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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학생부에 이대로 써주세요” 학생들 무리한 요구에 교사들 "난감"

일러스트=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aseokim@joongang.co.kr

서울 강남구의 한 일반고 영어교사 A씨는 요즘 매일 학생들과 승강이를 한다. 며칠 전 한 3학년 학생이 찾아와 자신이 준비해온 내용을 학교생활기록생부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하 세특)에 반영해달라고 부탁했다. 세특은 과목 담당 교사가 학생의 수업 중 활동과 성취 정도를 기록하는 공간이다.   
 
그 학생은 A교사가 과제로 내준 적도 없는 두 쪽짜리 보고서를 들고 왔다. 보고서에는 수업 중 토론했던 영어 지문의 해석, 그리고 지문에 대한 학생 개인의 의견이 담겨 있었다. 학생의 요청은 “‘영어 수업 중 발표·토론에 열심히 참여했다’고 써달라”는 것이었다. A교사는 “거짓 기록이다. 안된다”고 했지만, 학생은 “선생님! 저 영문과 가야 해요. 제발 부탁드려요”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A교사는 20여 분의 승강이 끝에 “자꾸 이러면 담임에게 알리겠다”고 겨우 학생을 설득했다. A교사는 “한 반에 2~3명씩 자기 멋대로 보고서를 써와 학생부에 기록해달라고 요구한다. 세특은 수업 중 활동만 기록해야 하므로 거짓 기록은 명백한 입시 부정”이라고 말했다.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는 학생부를 기록하는 시기를 맞아 교사들이 일부 학생의 무리한 요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교사가 내준 적도 없는 과제의 결과물을 보고서로 써 와 학생들이 학생부에 기록해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학생부 기록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전형이 대학 입시에서 늘며 심해지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2018학년도 대학 신입생 넷 중 한 명(23.7%, 8만355명)이 학교생활부종합전형(학종)으로 뽑힌다. 서울 소재 대학에선 학종 선발 비율이 특히 높다. 내년 신입생 중 서울대는 78.5%, 고려대는 62%, 서강대는 55%, 성균관대는 46%를 학종을 뽑는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학종에서 대학은 학생부에 담기는 세특과 동아리∙봉사∙자율∙진로 활동 등을 두루 살펴 학생의 학업능력∙전공적합성∙잠재력 등을 평가한다. 수능과 같은 정량평가가 아니라 정성평가여서 학생의 장점이 드러나는 ‘스토리’가 중요하다. 교사가 학생부에 기록하는 내용이 중요해지자 학생들의 요구가 과도해진 것이다.  
 
교사들은 “노골적인 거짓말은 아니더라도 지나친 '포장'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씁쓸해 한다. 서울 강북에 있는 한 일반고의 B교사는 "매 학기말 동료 교사들과 함께 작문의 고통에 시달린다. 이공계열 학생이 인문학 책 몇 권만 읽어도 ‘과학뿐 아니라 인문∙사회분야까지 깊이 있게 탐구하는 등 융합형 인재를 꿈꾼다’는 식으로 학생부에 적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학생 개인의 특징을 드러낼 수 있는 ‘스토리’가 중요하다 보니 ‘포장을 잘 해주는 교사’가 능력 있는 교사로 평가받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아예 학생이 “학생부에 이대로 적어달라”며 써오는 경우도 있다. 서울 강북의 한 자사고의 C교사는 “교사가 요구를 거절하면 교장에게 직접 전화해 민원을 넣는 학부모도 있다”며 “그러면 교장은 ‘학생 미래가 달린 일이니 그냥 들어주라’고 지시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부모들도 불만이다. 고3 아들을 둔 김모(47·서울 대치동)씨는 “학교마다 제공해주는 프로그램의 질이 다르고, 교사마다 학생부 기록의 수준이 달라진다. 어떤 담임을 만나느냐에 따라 입시 성적도 달라져 '담임 로또'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김씨는 특히 “학생부에 쓰고 싶은 내용을 적어오라는 교사들도 있어 학생부 기록을 온전하게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대학들은 '학생부에 과대 포장과 거짓 기록이 늘어나면 학종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중대 한양대 입학사정관 팀장은 “학종은 학생·고교·대학 간에 평가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포장이 심하면 대학이 학생부를 믿을 수 없게 되고 학종의 공정성을 크게 떨어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부 포장’이 오히려 학생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국 팀장은 “학생의 적극성·발표력·논리력 등은 전 과목에서 두루 드러나기 마련이다. 한두 과목에서만 그런 서술이 보이면 오히려 거짓 기록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말 필요한 교사의 기록 능력은 포장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장·단점을 있는 그대로 기술해주고 발전하는 모습을 설득력있게 표현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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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 기록과 관련해 학생들의 무리한 요구가 나오는 데엔 일부 학교가 대입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점도 있다. 주석훈 서울 미림여고 교장은 “여전히 상당 수 학교가 수능 중심의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에 의존하고 있다. 강의식 수업에선 학생 참여 활동이 거의 없어 학생부에 기록할 내용이 나오기 힘들다”라고 지적했다. 이성권 서울 대진고 교사는 “학교 수업을 발표·토론·프로젝트 중심으로 바꾸면 교사가 학생별로 관찰·기록할 내용이 풍부해진다”고 말했다.   
 
학교·교사 간 학생부 기록의 편차를 줄이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유석용 서라벌고 교사는 “교사의 능력에 따라 학생부 기록에 차이가 발생하는 문제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생부 기록 방식을 좀더 표준화하고 학생의 학업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공동 체크리스트 등을 개발·보급해 교사 간 기록 수준의 차이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진·이태윤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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