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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 보는 역사 : 4-18 접어 아름다운 꿈

삶으로 보는 역사 : 4장 새 노래를 부르다
 
<18> 접어 아름다운 꿈

로마의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는
내란을 끝내면서 제정을 선포하고
자신을 '아우구스투스'라 했다.
 
'신성한 이'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는
그의 뒤를 잇는 로마 황제들이
성처럼 붙여 쓰면서 황제의 동의어가 됐다.
 
그는 자신이 통치한 이 시대를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 불렀는데
로마에 의한 평화가 왔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평화는
로마가 정복한 피지배자의 희생에 의한
지배자 로마인을 위한 로마인만의 평화였다.

일본 제국주의가 '대동아 공영'이라며
아시아의 공동번영을 내걸고서는
우리 희생으로 일본만의 번영을 만든 것과 같다.
 
그나마 54년뒤 '네로'가 쫓겨나고
무력을 가진 자가 황제가 되면서
황제가 수시로 바뀌는 혼돈이 일고
로마인만의 '팍스 로마나'도 물 건너갔다.
 
'팍스 로마나'를 말한 아우구스투스나
'조선의 태평성대'를 말한 태종이나
자기 뜻대로 역사가 이루어질 줄 알았고
그게 평화라고 착각했다.
 
힘으로 만들려는 평화와
제 뜻으로 이끌려는 역사는
일었다 사라지는 태풍과 같다.
 
태종이나 아우구스투스가
이루었다고 생각한 그들의 꿈은
덧없는 역사의 한줌 허영이 되었다.
 
인간의 허영의 허망함을 볼 때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공작새 비유가
마음의 끈을 가다듬게 하곤 한다.
 
공작은 앞에서 보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보면 그 아름다움에 감춰진
커다란 현실적 곤궁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허영이 그와 같다고 느낍니다.

 

공작의 펼친 날개의 앞은 화려하나 뒤에 곤궁함이 숨겨져 있다. 


태종이 꾸었던
적자 혈통의 강력한 왕실의 꿈뿐만 아니라
패권자 중심의 패도정치 꿈도 무너졌다.
 
뒤를 이은 세종은 패도정치를 버리고
민본주의 왕도정치에 이상을 두고
백성이 하늘이라 말했다.
 
패권자의 칼날은
적만 베는 게 아니라 자신도 베는데
만약 세종마저 태종처럼 했다면
조선은 그때 멸망했을 것이다.
 
중국의 '진시황', 유럽의 '아틸라'와 '히틀러'
러시아의 '소비에트' 등 동서고금 역사에서
철권정치의 수명은 70년을 가지 못했다.
 
오늘날 중국과 북한의 공산당이
70년을 철권정치로 이어오는데
그들의 앞날도 역사는 가리켜주고 있다.
 
태종의 패도정치는 손자인 세조에 의해
부활한 듯 하다 공신들에게 휘둘리었고
연산군이 칼날을 세우다 다시 쓰러졌다.
 
그래서 태종이 조선의 기틀을 만들었다는
역사가들의 주장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
패도정치의 꿈은 무너져야 할 꿈이었다.
 
태종이 만든 조선의 족쇄가 하나 있으니
나라의 발전을 가로 막은 '적서차별'이다.
 
고려에는 적서의 구별이 없었는데
왕위 계승권을 뺏기 위해 일으켰던
자신의 반란을 정당화하기 위해
억지로 적서의 차별을 두기 시작했다.
 
자신의 악을 포장하려고
일을 하지 못하는 계층을 새로 만들어
조선 발전에 가장 큰 해악의 덫이 되게 했다.
 
욕망을 멋대로 휘두르는 행위는 놔두고
욕망으로 얻어진 결과는 차별하는
뿌리는 놔두고 열매를 탓하는
이런 악법이 세상에 어디 또 있겠는가.
 
태종이 유난히 성욕이 큰 인물이었는지
그의 자식을 낳은 후궁만도 19명이고
꿈도 가질 수 없는 자식이 29명이나 됐다.
 
이런 태종이 없었다면 세종도 없었는데
태종 이방원의 광기어린 악에서
세종의 빛나는 선이 나온 게 참으로 신비롭다.
 
그래서 가톨릭에서 배운 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인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이 말이 더욱 좋아진다.
 
하느님은 인간의 악(惡)도 선용(善用)하신다.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가 부를 쌓을 때
그의 통찰력과 결단력도 주요했지만
노동력 착취도 부를 쌓는데 한 몫을 했다. 
 
부를 지니고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The man who dies rich, dies disgraced.

 
재산이 오늘날 빌 게이츠보다 더 많았던
당대 최고의 부를 쌓은 그의 말이다.
 
그가 부자로 죽었다면 그의 말대로
공작의 펼쳐진 날개처럼 화려했던
그의 성취에 가려진 빈곤한 욕망이
공작의 뒷모습처럼 드러났을 것이다.
 
2,500여개의 공공도서관과
피츠버그의 카네기멜론대학교
뉴욕의 카네기홀과 박물관, 미슬관 등
죽기 전 18년동안 부의 90%를 기부했다.
 
펼친 날개는 화려하지만
공작은 날개를 펼치고는
오래 가지 못한다.
 
화려하게 날개를 펼쳐 자랑하는 꿈을 접고
모았던 부를 나누고 떠나면서
날렵한 긴 꼬리의 고귀한 공작 자태를 남겼다.
 
그가 보여준 날개 접은 뒷자태는
뒤를 이어 부를 쌓은 많은 이들의
삶의 스승이 되어 오늘까지 따르고 있다.
 

공작의 날개는 화려하지만 펼치고는 오래 못간다.

꿈을 이뤘다 생각한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성취를 핏줄이 이어가기 위해
딸의 후손에게 황제를 물려주려 했다.
 
모든 걸 제 뜻대로 이뤘다 해도
핏줄만은 뜻대로 되지 않는 걸
역사는 수없이 반복해 보여주고 있다.
 
아우구스투스도 핏줄 잇기에 실패하자
아내의 전남편의 아들 티베리우스를
양자로 삼아 황제자리를 물려줬다.
 
핏줄을 대신해 양자로 잇게 한 전통은
훗날 로마 천년 역사 중 가장 찬란했고
평화로웠던 '5현제 시대'를 낳았다.
 
태종은 적장자 전통을 만들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3자에게 선위하고
이은 이가 평화의 시대를 만들었으니
태종이 이룬 것 중 가장 잘한 게 됐다.
 
자신의 꿈을 실현한 이들은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게 아니라
역사를 태풍처럼 휘젓고 떠날 뿐이다.
 
자신의 꿈만 바라보고
자신의 꿈 뒤에서 흘리는 피와 땀을
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태종은 제 뜻대로만 살다가
삶의 끝에 자신의 꿈이 아닌
잇는 이가 꿈을 펼치게 하면서
역사가들의 호평을 만들었다.
 
남을 부유하게 만들지 않고는
아무도 부유해질 수 없다.
No man becomes rich
unless he enriches others.

 
카네기는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하면서
그의 꿈과 삶은 더 풍요로워졌다.
 
자기가 펼칠 꿈의 나래를 접으며
남들이 그들의 꿈의 나래를 펼치도록
도와주는 이들이 역사를 아름답게 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아니라
남은 이들이 자신들의 삶을
아름답게 치장하며 남긴 기록이기에.
 
아우구스투스의 '팍스 로마나' 시대에
피정복지 유대에서 태어난 예수는
'팍스 로마나'와 다른 평화를 말했다.
 
약자의 희생으로  
강자가 만드는 평화가 아니라
모두가 자기 걸 먼저 내놓는 평화였다.
 
세종은 왕의 권력을 먼저 내려놓고
역사의 길을 함께 닦으며 조선을 넘어
오늘에까지 그 길이 이어지게 했다.
 
그 길의 현장으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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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