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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1) 4평 군더더기 없는 감동…넓다고 좋은 집 아냐

기자
손웅익 사진 손웅익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더위와 추위를 피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한 집, 투자와 과시의 대상으로의 집에서 벗어나 집은 살아가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건축가이자 수필가인 필자를 통해 집의 본질에 대해, 행복한 삶의 공간으로서의 집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편집자> 
 
 
창덕궁 연경당의 모습. [사진 손웅익]

창덕궁 연경당의 모습. [사진 손웅익]

 
세운상가 인근에서 해적판 음반장사를 하는 분의 집을 설계한 적이 있다. 맨손으로 시작한 그가 처음엔 손수레로 장사했고 돈이 모이자 작은 가게를 하나 얻었다. 해적판 음반이 큰 제약 없이 유통되던 시절에 그는 돈을 좀 벌었다. 어려서 객지에서 떠돌았고 음반장사 하면서 험한 세상을 경험한 그는 돈을 벌어 내 집을 갖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집 설계에 관한 협의는 늘 종로 뒷골목이나 청계천 막걸리 집에서 했다. 막걸리 몇 잔을 나누면서 그가 살아온 굴곡진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 속에는 고향과 가족과 집에 대한 그리움이 있고, 슬픔과 추억도 있고, 희망도 있었다. 그리고 그가 살고 싶은 아름다운 집의 모습이 들어있었다. 그에게 집은 꿈을 이루기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의 결정체가 아니었을까.
 
아버지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아서 화려한 삶을 사는 지인이 집을 짓는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온 건축가가 설계한다고 해서 더 궁금했다. 완성된 디자인은 그야말로 서구식 저택이었다. 긴 복도와 기능별로 분리된 공간. 가족 간에 서로 간섭 없이 독립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동선을 선택할 수 있는 큰 집이었다. 
 
가족 간에 굳이 서로 얼굴을 볼 필요가 없도록 잘 설계된 집. 같은 집에 살지만, 따로 사는 것과 다름이 없는 집. 그 집은 디자인 작품상을 받았고 잡지에도 소개되었다. 그는 설계자의 명성과 작품상 받은 집에 사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디자인을 보면서 우려한 대로 그 이후 가족 간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집의 구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이었으나 집의 구조가 원인 중 하나였음은 확실하다. 머잖아 집을 팔고 이사한 그에게 그 집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더 큰 집 가지려는 불행한 삶
 
우리에게 집은 좀 특별하다. 과거 수도권, 특히 서울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집 부족 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다들 객지에 와서 남의 집에 방 하나 얻어서 살았다. 그 시절에는 집집마다 아이들도 많아서 단칸방이라도 얻으려고 아이들 숫자를 속이기도 했다. 그 집에서 오래 살려면 집주인의 눈치를 봐야 하고 비인간적인 설움도 많이 당했다. 그렇게 집 없는 설움을 참고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내 집을 장만하려고 필사의 노력을 했다. 
 
80년대 후반 신도시 개발이 진행되면서 너도나도 집 장만에 나섰다. 큰 평형의 집은 집값이 많이 올라 돈이 되기도 했지만, 부의 과시용으로 더 인기가 높았다. 이제 주택 보급률은 100%를 넘었고 전국에 빈집이 100만호를 웃돈다고 하나 아직 우리에게 집은 목마름이다. 더 좋은 것 더 큰 것을 가지려고 우리는 어쩌면 불행한 삶을 사는지도 모른다.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설파했다. “행복하게 살려고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르코르뷔지에가 노후에 아내와 살았던 4평짜리 작은 별장 카비농(Cabanon)의 모습.4평의 기적이라고 불린다.[사진 손웅익]

르코르뷔지에가 노후에 아내와 살았던 4평짜리 작은 별장 카비농(Cabanon)의 모습.4평의 기적이라고 불린다.[사진 손웅익]

 
 
현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가 노후를 보낸 프랑스 카바농. 13㎡ 오두막이다. [사진 코바나컨텐츠]

현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가 노후를 보낸 프랑스 카바농. 13㎡ 오두막이다. [사진 코바나컨텐츠]

올해 초 국내에서 20세기의 위대한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노후에 아내와 살았던 4평짜리 작은 별장인 카바농(Cabanon)을 실물대로 복제해서 전시한 적이 있다. 주사위 모양을 확대해 놓은 듯 한 육면체 그 방에 들어가 보니 참 편안하고 몸에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굳이 이렇게 작은 공간에 살 이유가 있을까 하는 부정적 생각은 그 공간을 경험하고 나서는 예상 못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르코르뷔지에 전시회에서 재연된 카바농의 내부모습. [사진 손웅익]

르코르뷔지에 전시회에서 재연된 카바농의 내부모습. [사진 손웅익]

 
몸에 꼭 맞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군더더기 없음이 주는 감동이었다. 이 작은 집이 위대한 건축가 부부의 노년의 사랑과 행복을 더 돈독히 해 주었으리라 추측한다. 서로의 호흡을 느낄 수 있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화가 가능한 이 아름답고 작은 공간을 르코르뷔지에 부부는 ‘작은 궁전’ 이라 불렀다. 작은 창 너머 지중해의 낙조가 멋진 저녁시간을 함께했을 것이다.
 
 
인사동 쌈지길에서 바라본 모습.서울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사진 손웅익]

인사동 쌈지길에서 바라본 모습.서울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사진 손웅익]

 
이렇듯 사람마다 집은 다른 의미와 가치로 다가온다. 어떤 이에게는 맛있는 한 끼 음식이 행복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단지 음식을 먹는 차원을 떠나 보다 좋은 전망이나 특별한 인테리어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이렇게 관점에 따라 행복의 기준이 달라지는 것처럼 집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집이 갖는 의미는 달라진다. 그런 관점에서 나에게 있어 집이 갖는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손웅익 프리랜서 건축가 badaspac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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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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