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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에 영감 준 M.C.에셔의 재미있고 의미심장한 시각적 철학이야기

[CRITICISM] ‘그림의 마술사’ 에셔의 불가능한 세계
 
에셔는 수학적 논리를 바탕으로 한 패턴, 인간의 시지각을 주제로 평생 작품활동을 했다. ‘만남’(1944)

에셔는 수학적 논리를 바탕으로 한 패턴, 인간의 시지각을 주제로 평생 작품활동을 했다. ‘만남’(1944)

초등학교 방학 과제물 『탐구생활』에 신기한 그림이 있었다. 개미가 줄지어 ‘뫼비우스의 띠’를 기어가며 돌고 도는 그림이었다. 그때는 그저 과학삽화인 줄 알았다. 인터넷 초기에 ‘천사가 먼저 보이나요, 악마가 먼저 보이나요’라는 질문과 함께 떠돌아 다니던 그림도 있었다. 하얀 천사와 검은 박쥐 악마가 퍼즐처럼 빈틈없이 맞물려 패턴으로 연속되는 기발한 그림이었다. 그때도 심리학용 이미지인 줄로만 알았고, 미술작품인지도, 누구의 작품인지도 몰랐다.
 
몇 년 전 민음사에서 나온 호르헤 보르헤스 단편집 『픽션들』 표지에는 종이에서 튀어나와 서로를 그리고 있는 두 개의 손 그림이 실렸다. 이번엔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M. C. 에셔’라고 불리는 네덜란드의 판화가 겸 그래픽 디자이너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1898~1972)의 석판화 ‘그리는 손’(1948)이었다. 앞서의 두 그림도 그의 작품이었다. 마침 지금 이 판화들 모두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10월 15일까지 하는 ‘그림의 마술사 에셔 특별전’에 전시돼 있다."
 
M.C. 에셔 '그리는 손 II Drawing Hands II' 1948, 석판화

M.C. 에셔 '그리는 손 II Drawing Hands II' 1948, 석판화

그 사이 에셔를 알게 된 건,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가 마왕으로 나온 판타지 영화 ‘라비린스’(1986)에서 기묘하기 짝이 없는 계단 미로를 보고, 또 외국 TV 광고에서 똑같은 계단을 보고, 그 기원이 너무나 궁금해져 자료를 찾으면서였다. 그 기원은 에셔의 석판화 ‘상대성’(1953)이었다.
 
 
이 그림 상단에서 계단을 걸어가는 두 사람을 보자. 둘은 같은 계단을 이용 중이고, 아주 가까이 있고, 둘 다 그림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런데 한 명은 계단을 내려가고, 다른 한 명은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그들이 서로 다른 중력을 받으면서 계단의 다른 면으로 걷고 있기 때문이다. 같이 있지만 같은 세계에 있지 않은 셈이다.
 
 
이 그림에는 중력이 서로 직각을 이루며 작용하는 세 개의 중력 세계가 절묘하게 겹쳐져 연결돼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림 아래쪽이 바닥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그림 오른쪽이, 또 어떤 이에게는 그림 왼쪽이 바닥이다. 그리고 각각의 중력 세계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이걸 보다 보면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누가 자기가 서 있는 바닥만이 진짜 바닥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과연 누가 자기가 근거한 논리만이 진짜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M.C. 에셔 '상대성 Relativity' 1953, 석판화

M.C. 에셔 '상대성 Relativity' 1953, 석판화

보르헤스 『픽션들』(1944) 표지에 등장한 ‘그리는 손’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어느 손이 진짜라고, 어느 손이 먼저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철학적 소설가 보르헤스의 세계 자체가 에셔의 판화와 참 잘 어울린다.
 
 
예를 들어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을 보자. 그 단편에서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이며, 도서관을 가득 채운 책들에는 알파벳을 포함한 25가지 기호가 완전히 무작위로 조합돼 있다. 가능한 모든 조합의 책이 다 있기 때문에, 뒤죽박죽 문자 조합으로만 된 책도 있겠지만, 도서관의 기원과 진리가 적힌 책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도서관 우주 속 인간들은 그런 책들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가능한 모든 조합이 있으니, 어떤 내용의 책이 있으면 정확히 반대되는 내용의 책도 도서관 어딘가에 있다. 철저한 상대성의 세계이다. 그 중에 어느 것이 진리의 책인지 대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에셔의 ‘그리는 손’은 보르헤스의 다른 단편 ‘원형의 폐허들’도 연상시킨다. ‘원형의…’에서 불의 사제는 정교한 꿈을 꾸어 제자를 창조한다. 마치 디지털 가상세계 속에 인공지능 캐릭터를 창조하듯 말이다. 사제는 사랑하는 제자가 스스로 진짜 인간이 아닌 환영임을 깨닫고 절망할까 봐 걱정한다. 하지만 막판에는 자기 자신도 누군가의 꿈에서 창조된 존재임을 알게 된다. 
 
M.C. 에셔 '올라가기와 내려가기 II Ascending and descending II' 1960, 석판화

M.C. 에셔 '올라가기와 내려가기 II Ascending and descending II' 1960, 석판화

이러한 보르헤스와 에셔로부터 동시에 영감을 받은 영화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유명한 SF ‘인셉션’(2010)이다. 이 영화에는 에셔의 대표작 ‘올라가기와 내려가기’(1960)가 직접적으로 인용돼 있다. 이 석판화에서 한 줄의 수도사들은 계단을 올라가고 다른 한 줄은 내려간다… 아니, 그런 것 같지만 사실 아니다! 그들은 일정한 방향으로 가는 것 같지만 끝없이 원점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실의 3차원 공간에서는 불가능한 모습이다. 3차원의 세계를 2차원 지면에 표현하면서 사물의 비례를 정교하게 비틀어 착시를 일으키는 에셔의 솜씨 덕분에 이 불가능한 세계가 얼핏 현실적으로 보이게 되었다.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에셔의 또 다른 대표작이 ‘폭포’(1961)다.
 
 
에셔는 이 작품들이 영국 수학자 로저 펜로즈가 고안한 ‘펜로즈 삼각형(Penrose Triangle)’에 바탕을 두었다고 밝혔다. 재미있는 것은 펜로즈 삼각형 또한 에셔의 작품에 바탕을 두었다는 것이다. 펜로즈는 암스테르담에 여행 와서 에셔의 전시를 보고 2차원과 3차원이 뒤섞인, 그리고 시점이 얽혀 있는 에셔의 판화에 큰 영감을 받았다. 그 후 3차원 공간에서 불가능하지만 2차원 평면에서는 가능해 보이는 꼬인 삼각형을 고안해서 학술지에 발표하고 에셔에게도 보냈다. 그 뒤 에셔는 이 작품들을 탄생시킨 것이었다.
 
M.C. 에셔, 폭포 Waterfall, 1961, 석판화

M.C. 에셔, 폭포 Waterfall, 1961, 석판화

이처럼 에셔에게 처음 열광한 이들은 동료 예술가나 미술평론가가 아니라 수학자와 과학자들이었다. 인지과학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에도 에셔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명저 『괴델, 에셔, 바흐』(1979)에서 에셔의 판화를 통해, 또 바로크 음악가 바흐의 ‘무한히 상승하는 카논(일종의 돌림노래)’을 통해, 그리고 20세기 수학자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통해서 ‘이상한 고리(strange loop)’라는 개념을 설명했다.
 
 
‘이상한 고리’는 마치 에셔의 판화 ‘올라가기와 내려가기,’ ‘폭포’처럼 어느 한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는 것 같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부분 부분 볼 때는 이상하지 않지만 전체로 볼 때는 이상한 모순인 것을 가리킨다.
 
 
호프스태터는 인간의 뇌에서 자아, 혹은 ‘나’라는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에 인식의 ‘이상한 고리’가 작용한다고 보았고, 같은 원리로 인공지능이 탄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무척 어려운 내용이지만 적어도 에셔의 그림 덕분에 ‘이상한 고리’ 개념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에셔는 자기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열린 감각으로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퍼즐을 바라보고 내가 본 것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수학이라는 분야를 접하게 됐다. 과학에 대한 엄밀한 지식은 없지만, 종종 수학자들이 동료 미술가들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아마도 에셔의 세계와 공간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과 분석, 거기에서 비롯된 지적 상상력은 그가 본래 건축을 공부했고 오랜 이탈리아 체류에서 그곳의 건축과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에 많은 부분 기인할 것이다.
 
 
여행은 에셔에게 언제나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불가능하고 모순된 공간의 건축물 판화 연작이 다양하고 기묘한 이탈리아 건축물들에서 영향을 받았다면, 또 다른 중요한 연작 테셀레이션(tessellation)은 에스파냐의 알함브라 궁전에서 영향을 받았다. 테셀레이션이란 한 가지나 몇 가지의 도형을 보도블록처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빈틈없이 맞물리게 해서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것을 말한다. 
M.C. 에셔, '천사와 악마 Angels and Demons', 1941

M.C. 에셔, '천사와 악마 Angels and Demons', 1941

 
에셔의 작품이 단순히 장식적인 테셀레이션과 다른 것은, 사람들의 인지적 성향을 꿰뚫어서 허를 찌르는 유희를 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두 가지 도형으로 이루어진 테셀레이션을 볼 때 그들이 동등한 면적을 차지해도 한 도형은 주된 무늬고 나머지 한 도형은 배경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의 테셀레이션 연작 중 하나가 ‘천사가 보이냐, 악마로 보이냐’라는 질문과 함께 심리테스트로 둔갑해 인터넷에서 떠돈 것도 그 때문이다. 에셔는 인간의 그런 인지와 심리를 이용해 주된 패턴(으로 사람들이 생각한 것)과 배경(으로 사람들이 생각한 것)이 서서히 서로 역전되어 양 끝에서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세계가 펼쳐지는 ‘변신’ 연작도 제작했다.
 M.C. 에셔 <낮과 밤 Day and Night> 1938, 목판화

M.C. 에셔 <낮과 밤 Day and Night> 1938, 목판화

 
그러나 에셔의 동료 예술가들 중에는 그의 이런 작품이 지나치게 건조해서 (사람들이 종종 오해하는 것처럼) 과학·심리학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보이고, 또는 그저 장난으로 보인다고 비난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에 대해 에셔는 “나는 점점 고독함을 느낀다. 수학자들은 내게 친절하고 흥미를 보이지만 그들 눈에 나는 비전문가일 뿐이다. 내 동료 예술가들은 내 작품을 거슬려 하고 내가 열등감을 느끼도록 한다”고 토로했다.
 
 
확실히 에셔의 작품은 여전히 미술사에서는 많이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예술이 얄팍하거나 가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특정 사조나 범주에 넣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의 예술의 다학제적, 융합적 특성과 철학적 암시는 지금도 과학자와 철학자, 예술가에 걸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그의 ‘만남’(1944)을 보자. 그의 작품세계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 즉 테셀레이션, 변신, 그리고 2차원과 3차원 공간의 불가능한 뒤섞임이 나타난다. 에셔 자신이 각각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라고 한 흰색과 검은색의 인물은 서로 분리되어 있다가 만나서 악수한다. 하지만 그들이 나온 근원인 배경의 테셀레이션을 보면 본래 그들은 붙어 있었다. 같은 비중으로 누가 우선인지 먼저인지 알 수 없게 빈틈없이 맞물려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이보다 재미있으면서 이보다 의미심장한 시각적 철학 이야기가 또 있을까.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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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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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