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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뱅처럼 성공하려면? 실패에서 배우고 몸놀림은 가볍게…

디지털 경제 시대의 ‘애자일(기민한)’ 경영 방정식
카카오뱅크 앱으로 통장 잔고 등 본인계좌를 확인하는 모습. [연합뉴스]

카카오뱅크 앱으로 통장 잔고 등 본인계좌를 확인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문을 연 국내 두 번째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카뱅)’가 출범 8일 만에 사용자 230만 명을 넘어서는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시중 은행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지금까지 총 16개 애플리케이션(앱)을 출시한 신한은행은 올 하반기 중에 S뱅크·써니뱅크 등 기존 앱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디지털 채널 통합팀’을 구성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카카오뱅크의 간결한 디자인, 직관적인 사용방법(UX)에 임직원 상당수가 놀랐다”고 말했다. 카카오뱅크는 첫 화면에서 패턴만 입력하거나 지문 인증을 하면 바로 이용자의 보유계좌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반면 기존 은행 앱에선 13자리 공인인증서 암호를 입력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야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앱을 뜯어고치는 것은 근본적인 대응책이 아니다. 일단 아이콘 위치 하나를 바꾸는 데도 100줄 넘는 코드를 다시 짜야 한다. 뒤늦게 ‘원 솔루션’을 내세우며 수십 개의 앱을 일제히 통합하려는 시도 역시 무리가 있다. 기존 앱을 수리·보수하는 과정이 비효율적인 데다 중복되고 서로 충돌하는 등의 문제가 속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P2P 대출업체 8퍼센트의 이호성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개발자 관점에서 본다면 기존 코드의 10~20% 수정할 때나 의미가 있다”며 “송금·계좌관리 등 각종 기능을 기존 앱에 다 합치는 대형 공사라면 처음부터 설계도를 다시 그려 새로운 앱을 만드는 편이 낫다”고 설명했다.
 
은행이나 대기업 임원들은 모든 일을 문서로 만들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데 강점이 있는 반면, 전산 개발·관리 등 신기술 쪽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한 정보통신기술(ICT) 업체 CTO는 “중장년층 임원들 상당수가 앱이나 웹페이지를 실내 인테리어처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걸로 착각한다”며 “소프트웨어 제작에 대한 설명을 하면 아예 귀를 닫는데 어떻게 카뱅같은 앱이 나오겠느냐”고 반문했다.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수정이 핵심”
한국 대기업의 성공 방식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디지털·코딩 능력으로 무장한 신규 사업자가 금융을 비롯한 기존 산업에 침투하며 생겨난 결과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애자일(agile·기민한)’ 방식으로 조직 문화 자체를 바꾸고 있다. 최원식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는 “전통 비즈니스에선 완전무결한 제품을 내놓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면, 디지털 비즈니스에선 애자일을 기반으로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각종 오류(버그) 수정을 통한 업데이트로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도중에 버그를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일반적인 대기업의 개발자라면 버그 발견 리포트를 만들어 상부에 보고하고, 임원 결제를 받은 후에야 수정할 수 있다. 버그를 고치는 일도 개발팀이 할지 아니면 운영팀이 할지 경영진의 지시를 받는다. 애자일 개발 방식에서는 개발자가 버그를 발견하는 즉시 수정할 수 있다. 상부 보고는 필요없다. 버그를 개선했다는 정도만 가볍게 주석을 달아 놓으면 된다.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구글은 서비스 개발 뿐만 아니라 조직 운영 전반에 애자일을 도입한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구글에선 약 1만5000명의 개발자가 매일 7500만 개의 테스트를 진행하고, 매달 50% 이상의 코드가 개선·변경된다. 5~10명 규모의 애자일 단위 팀이 4000개 이상의 개발 과제를 동시에 수행한다. 프로그래머 이두희씨는 “복잡한 코드를 간명하게 줄일 수 있다면 신입 개발자도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 사용자가 1억 명에 달하는 음원 서비스업체 스포티파이 역시 대표적인 애자일 기업이다. 8명 이하로 구성된 ‘스쿼드’는 일종의 미니 스타트업처럼 운영된다. 각 스쿼드는 검색·오디오품질·결제 등 전체 서비스의 한 부분을 담당한다. 각 기능 별로 ‘기획-개발-테스트-배포’ 등 전 과정을 책임진다. 업무 관련성이 높은 스쿼드들은 일종의 연합체인 ‘부족(트라이브)’으로 묶인다. 각 부족은 150명을 넘으면 절대 안되고, 부족장이 각 스쿼드의 개발 과정에 개입해서도 안된다. 각 스쿼드의 개발자·기획자 같이 같은 직군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20명 이내로 ‘챕터’를 조직한다. 이들은 정기 스터디 모임을 통해 각종 개발 방식 등을 다듬는다. 경직된 ‘톱-다운’ 형식의 관료제 대신 마치 씨줄과 낱줄 형태로 조직이 묶여 있는 셈이다.
 
다국적 금융회사 ING그룹도 네덜란드에서 회사를 13개 부서로 나누고, 9명으로 구성된 애자일 팀을 부서당 350개씩 구성했다. 조직을 최소 단위로 쪼개 직원의 업무 몰입도를 높이고, 디지털 전환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다. 지금도 ING에선 단 4일 만에 새로운 회사용 앱이 개발돼 임직원을 상대로 서비스된다.
 
SKT, 자기 실적 챙기기 급급하다 시장 내줘
애자일은 일단 시도하는 일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과감히 용인한다. 카카오뱅크만 하더라도 ‘2전3기’를 거쳤다. 2014년 카카오는 송금 서비스 뱅크월렛카카오, 모바일 결제에 중점을 둔 카카오페이를 동시에 출시하며 핀테크 시장에 진입했다. 하지만 뱅크월렛카카오는 지난해 12월 서비스가 종료됐다. 가상 계좌를 만들고, 여기에 돈을 충전해야 하는 등 고객 입장에서 쓰기 불편했기 때문이다. 카카오페이 역시 오프라인에선 삼성페이, 온라인에선 네이버페이에 밀렸다. 이 같은 실패가 카뱅 성공의 밑바탕이 됐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전통적인 한국의 금융회사였다면 결제와 송금·은행 기능을 다 합친 ‘수퍼 앱’을 만들었을 것”이라며 “카카오는 실패에서 얻은 교훈에 따라 직관적인 UX에 초점을 맞춘 가벼운 전략을 택했고, 이게 카뱅 초기 성공의 비결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 대기업 상당수는 애자일보다는 여전히 중앙집권 방식을 선호한다.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서비스나 기능이 갑자기 생기거나 사라지기 일쑤다. SK텔레콤은 문자 앱 ‘여름’을 지난 6월 말 종료했다. 카드사용 금액 분류, 택배 조회, 스팸 방지 등의 기능으로 통신사 개발 앱으로는 드물게 호평을 받았던 여름은 한때 사용자가 100만 명을 넘었다. SKT는 사용자가 줄고 다른 모바일 메신저와 차별성이 없다는 것을 서비스 종료 이유로 들었지만 업계에서는 최근 조직 개편으로 플랫폼 부문이 사라지고 담당 임원이 회사를 떠난 것이 서비스 중단의 이유라고 보고 있다.
 
SKT는 과거에도 유료 문자메시지 사용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SK커뮤니케이션즈의 온라인 메신저인 네이트온의 모바일 서비스를 막았다가 카카오에 시장을 송두리째 내준 바 있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실패한 서비스나 습작품에도 의미가 있는 게 디지털 경제인데 잘 나가는 서비스도 그냥 휴지통에 던져 버리는 일을 반복하는 셈”이라며 “우리나라 기업 문화가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상부의 지시에만 순응하는 쪽으로 굳어 버린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제조업체도 비슷한 일이 드물지 않다. LG전자는 올 상반기부터 공정 단축·원가 절감을 목적으로 스마트폰 개발 과정에서 부품 모듈화에 나섰다. 최고경영진이 가전과 TV 분야에서 모듈화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자 모바일 분야에도 전격 도입한 것이다. LG전자를 퇴직한 한 7년차 개발자는 “스마트폰은 0.1㎜ 단위의 디자인과 부품 배치에 따라 성패가 결정날 수도 있는 제품”이라며 “최근 만난 실무진들은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위에서 하라니 시늉이라도 내야 할 판’이라고 불평하더라”고 전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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