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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누가 ‘기레기’를 키우는가

양선희 논설위원

양선희 논설위원

“긴 기사를 더 많이 읽어라. 인쇄 매체를 구독해 탐사 저널리즘을 지원하라.”
 
미국의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최근 저서 『폭정-20세기의 스무 가지 교훈』(열린책들)에서 폭정(暴政)의 비극을 피하는 한 방법으로 ‘신문 읽기’를 권했다. 스나이더는 20세기의 악몽 ‘독재와 홀로코스트’를 연구하는 학자다. 이 책에서 그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 민주주의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며,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시민들이 해야 할 일들을 역사적 경험을 짚어가며 권고했다. 자칫하면 20세기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폭정의 피해자 혹은 협력자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하면서 말이다. 그중 하나가 신문 읽기다. 또 인쇄매체 기자의 중요성도 강변한다.  
 
“인쇄매체의 훌륭한 기자들은 우리에게 의미를 곱씹게 한다. 그들이 아니면 그저 의미 없는 정보 조각에 불과했을 일들을 우리 자신과 미래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곱씹게 한다.”  
 
그는 ‘주류언론’이 조롱거리가 되고, ‘진실이 뭐냐’며 따지기만 하는 게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냉소주의의 위험도 경고했다. 사회의 공동지식에 신뢰를 보내고, 진실을 조사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게 폭정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기자는 완벽하지 않지만, 언론 윤리를 고수하는 자들의 글은 그렇지 않은 자들의 글과 질적으로 다르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배관공에겐 돈을 지불하면서 왜 뉴스는 공짜로 보려 하느냐고 질문한다. 지적·정치적 견해를 얻으려면 대가를 지불하라는 것이다.  
 
‘뉴스의 대가’. 최근 미국 언론사 모임인 뉴스미디어연합(NMA)은 구글·페이스북과 “뉴스에 제값을 지불하라”는 협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언론사가 뉴스를 생산하고, 인터넷 포털은 이를 유통하며 광고수익을 독식하고, 소비자들은 공짜로 즐긴 지 꽤 됐다. 그 사이 인터넷 ‘공짜 뉴스’의 망령이 뉴스 생태계를 교란하며 뉴스와 가짜 뉴스가 뒤섞이고, 언론 전체에 대한 냉소와 조롱이 뒤덮인 터다. 기자들을 향해 ‘거짓말쟁이’ ‘기레기’라며 조롱하는 것도 세계적 추세다.  
 
이제야 세계 언론사들이 뉴스의 대가를 요구하고, 우리 언론들도 포털이 독점한 뉴스 유통 시장에서 언론사들에 수익을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의 주머니에 들어간 돈을 빼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어서 결과는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뉴스에 대가를 지불하는 건 중요한 문제다. 혼탁한 뉴스 생태계를 정리하고 질 좋은 뉴스를 수호하려면 말이다. 뉴스를 생산하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 우선 제대로 된 기자는 시간과 공력과 돈을 들여야 키울 수 있다. 내 경우도 개인적 공력은 둘째 치고 신참 때는 선배들이 도제식으로 붙어서 취재와 기사 쓰는 법을 가르쳤고, 회사는 기자 몫을 해낼 때까지 몇 년을 기다렸고, 국내외 연수를 시키며 투자했다. 이 과정을 거쳐야 한 명의 기자가 태어난다. 이런 과정을 건너뛴 기자들이 어떤 기사를 쓸 수 있는지 나는 상상이 잘 안 된다.  
 
공짜 뉴스 때문에 언론계는 피폐해지고 있다. 기자를 기르는 일조차 쉽지 않아지면 그야말로 ‘공짜 뉴스’나 만드는 기레기들이 판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공짜는 품질을 따질 수 없고, 진짜·가짜가 분별되지 않는 상품이다. ‘공짜 뉴스의 함정’에 빠져 있는 한 진실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의 노력은 무의미해질 수 있다. 스나이더가 지적했듯 이건 시민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공짜 뉴스를 거부하고, 공신력 있는 뉴스에 대가를 지불하는 태도를 통해 언론인들이 다시 한번 신발끈을 조이도록 해야 한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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