용자들의 경우 즉각 이자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또 금융위가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불법단속을 강화한다고 밝힌만큼 '이자 폭탄'으로 허덕이는 대출자들의 고통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실제 현재 27.9%인 법정 최고금리가 이자제한법상 최고금리인 25% 수준으로 낮아질 경우 대부업체 신규대출자 90만 명의 이자부담은 총 1481억원 줄어든다. 정부가 주장하는 ‘이자 부담 경감’에 해당하는 액수는 1인당 16만4500원 정도다.
 
최고금리 인하 뒤 저신용 고객 줄어든 대부업체.  [자료제공=한국대부금융협회]

최고금리 인하 뒤 저신용 고객 줄어든 대부업체. [자료제공=한국대부금융협회]

 
문제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에 따른 이자 부담 경감과는 별개로 ‘금리 인하→대출 심사 강화→서민들의 대출 심사 탈락→불법 사금융 이용’의 악순환이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대부금융협회 조사 결과 최고금리가 25% 수준으로 인하할 경우 약 34만 명의 이용자들이 대부업체 대출심사에서 탈락할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금융협회는 대출심사 탈락자 대부분이 신용등급 7~10등급의 비정규직 근로자와 자영업자가 그 대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금융위원회의 실태조사 결과 2016년 법정 최고금리가 34.9%에서 27.9%로 내려갈 당시 대부업 이용자는 268만 명에서 250만 명으로 약 18만 명 가량 줄었다. 대부업체가 제도권 금융의 마지노선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들 18만 명이 돈을 빌리기 위해선 불법 사금융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의 풍선효과 생각해야"
10년 간 다섯차례 인하된 법정 최고금리.  [자료제공=금융감독원]

10년 간 다섯차례 인하된 법정 최고금리. [자료제공=금융감독원]

최근 10년 사이 법정 최고금리는 49%에서 27.9%까지 떨어졌다. 금융위 실태조사 결과 2016년 34.9%에서 27.9%로 내려갈 당시 대부업 이용자는 268만 명에서 250만 명으로 약 18만 명이 줄었다. 최고금리가 현 27.9%에서 25%까지만 내려갈 경우 발생하는 '대부업 대출 탈락자'는 약 34만 명으로 추정된다. 법정 최고금리가 내려갈수록 대부업 대출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구조다.
 
법정 최고금리를 인하하기 전에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금융 소외계층’을 구제하기 위한 방안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인해 절벽에서 떨어지게 될 금융소외계층이 생기는 ‘풍선효과’를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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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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