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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 사건 그 후 3100일, 끝나지 않은 나영이의 싸움

범죄 피해자의 그늘, 나영이 아버지의 한숨
“마음의 상처는 평생 안고 가는 거죠. 물로 씻는다고 씻겨지겠어요.”
 
조두순 사건 피해자 나영이(17·가명) 아버지 A씨(64)의 말투는 담담했다. 세월의 힘이 아니었다면 이마저도 힘겨울 듯했다.  
 
2008년 12월 ‘그 사건’ 이후로 3100여 일, 벌써 햇수로 9년이 흘렀다. 여덟 살 나영이를 강간상해한 혐의로 12년을 선고받은 조두순은 형기를 3년 남짓 남겨두고 있다. 가해자의 죗값은 사라져 가지만 나영이네 가족은 여전히 안간힘을 쓰고 있다. 평범한 일상을 찾기 위해서다.
 
지난 19일과 26일 나영이 집 근처에서 A씨를 만났다. 그는 “그동안 많은 분이 도와주셨다. 수술 지원도 받고, 해바라기센터(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심리상담을 제공하는 기관)도 다니고, 어떤 분은 한약도 지어주셨다.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이 기회에 꼭 전하고 싶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나영이는 올해 고3 수험생이 됐다. 다섯 차례의 수술로 지금은 겉으로 봐서는 다른 사람과 차이가 없다. 사건 이후 3년 동안 해바라기센터에서 집중 심리치료를 받았다. A씨는 “오히려 그 이후가 시작이었다”고 했다.
 
그날의 충격으로 멈춰섰던 몸과 마음이 뒤늦게 성장하면서 사춘기가 심하게 찾아왔다. 나영이가 중학교 3학년 무렵 집안은 매일이 살얼음판이었다. 가족들과의 대화를 피하고 방에 불을 꺼놓거나 커튼을 치고 살았다. 작은 지적에도 예민해 하고 온 집안의 전기 코드를 뽑아 놓기도 했다.  
 
A씨는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걸 꺼리는 딸을 위해 무전기를 생각해 냈다. 주파수를 알면 얼굴도, 이름도 알릴 필요 없이 익명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취미활동이었다. A씨가 먼저 배워서 나영이에게 사용법을 가르쳐줬다. 어느 날 무전을 하던 나영이 방에서 킥킥,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의미였다.  
 
A씨 부부는 퀵 기사와 식당 파트타임 일을 하고 있다. 몸이 커가는 딸들을 위해 2년 전 빚을 내 수도권의 신축 주택으로 이사했다. 그전까지는 줄곧 사건이 있었던 교회 근처에서 살았다. 나영이가 “다른 곳에 가면 따돌림당할 것 같은데 여기 있으면 내 친구들이 보호해 줄 것”이라며 이사를 꺼렸다고 한다.  
 
나영이의 학교생활은 다행히 순조로웠다. 가끔 “친구들과 떡볶이 먹어야 한다”며 용돈을 달라는 것 말고는 크게 욕심내는 것도 없었다. A씨는 “겨우 안정을 찾았는데 고3이 되니 또 걱정이 생겼다”고 말했다.  
 
 
나영이 몸이 불편한데 공부하느라 힘들어 하지 않나.
“아이가 주변에 ‘꼭 의사가 돼서 사회에 받은 만큼 돌려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의대에 가고 싶어 한다. 학교도 빠진 적이 거의 없다. 몸이 아프면 어지간히 ‘쉴래’ 할 만도 한데 지난해부턴 밤샘 공부도 한다. 의지는 큰데 아무래도 아이가 영구 장애가 있으니 힘들다. 3년을 치료하고 뒤늦게 공부하다 보니 다른 아이들보다 처질 수밖에 없다. 자식을 지키지 못한 부모로서 가난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다. 성폭력 피해자라고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도록 기반을 만들어 주고 싶은데…. 좌절될까 봐 그게 걱정이다.”
 
 
여학생이라 더 예민하겠다.
“일반인도 설사병이 나면 하루종일 괴롭고 고생이지 않나. 우리 아이는 매일이 그런 거다. 매시간 화장실을 가야 하니까. 아이들끼리 또 한마디 던지면 상처가 되니까 부모 입장에서는 그런 게 많이 신경 쓰인다. 요즘엔 공부하느라 더 신경 쓰일 거다. 하루에 샤워를 몇 번씩 한다. 집중이 안될만 한데 저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도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3년 동안 치료를 받느라 성장이 거의 멈춰 있어 몸이 아주 왜소했다. 그 소식을 알고 서울의 한 한의원 원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키 크는 약을 2년 동안 지어주셨다. 아이가 몸은 빼빼 말랐어도 키가 이제 자기 아빠만큼 컸다. 그것 때문에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조씨 영구격리 약속 립서비스인지 지켜볼 것”
조두순 출소가 얼마 안 남았는데.
“워낙 인간이 아니다 보니 ‘법은 내 손 안에 있다’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나. 언론에 난리가 나니 법무부 장관이 교도소에 가서 조두순을 직접 만났다(※2009년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조씨가 수감된 청송교도소를 방문했다). 영구 격리시키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그 약속 지킬 수 있나. 이제 그분 장관이 아니지 않나. 정부에서 약속한 게 립서비스에 불과한 건지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다른 곳으로 이사할 경제적인 여유도 없을뿐더러 정부를 믿는 수밖에 없다.”
 
 
사건 이후로 범죄 피해자 지원이 많이 늘었다.
“성범죄자 형량도 늘고 좋아졌다. 해바라기센터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렇지만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피해자는 전체의 10%도 안 될 거다. 우리 아이도 심리치료를 계속 받아야 하는데 갈 수가 없다. 센터들이 평일 아침 9시에 오픈해 오후 5시면 끝난다. 너무 멀리 있다. 거기에 누가 가나. 아이들인데 학교 빠지고 가나. 공급자 마인드다. 피해자는 모든 게 조심스럽다. 상처가 있는 아이들은 최대한 남의 눈에 안 띄고 빨리 끝내길 바란다. 선생님들이 방문 진료를 해줬으면 좋겠다.”
 
 
추가로 치료가 필요한 부분이 있나.
“아이 몸에 상처가 하얗게 남아 있는 부분이 있다. 거울을 볼 때마다 흉터를 보면 그 생각이 날 것 같아 대학에 가면 레이저 치료를 해주려고 한다. 내가 그 생각 때문에 가끔씩 아이 흉터 부분을 유심히 바라보면 아이가 ‘왜 날 쳐다보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가족들도 심리치료가 필요한가.
“가정은 데미지를 많이 입었다. 우리도 마찬가지고 본인도 그렇고. 서로 오해 안 사게 말을 해야 한다. 나도 집사람하고 나름대로 그 악몽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은 많이 했지만 어떨 땐 순간순간 극단적인 생각이 든다. 우리뿐 아니라 이번에 인천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나주 성폭행 사건…. 아주 끔찍하고 큰 사건들이다. 정부가 가족들에게도 최선을 다해 줘야 한다. 이게 다 병으로 남는다. 세월이 지나면 잊어버리겠지 하면 그건 오산이다.”
 
 
바람이 있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 가르쳐 놓고 우리 책임은 다 해주고 가야되지 않겠나. 부모 입장에선 험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주고 싶다. 우리 아이가 앞으로 성인이 됐을 때 ‘과거에 내가 성폭력 피해자다’라고 할지라도 사회에서 손가락질받지 않도록 말이다. 성폭력 피해자든 아니든 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받아줄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놓는 것이 자식을 지켜주지 못한 부모로서 마지막 일이 아니겠느냐. 그걸 항상 생각할 뿐이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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