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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근육 하나하나...몸은 거짓말 안해"

이연화. 사진=프리랜서 강명호 기자

이연화. 사진=프리랜서 강명호 기자

눈앞엔 장밋빛 미래가 펼쳐져 있던 젊은 디자이너가 있었다. 출품하는 공모전은 거의 휩쓸다시피 했다. 그때 만해도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장애가 자신을 덮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세상 모든 걸 디자인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삶은 디자인하지 못했다.
 
24세의 나이에 청각장애 판정을 받았던 이연화는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운동으로 이겨냈다. 피나는 노력 끝에 몸을 만든 결과 지난 4월 머슬마니아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이연화는 “프로가 아니여서 포즈와 워킹이 어색했다. 노력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셔서 입상한 것 같다”고 말했다. 본업인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되찾은 이연화는 몸의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는 패션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했다.  [프리랜서 강명호]

24세의 나이에 청각장애 판정을 받았던 이연화는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운동으로 이겨냈다. 피나는 노력 끝에 몸을 만든 결과 지난 4월 머슬마니아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이연화는 “프로가 아니여서 포즈와 워킹이 어색했다. 노력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셔서 입상한 것 같다”고 말했다. 본업인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되찾은 이연화는 몸의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는 패션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했다. [프리랜서 강명호]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은 그에게 청천벽력이었다. 대인기피증으로 한동안 바깥출입을 삼간 채 방안에 틀어박혔다. 스트레스로 폭식한 나머지 몸무게는 무려 15㎏이나 늘었다. 그는 그렇게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지옥문 앞에서 그에게 반전의 계기가 생겼다. 운동에서 삶의 희망을 되찾은 것이다. 그는 지난 4월 '머슬 퀸'에 뽑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디자이너 이연화(26·여)다.
이연화 대회 사진. 이연화 제공

이연화 대회 사진. 이연화 제공

 
이연화는 지난 4월 '2017 머슬마니아 오리엔트 챔피언십' 패션모델 여자 부문에서 최고상인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빼어난 용모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그는, 청각장애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더욱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머슬 퀸이 된 이후 이연화의 삶은 그 전과 아주 달랐다. 그를 만나 왜 그렇게 몸만들기에 열중하는지 물어봤다. 청력이 약한 그의 입 모양을 보며 소리를 읽어냈다.
 
"열심히 일하면 꽃길만 걸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무리한 일과가 내 몸에 독이 될 줄은 미처 몰랐어요."
 
24세의 나이에 청각장애 판정을 받았던 이연화는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운동으로 이겨냈다. 피나는 노력 끝에 몸을 만든 결과 지난 4월 머슬마니아에서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줌인스포츠 강명호]

24세의 나이에 청각장애 판정을 받았던 이연화는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운동으로 이겨냈다. 피나는 노력 끝에 몸을 만든 결과 지난 4월 머슬마니아에서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줌인스포츠 강명호]

이연화는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발음이 어눌했고, 가끔 더듬기도 했다. 경희대에서 예술학·산업 디자인학을 전공한 그는 4년 내내 단과대 수석이었다. 여학생으로는 처음 단과대 학생회장도 맡았다. 2013년엔 디자이너 서바이벌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톱5에 들었다. 대기업들은 그에게 디자인 프로젝트를 잇달아 제안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일을 하다가 바닥에서 쓰러져 잠드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머슬퀸 이연화 제공

머슬퀸 이연화 제공

2015년 봄, 장애가 이연화를 덮쳤다. 오른쪽 귀가 점점 안들리기 시작했다. 귀를 막아도 계속해서 '삐이~'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당시 그는 소셜미디어에 "오른쪽 귀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썼다. 돌발성 난청·이명·이관개방증이 겹친 것이다. 병원에서 청각장애 판정을 내렸다. 이관개방증은 코와 귀를 연결하는 이관이 지속적으로 열리는 증상. 심하면 숨소리와 심장박동 소리까지 들린다. 그는 "오른쪽 귓속에 모기 한 마리가 살고 있는 것처럼 하루 종일 윙윙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자 삶의 의욕이 송두리째 사라졌다"고 털어놨다.
 
이연화는 일본에 저명한 의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세 차례 수술을 받았다. 그는 "오른쪽 귀 세포가 70%나 죽었지만 다행히 30%는 돌아왔다. 주기적으로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아 간신히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머슬마니아 이연화 선수가 15일 오후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 20170515

머슬마니아 이연화 선수가 15일 오후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 20170515

 
시각과 청각을 잃었던 헬렌 켈러(미국)는 "시각장애보다 더 불행한 것은 시력은 있지만 비전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연히 접한 이 말이 이연화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귀에 무리가 가는 유산소 운동보다는 근력 운동 등 무산소 운동에 집중했다. 그는 "아프고 난 뒤 내 몸이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다. 귀울림이 심해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운동을 열심히 하니 잠을 잘 수 있었다. 몸이 좋아지면서 저절로 자신감이 생겼다. 몸도 마음도 아름다워야 삶이 굴곡없이 흘러간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운동은 그의 삶을 바꿨다. 이연화는 현재 화보와 브랜드 콘셉트를 기획하는 로터스그룹 대표이자 패션 크레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모델 아카데미에서 패션 트렌드 강의도 하고 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던 그는 요즘 활발하게 주변 사람들을 만난다. 머슬 퀸에 입상한 뒤 달라진 현상이다. 처음 사람을 만나면 "청각장애 때문에 말이 어눌해요. 이해해 주세요"라며 먼저 다가선다. 길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생겼다. 인스타그램 팔로어도 6만명을 넘는다.
이연화 대회 사진. 이연화 제공

이연화 대회 사진. 이연화 제공

 
이연화는 "몸은 거짓말을 안 한다. 작은 근육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도 눈물 겨운 노력을 해야 한다"며 "몸의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는 패션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인터뷰 말미에 이연화는 어눌한 말투로 자신의 좌우명인 프리드리히 니체의 명언을 들려줬다.
'지금 인생을 다시 한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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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