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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마지노선' 의미 잘못 알려져…한심한 결과 나올수도

기자
남도현 사진 남도현
최후의 보루?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군사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히는 프랑스의 마지노선(Maginot Line)은 당대 자타가 공인하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래서 ‘오늘 환율이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달러당 X원을 넘어섰습니다’, ‘여야는 올해 말을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하였습니다’ 하는 예처럼 위기감을 나타내기 위한 대명사로 종종 쓰인다. 이때 마지노선은 더 이상 양보하기 힘든, 또는 반드시 지켜내야 최후의 보루임을 의미한다.

 
마지노선의 엄중한 방어시설과 총안구, 독일도 정면으로 이곳을 돌파할 생각을 하지 못하였을 만큼 대단한 요새였다. [사진 wikimedia]

마지노선의 엄중한 방어시설과 총안구, 독일도 정면으로 이곳을 돌파할 생각을 하지 못하였을 만큼 대단한 요새였다. [사진 wikimedia]

그런데 이는 상당히 잘못된 표현이다. 위에서 언급한 예시들처럼 마지노선은 마지막까지 지켜내야 하는 최후의 보루가 아닌, 적을 가장 앞에서 방어하는 최전선의 일차 저지선이었다. 마치 서울을 책임지는 수도방위사령부가 아니라 휴전선 일대를 경계하는 전방부대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언론에서 마지노선을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마지막까지는 지켜내야 할 최후의 한계선으로 인용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보다도 간과한 사실은 따로 있다. 뚫릴 수 없다는, 또는 뚫려서는 곤란하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상징과 달리 막상 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마지노선은 나라를 구하지 못하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마지노선이 무너진 것은 아닌데, 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정작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오히려 무너진 전선 쪽으로 병력의 이동을 스스로 제한시켜버린 무서운 족쇄가 되었다.

방어가 최선이라는 믿음

참호 속의 피 말리는 대치 끝에 제1차 대전에서 승리한 프랑스는 방어가 최고라는 생각이 뇌리에 각인되었다. 패배한 독일은 참호전을 타개할 대안을 찾기에 분주하였지만 프랑스는 방어막을 더욱 깊게 파고 이를 더욱 단단히 한다면 다시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승리를 얻게 된다고 맹신하였다. 이러한 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프랑스는 종전 후 엄청난 국력을 투입하여 독불 국경에 마지노선을 건설하였다.

일부가 미래의 전쟁에서는 고정된 요새가 그리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반대하였지만, 한 세대의 40퍼센트가 사상당하였을 만큼 제1차 대전에서 당한 상처가 깊었던 프랑스 국민의 대다수가 건설에 동의하였다. 베르됭 전투에 참전하여 부상까지 입었던 육군장관 마지노(Andre Maginot)의 주도로 스위스부터 룩셈부르크 사이의 장장 750km 독불국경을 따라 요새가 건설되었고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1927년부터 1930년까지 당시 화폐로 약 200억 프랑의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는데, 이 때문에 공군력 확충 등에 실패하였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였다. 한마디로 당대 과학의 정수를 모아 놓은 프랑스의 자부심이었다. 이렇게 생겨난 마지노선은 어떠한 독일의 침략으로부터도 프랑스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호천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국민도 그렇게 믿었다. 사실 독일도 정면 돌파를 포기한 상태였다.
 
독일은 마지노선을 우회하여 연합군 주력을 일거에 포위 섬멸했다. 이렇게 아군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을 때 수십만의 프랑스군은 마지노선 안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사진 wikipedia]

독일은 마지노선을 우회하여 연합군 주력을 일거에 포위 섬멸했다. 이렇게 아군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을 때 수십만의 프랑스군은 마지노선 안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사진 wikipedia]

한심한 결과

그러나 마지노선이 무력한 콘크리트 덩어리임이 입증 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940년 독일군은 침공을 개시하였고 연합군 주력을 순식간에 뒹케르크 해변에 고립시켜 버렸다. 독일군이 산악지대를 통해 우회 공격하는 동안 요새 속에 틀어박혀 있던 수십만의 프랑스군은 후퇴 중인 아군을 돕기 위해 이동할 수 없었다. 결국 6주 만에 프랑스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그들은 요새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한마디로 악몽 같은 참호전이 재발하더라도 완벽하게 병사들을 보호할 수 있다면 최종 승자가 된다는 고루한 교리에 집착하는 바람에 나타난 참담한 결과였다. 방어선이 고정되다 보니 전선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알토란같은 수십만 병력이 계속 제자리에만 머물러 있다가 스스로 최후를 자초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마지노선은 전사에 지상 최대의 삽질로 표기되었다.

물론 마지노선 자체가 뚫린 것은 아니었지만 전쟁 중 아무런 역할도 못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처음 언급한 것처럼 마지노선은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말로는 부적합하다. 오히려 무용지물이나 미래를 제대로 내다보지 못하고 현실에만 안주하려는 단순한 생각이 낳은 한심한 결과의 대명사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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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은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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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