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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인사이트] 중국이 꿈꾸는 동아시아 … 서열 존재하는 형제관계 추구

기후협약 탈퇴 등 자국 이익 우선의 미국과 달리 중국이 자유무역 등을 천명하며 글로벌 리더로 떠오르고 있다. 서구 중심의 국제질서 규칙을 다시 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이 어떤 세계질서를 구축할지가 최근 중국 연구의 최대 관심사가 됐다. 중국 스스로는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나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엄청난 덩치로 인해 중국의 부상은 국제질서에 일대 충격이다. 중국이 세우고자 하는 새로운 세계질서는 과연 어떤 모습인가. 
 
정융녠(鄭永年)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는 역사적으로 동아시아는 두 가지 질서를 경험했다고 말한다. 제국 형식의 세계질서와 근대 주권국가로 진입한 이후의 국제질서다. 즉 ‘중화세계질서’와 ‘민족국가체제’의 두 형태다. 21세기 중국이 그리려는 새로운 세계질서는 어떤 모양일까. 이를 탐색하고자 필자는 올해 상반기에 중국 국제정치학계의 담론을 이끄는 수십 명의 중국 학자를 대상으로 심층 면접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중국은 조공체계와 화이(華夷)사상을 근간으로 한 전통적 중화 세계질서로는 회귀하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왜? 주권국가가 현대의 보편적 가치로 수용되고 있기 때문에 만일 중국이 과거의 조공질서를 추구한다면 이는 전 세계적인 저항에 부닥칠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그렇다고 서구 주도의 현 국제질서를 그대로 수용하지도 않을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이 바라는 건 이미 규범이 존재하는 현대 국제질서를 따르면서 여기에 중국 특색을 정교하게 더한, 즉 ‘중국 특색의 현대 국제질서’ 수립이란 것이다.
 
 
중국 특색의 현대 국제질서가 어떤 형태인가를 파악하기 위해선 가치와 문화 영역, 제도 영역, 행위 영역의 세 요소를 중심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가치와 문화 영역은 중국이 세계에 어떤 보편적 가치와 문화를 제시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이와 관련해 중국 학자들은 자유와 민주, 인권 등 현재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서구적 가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공평과 조화, 포용, 공생, 의리관 등 중국적 가치가 추가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러나 국제사회를 향해 콕 집어 제시할 핵심적인 중국의 가치가 무엇이냐에 대해선 여전히 탐색 중인 모습이었다.
 
두 번째 제도 영역은 중국이 구상하는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선 국가 간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제도화하느냐의 문제다. 이와 관련해 중국은 세 단계의 질서를 마음에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첫 단계는 평등한 가운데에서의 등급 질서다. 중국이 지향하는 미래 국제질서는 우선은 근대 민족국가 체계에서와 같이 주권국가를 단위로 한다. 이 질서는 물론 중화 세계질서처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과 속국의 관계는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여기에도 차이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각 국가가 주권국가로서 정치적인 평등은 유지하지만 강대국과 약소국의 영향력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등급 질서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 단계는 동아시아 질서만큼은 중국이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글로벌 차원의 질서가 미국 등 초강대국의 단일 패권에 의해 좌우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몇몇 강대국이 이끌어가는 다극질서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이 주도적인(dominant)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세 번째 단계는 중국과 주변국 관계는 형제관계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과 주변국 모두 형식적으로는 주권국가라는 법률적 평등 관계에 놓여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국력의 차이가 존재하기에 중국과 주변국은 동등한 수평적 관계가 아닌 서열이 존재하는 형제관계가 돼야 한다는 논리다. 이 같은 중국의 바람에 주변국이 동의할까? 이에 대해 중국 학자들은 중국이 주변국의 동조를 얻기 위해선 이웃나라의 민심을 얻어 주도권을 행사하는 이른바 온정주의적 왕도정치를 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그리는 세계질서 파악을 위한 세 번째 요소는 행위 영역인데 이는 중국이 미국과는 차별화되는 어떤 외교 방식을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다. 중국 학자들은 미국이 즐겨 쓰는 동맹과 군사력 대신 중국은 경제적인 수단 및 담론 주도권과 같은 소프트파워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적 혜택 제공 여부로 타국을 압박하는 중국의 행태는 이미 시작됐다.
 
또 미국이 타국에 대한 인도주의적 개입에 나서는 것에 반대해 중국은 타국에 대한 내정불간섭을 강하게 주장한다. 이는 1980년대 덩샤오핑(鄧小平)이 제기한 이른바 3불(三不·내정불간섭, 비동맹, 남들 앞에 나서지 않는 不當頭) 정책의 영향으로 보인다. 그러나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 안에서 강대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선 기존 ‘3불 정책’에 대한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는 왕도정치를 외치는 중국이 국력이 더 커진 이후에도 계속 이런 입장을 견지할지는 미지수다. 중화제국 시대의 ‘약한 국가와 강한 국가 사이클’, 즉 힘이 약할 땐 각종 외교 수단을 통해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힘이 세지면 팽창주의적 정책을 취했던 걸 반복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이 꿈꾸는 세계질서는 다음처럼 요약해 볼 수 있다. 미래 국제질서는 주권국가로 구성되지만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영향력 차이가 존재하는 일종의 등급 질서다. 그리고 이 등급 질서는 세계적으로는 몇몇 강대국이 이끌어가는 다극체제이되 적어도 동아시아 역내에서만큼은 중국이 주도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주변국 동의를 얻기 위해 왕도정치를 펼 것이며, 말을 듣지 않는 나라엔 경제적 압박을 가할 것이다.
 
우리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둘러싸고 한국에 가해지는 중국의 압력을 보면서, 중국이 힘의 논리에 기반한 자신들의 질서 구축에 착수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글로벌 강대국으로서의 중국이 어떠한 형태를 갖출지 아직은 탐색 과정에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의 미래 구상이 함께 경쟁하는 다른 강대국들의 상호 견제, 그리고 수많은 중견국 혹은 약소국과의 상호작용 과정을 통해 결정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우리 하기’에 따라 중국이 그리는 질서 또한 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이 보다 덜 패권적이고 더 호의적인 대국으로 부상하도록 우리로선 아주 ‘노회한’ 외교력 발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정남
고려대 중국연구센터장을 겸하고 있으며 당대 중국 정치, 특히 중국의 동아시아 정책과 한·중 관계 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주요 연구 성과로는 ‘미·중 경쟁시대의 한국의 대중 인식과 대중 정책’ 등이 있다.
 
이정남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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